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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신발장인 전태수 “신발 편하면 만사형통”
명품 신발장인 전태수 “신발 편하면 만사형통”
  • 리치
  • 승인 2018.03.28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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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화 만드는 길로 나선 지 근 50년. 전태수 JS슈즈디자인연구소 대표는 서울 성수동에 있는 수제화 타운의 대표적 명인이다. 가죽을 비롯한 모든 소재를 맵시 있게 정성껏 손질해서 손님이 신으면 그로인해 인생 행로가 편안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나아가 우리 민족 신발문화를 집대성한 신발박물관 건립이 꿈이라는 전태수 명인은 현재 방송중인 주말드라마 “같이 살래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리치에서 그의 공방을 찾아가 직접 만나 봤다.

 


“패션을 완성하는 것도 구두이고 건강을 지탱하는 것도 구두입니다. 편안한 구두를 신으면  건강을 찾고 유지하면서 만사형통에 이를 수 있는 에너지가 생깁니다.”
서울 지하철2호선 성수역 가까운 수제화 타운을 대표하는 신발 장인 전태수 JS슈즈디자인연구소 대표의 철학이자 신념이다.
싸이가 전 세계에 말춤을 유행시키며 ‘강남스타일’ 돌풍을 일으킬 때 신었던 구두도 그의 작품이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얼마 전 해외 순방길에 올랐을 때 신었던 버선코 구두나 트럼프와 멜라니 여사에게 전한 선물, 또 그의 딸 이방카가 방한했을 때 신고 다녔던 실내화로 주목받았던 신발도 그의 작품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최불암 등 연예인이나 유명인 신발을 만든 사례도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발이 편해서 좋은 신발을 만드는 일이다. 진정한 명품을 만들기 위해 매진한 지 벌써 50년째다.


신어 본 사람 또 찾아와

“백화점, 홈쇼핑 뿐이겠습니까? 신발 살 수 있는 곳은 많지만 새로 사서 맨처음 신은 그 순간부터 늘 신던 신발같아야 합니다. 발이 끼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자기 발과 건강에 맞지 않은 거라고 발에 분포된 신경세포가 신호를 보내는 거죠.”
맞지 않은 신발이라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척추가 틀어지고 발걸음이 불편해지기 마련이라고 전 대표는 간곡하게 말한다.
발이 너무 조여서도 안 되고 신발 안에서 발이 겉돌아도 인생 길을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는 철학적 깨달음은 성공과 실패를 숱하게 반복하는 사이 숫자로 헤아릴 수 없이 그의 신발을 신고 나섰던 손님들과 교감에서 축적한 생생한 이치다.
“신발이 불편하면 허리와 어깨까지 무리가 가서 아프기까지 합니다. 하반신과 상반신의 여러 통증이 사실은 발 건강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편안한 신발을 신으면 허리 아플 일 없이 몸이 반듯해 집니다.”
흔히 보통사람들은 신발을 고를 때 쫄리는 느낌, 발에 꽉 맞는 느낌이 있어야 꼭 맞는 신발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조언한다.  


진짜 명품 신발, 편하고 오래

한 번 신어 봤던 사람이 자꾸 다시 찾아오고 AS를 맡길 겸 새 신발을 또 사가는 이유가 특별히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홍콩,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 이민 갔던 옛 손님이 잠깐 귀국해서 들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발이 편하지 않은 신발이라면 유명한 명품 브랜드가 무슨 소용이냐고 그는 묻는다.
게다가 계절이 멀다 하고 바뀌는 디자인 선호도를 파악하면서 예쁘고 품격 있는 디자인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건 그의 행복이다.
전태수 대표처럼 철학과 원칙이 분명한 장인들은 좋은 가죽과 정직한 소재들을 고집한다. 그래야 AS를 받아가며 오래 신을 수 있고 신을수록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몇 일 전 이탈리아에서 가장 좋은 가죽을 만든다는 장인을 만났어요. 어떤 업체인지 동영상도 봤고 그 집 가죽으로 만든 제품들도 살피고 직접 원단을 만져보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집을 온통 천연 가죽으로 꾸몄더군요. 정말 부러웠습니다. 아! 이 가죽이면 제가 만든 신발을 신는 분들이 더욱 행복하시겠다고 느꼈습니다.”
최고급 가죽으로 한 켤레를 만들려면 원단 값만 50만원 이상 들어가니까 신발 값이 200만~300만원 한다고 해서 비싼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고가의 신발을 신을 수 없기 때문에 편하고 아름다운 디자인데 실용적인 신가격대의 신발도 만들고 있다. 이 대목에서 그는 강조한다 “해외 유명브랜드 못지않은 품질과 디자인에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 편안하면서 가격대가 30만~50만원이면 정말 좋은 신발을 신는 것”이라고. 그리고 평생 A/S도 가능.


