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7:43 (금)
정경자 특별초대전 눈길
정경자 특별초대전 눈길
  • 리치
  • 승인 2018.05.08 14: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색채 서정미학의 진수

 

사실적 형태의 얼개 대신에 색의 농담과 절제미 돋보이는 컴포지션으로 담대한 감수성을 선보여 온 정경자화백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특별 초대전을 연다. 자연 세계와 우리 생의 의미와 깊이를 농축시킨 화폭마다 서정성 가득한 교향악이 흐른다. 열정적 색감과 조형적 리듬감이 어우러지는 세계가 관객을 기다린다. 리치에서 그를 찾아가 봤다.

“서정적 감각을 표현하려는 작가가 형태보다도 색채에 온 힘을 쏟는 것은 당연하다. 나의 화면에 펼쳐지는 색과 색은 각기 독립하면서 때로는 대립하면서 또한 공명하여 전체로서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을 형성한다.”
자신의 예술 작업 생명이 색채에 있다고 고백해 온 원로작가의 미학세계는 서정 시편이 어우러진 대서사 시극(詩劇)이다.
그리고 미술관에서 관객들과 마주하게 된다면 순도 높고 장엄한 색채교향악으로 다가오곤 한다.  


특별초대전 마음의 독법

오는 5월4일부터 같은달 14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 가면 ‘원로작가 정경자 특별초대전’에서 뜻 깊은 경험 공유에 나설 수 있다.
“정경자 선생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마음을 안락한 기분으로 만드는 것이 나의 행복’이라고 했던 거장 마티스의 말이 문득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형옥 평론가가 의문문으로 던진 논평에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 식민지 시절에서 태어나 전쟁과 경제성장기를 관통하며 성장했던 작가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에는 암울함과 고통 성취감과 희열 등이 거대한 바다를 이루고 있다.
그 바다는 예술혼의 입김 한 점으로 출렁이기 시작해 오랜 침잠의 세월을 건너 화폭 위로 드러나곤 한다.
정경자 작가는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사랑이 필요할 때 인간으로서 순수한 사랑이나 따뜻한 마음의 일면이라도 그리웠던 삶의 시간이 창작 에너지의 한 근원인 셈이다.
그렇기에 물질만능 사회,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현실에 살면서도 작가가 구현해 보이는 화려한 색채와 담백한 구성이 오히려 따뜻하고 산뜻한 현대적 감각으로 이어진다.


순수한 색채 담대한 구성 ‘성숙’

“정경자 선생의 작품은 시대의 빠른 변화 만큼이나 가치관의 정신이 매우 젊어 화려하면서도 정열적인 색채미학의 체계가 현실성 있게 실행되고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이형옥)
이 평론가의 평가를 종합해 보면 작가의 최근 작품들은 지난 세월 마침내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에 칩거한 채 세상의 관찰자로 전환한 이후 섬세하고 깊이 있게 성숙한 내면 세계가 투영되는 징후가 뚜렷하다. 
색채 감각이나 구성 스타일 면에선 세련된 ‘모더니스트’로서 현대인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면서도 자연의 품에서 확장시키고 응축시켰던 심상의 천연성(天然性)을 조화롭게 합일시키는 솜씨는 여전하다.
나아가 “새천년을 기점으로 그리움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갈망과 희망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이 평론가는 전한다.
특별한 구체적 묘법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형(形)이 없는 화면구성과 대담하면서도 내밀한 색채미학의 특질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는 것이다.
순수한 색채를 기본 바탕 삼아 간략한 선묘로 형이상학적 리듬을 살리는 기법으로 주제의식을 압축적으로 포착하는 솜씨가 원숙미를 더하고 있다.


별소녀·인형 시리즈 등 신작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별소녀」를 비롯해 「인형과놀이」 등의 ‘인형’시리즈를 비롯해 ‘블루(1996~2018)’ ‘레드(1996~2018)’ ‘비상(2009)’ ‘색채(2007)’ ‘새천년(2011~2018)’ 등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가슴 속 내밀한 감성과 한층 더 원숙해진 정신성이 잘 형상화된 작품으로 꼽힌다.
이 평론가는 정경자 작가의 조형적 메시지가 내포한 울림에 특유의 매력이 있다고 평한다.
“무한한 창의성에 천착된 일들이 의식 속에서 파편처럼 확산되어 무구한 시간의 삶을 되짚게 한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으로 작고하신 부친과 어머니의 그리움을 열정적 색채로 담아내곤 했던 노작(勞作)의 여로가 투영된다. 일본과 파리 유학시절 이국생활을 함께 겪었던 인형에 대한 기억에서 내면세계와 현실적인 삶의 교감을 형상화하기도 했다.


색채로 인한 심리 감응

“정경자화백 그림의 전체적 인상은 조화로운 색채비례를 통한 조화 그 자체가 주제가 되면서 순수 추상의 경향을 띠고 있다. 특히 후기작업으로 올수록 이러한 추이는 강도가 높아졌다.”(박영택 평론가)
박영택 평론가는 “독립된 조형언어로서 색채 의미가 강조되고 광선이나 빛을 통한 추상미술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눈을 통해 색채가 정신에 전달되어 미치는 모종의 힘, 감각에 겨냥되어 있는 그림”이라고 논했다. 아울러 색채를 빚어서 조화로운 감각의 반응을 유도하고 있으며 색채가 음악처럼 심리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는 인식에 공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연에서 받은 감흥과 스스로 경험하고 사유하며 집약했던 내면을 색채들이 어우러진 화면으로 질정(質定)해낸 예술혼은 무궁무진한 세계를 창조해 낸다.


빛·색채·면이 이루는 하모니

정경자 작가는 창작노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아침의 청명하고 푸른 공기와 같은 청색, 강렬한 적색, 한 잔의 명쾌함을 나타내는 노란색, 심해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녹색 드은 자유롭계 나타나는 음계와 같이 화면을 풍만하고 맑으며 높은 울림을 느끼게 한다”고.
아울러 “철저하게 평면화한 상큼한 장식적 세계, 정확한 배색에 의한 균형 잡힌 세계, 그것은 실로 빛과 색에 의한 교향악”이라고.
“몸의 감각기관이 총체적으로 기억하고 입력한, 체험한 외부세계의 모든 것들을 가시화 한 것”이 정경자 작품 세계의 특징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시인의 마음을 생각하게 하고 음악가의 감성을 품게 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 앞에서 색의 마술사가 되어 어떤 이미지나 어떤 테크닉에도 고정되지 않은 마음을 눈으로 감상의 폭을 확장하는 색의 하모니를 구사하여 행복한 삶을 그리는 작가”라는 이형옥 평론가의 평가 그대로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