손님 만족 향한 ‘연구 집념’

그는 천연소재를 고집하는 장인 중 한 사람이다.
안감조차 가죽으로 대어 땀을 흡수하고 배출하는 기능을 극대화 하는 기술축적에 힘썼다. 구두 굽을 만들 때 여러 조각의 가죽을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전통 방식을 선호한다.
“좋은 신발인지 아닌지 평가를 하는 사람은 손님입니다. 편하고 쾌적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실패와 좌절에 굴하지 않고 연구하고 직접 만드는 일을 반복했어요.” 이젠 그 노하우가 편안함을 줍니다.
서울 명동 수제화, 패션 부티크가 전성기를 이루며 싸롱 골목을 형성했던 1970~80년대 명동에서 약 11년 동안 일을 배울 때부터 수많은 수제화를 분해해 가며 분석을 거듭했다. 어느 짐승 가죽이 좋을지 별별 가죽이 그의 손을 거쳤다.
명동 시대가 저물고 남대문 퇴계로 신당동 수제화 업체들이 터전을 성수동으로 옮긴 뒤 오랫동안 전 대표는 기술과 품질 갈고 닦기를 멈추지 않았다.
가죽과 염료를 취급하는 일인데 공업지역으로 지정해 줘서 일하기가 좋았다고 회상한다.


세계적 브랜드 도전은 진행중

국가 수반 가족의 신발을 만들어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전태수 대표의 당면한 꿈은 세계적 브랜드로 키우는 일이다.
“대한민국에 가면 꼭 사야하는 명품 수제화가 있는데 그게 바로 JS슈즈다”라는 외국인 방문객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정평이 되는 그날을 꿈꾼다.
원래부터 수제화를 만들었던 많은 장인들이 브랜드화에 나섰다 실패하고 심지어 대규모 투자에 뛰어들었던 대기업이 철수했던 사례까지 그는 찬찬히 분석해 봤다.
“중저가 신발로 승부하려고 하면 기성화를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세계적 신발을 만들겠다는 기술과 노하우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장인들은 돈이 없어 못하고 대기업은 신발업 특색을 살릴 줄 몰라서 물러났던 전례를 되밟지 않아야 성공활 수 있는 일입니다.”
그는 뜻있는 투자자를 만나 훌륭한 디스클레이 시설을 갖춘 명품관에서 전시하고 적정한 수준에서 홍보 마케팅을 펼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일반인 누구나 다 아는 재벌 회장과 사모님들이 비싼 가격에도 자꾸 사서 갈 정도의 품질과 만족도를 갖춘 다른 장인들도 성공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 때 뚝섬에서 성수동까지 1000개 업체가 즐비하던 성수동이 이제는 구청 등록업체 기준으로 250개 남짓 줄어든 현실을 타개할 길은 분명히 있다는 이야기다.


수제화 산업 도약-박물관 큰 꿈

JS슈즈가 세계적 브랜드로 비상할 수 있는 길이 뭘까 고민하는 사이, 성수동 수제화 타운이 점점 위축되는 것같아 걱정하는 사이 그의 마음 속엔 또 하나의 큰 꿈이 들어섰다고 한다.
“성수동이어도 어디든 좋다. 우리나라 신발 문화 역사가 담겨 있고 수제화 장인들의 걸작들도 한 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을 세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옛적부터 우리 선조들이 신었던 신발 자료들을 부지런히 모으다 보니 체계적으로 복원하고 재현해서 전시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지금 있는 박물관은 전시품이 빈곤할 뿐 아니라 우리 신발 문화를 조명하기엔 크게 미흡합니다. 유구한 문화를 되살리고 우리 신발산업 경쟁력도 돌아볼 수 있다면 더욱 큰 의미가 생성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후진 양성 더 나은 내일 향해 최선

아울러 그는 지난 2012년부터 후진 양성에도 애정을 쏟고 있다고 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의 경우 아직도 생존해 있는 수제화 명인들이 여전히 건재하긴 하지만 명맥을 잇기가 쉽지 않은 모습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전태수 대표 스스로는 남자 신발과 여자 신발 둘 다 배운 것이 다행이라고 말하곤 한다. 또한 그는 구두(남성화, 여성화)만 고집하지 않고 운동화와 부츠, 슬리퍼 등 어디 내놔도 밀리지 않을 노하우를 갖춘 장인이다.
“수제화에 애착이 동한 대학생이나 주부들이 배워보겠다고 알음알음 찾아와서 실습을 거쳐 갔어요. 기본적인 기술부터 디자인 패턴을 뜨고 재단한 뒤 완성품까지 짧게는 5~6개월 배우고 나면 자기 신발을 만들 수 있는 단계에 오르곤 합니다. 배우고 가서 인터넷 판매업에 뛰어들거나 공방을 만들어 독립한 제자들도 많아요.”
전 대표 스스로 좋은 신발 만들고 싶은 의욕에는 뒤지고 싶지 않다 보니 제자들을 가르치다 보면 현대적 감각의 최신 유행을 꿰고 있는 제자들에게 배울 점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덕에 오랜 세월 다진 스승의 기량과 노하우에 젊은 제자의 신 감각이 어우러진 좋은 신발이 탄생하는 보람도 얻었다고 한다.
몇 가지에 한정된 규격에 따라 대량생산하는 기성화가 창출하지 못하는 수제화만의 편하고 뛰어난 가치를 묵묵히 이어온 전 대표.
“자기 발에 꼭 맞고 쓰임새따라 필요한 신발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이 찾아오는 수제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스스로의 직업과 브랜드에 자긍심을 갖고 자긍심에 충분히 값하기 위해 매 순간 정성껏 기울이는 최선의 시간이 모이다 보면 그의 꿈은 머지 않아 이루어지리라는 느낌이 든다. 출처 js슈즈.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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