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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보다는 내삶과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돈 보다는 내삶과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 김은희기자
  • 승인 2018.12.11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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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봉섭 이천시 호법면 이장

 

 

경기도 이천군 호법면 꽃농장.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이 농장의 주인이자 마을 이장인 길봉섭(62)씨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수확하는 꽃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내려온 지 10년째. 그에게는 후회는 없었다.
귀농을 한 뒤 얻은 게 더 많았다. 주변에 함께 하는 이웃이 있고 부모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무한한 사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희망과 용기, 건강을 얻었다. <리치>에서는 귀농 후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마음만은
어느 때보다 편안하다는 길 이장을 만나 성공담을 직접 들었다.


길 이장의 전직은 은행원이다. 서울 SC제일은행에서 25년을 근무한 그는 은행권에서는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다. 은행 IC카드 최초 개발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획, 영업, 총무 등 주요 부서를 돌면서 본부장 자리까지 올랐다. 당연히 은행의 신임이 두터웠을 터. 때문에 그의 돌연 사직 소식은 주변들을 놀라게 했다.


보람은 “아버지를 이해한 것”

현재 금융권에 활성화되고 있는 IC카드는 그가 1996년 프랑스 신용카드협회와 IC칩을 개발한 불사를 견학하고 금융권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또한, 당시 전자금융의 선두주자였던 제일은행의 전자금융팀 기획책임자로서 국민연금 연금보험료 수납시스템의 전산화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런 성과로 “제일맨”으로 선정되는 등 은행내에서 두터운 신임을 얻으며 기대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 그가 갑자기 귀농을 결심한 계기는 2008년 오십견 및 지나친 스트레스로 건강이 나빠지면서부터다. 퇴직후 귀농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던터에 어느 날 우연히 이천에 있는 집사람 친구 채소농장에서 잠시 일을 하고 와 그날 너무 편하게 잠을 잤는데 그 때 ‘내가 살려면 은행을 그만두는 게 맞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다음날 부행장을 찾았고 결심을 말했더니 부행장이 깜짝 놀랐다. 한 달 정도 실랑이를 했고 그해 10월에 명예퇴직을 했다. 25년간의 은행생활을 그만둔 것에 대해 지금도 후회는 없다.”
이천에 내려올 때 돈과는 인연이 멀다고 생각했다. ‘내 삶을 좀 더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좇기는 듯한 누구한테 끌려다는 듯한 그런 삶보다는 자신이 주체된 자신의 삶을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게 아닌가하는 게 속마음이자 각오였다.
2018년. 벌써 이곳에 정착한 지 10년째다. 그동안 많은 일들을 겪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얻은 것이 더 많았다. 농장도 자리를 잡고 수익도 꽤 크며 안정적이다.
“사람들이 간혹 귀농 후 보람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곤 한다. 그러면 자신있게 가장 큰 보람은 아버지를 이해했다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아버지도 저처럼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 때만해도 60년, 70년, 80년 때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서 대학을 보낸다는 것은 굉장한 것이다.”
당시 길 이장은 아버지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허약한 몸을 가지고 술을 계속 드시면서 일을 하신 탓이다. 그래서 그 모습이 너무 싫었다고. 그래서인지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생황을 하다가 힘들 때는 아버지 생각보다 어머니 생각이 더 났다고 한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거의 매일 술을 먹었다. 한 1년쯤 지나니까 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 아버지가 그래서 술을 드셨구나’ 아버지가 몸이 허약하셨는데도 이겨내려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뿐이다.”
귀농 후 큰 소득은 또 있다. 인생후반에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만들어졌다는 게 그것이다. 마을 일도 같이하고 서로 정보도 주고받고 그러면서 동반자들이 늘어났고 이장을 맡으면서 그 수는 급증했다.
이 때문일까.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과 행복함의 향기가 물씬 난다.
“60대 후반이 되고 직장을 그만두고 나면 같이 생활할 사람이 거의 없다. 갈수록 적어지는데 생활하면서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농사를 짓는다는 공통점이 있어 대화도 되고 가끔 힘들어서 짜증날 때도 있지만 주변을 보면 언제 그랬다는 듯 짜증과 피곤은 날아가고 상쾌함과 유쾌함이 찾아온다.”
길 이장이 농사를 짓고 있는 마을은 그다지 큰 곳이 아니다. 면 인구가 6000여 명 정도다. 이곳에는 의외로 외지인들이 많다. 서울이 가깝다는 게 그 이유다. 주민들도 여기에 정착하려는 귀농인들에게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뜨거운 가슴으로 맞이하려는 모습이 강하다.


“지역민들의 도움이 컸다”

“내 나이 올해 62살로 인생후반이다. 지금은 돈을 버는 삶보다는 내 삶을 누리고 함께 나누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인생을 살면서 (나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갚을 방법이 없나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직접 와서 보면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하는 길 이장. 그는 이곳에서 시골에서만 생활에 혹여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경영이나 관리, 마케팅, 조직화 등과 같은 분야는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해 이런 부분을 채워주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고.
“10년 동안 농사를 짓고 생활하면서 마음이 편안하도록 정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 지역사람들이 많이 도와줬기 때문이다. 나 또한 받은 도움을 돌려주고 싶어 작목반장, 이장, 총무 등 단체장을 맡아 지역의 역할을 같이 나누면서 분담하면서 할 수 있어 좋다.”
이곳에 와서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주민들이 묵묵히 일은 잘 하는데 자신들의 위치를 너무 과소 평가하는 등 홍보가 많이 부족한 것이 었다고 한다. 사실은 이곳 호법면의 40여 농가가 생산하는 절화(꽃꽂이 꽃) 생산량은 서울 양재동 화훼공판장 절화 경매물량의 3~4%를 차지 할 정도이며 또한 40여종 이상의 다양한 꽃과 연중 생산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면단위 기준으로 볼때 호법면은 전국 최대 절화생산지이기도 하다.
길 이장의 나눔의 삶에 대한 실천은 여기서 나타났다. 지역의 특징을 뽑아 공판장과 서울 도매시장 관계자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특징에 대해 홍보했다. 막연하게 ‘생산량이 많다’고만 생각하고 수치적으로 몰랐던 관계자들의 시각이 점차 달라졌다.
뿐만 아니다. 그는 꽃꽂이 강사와 경매시장 경매사들을 초빙해서 지역민들의 부족한 부분을 차곡차곡 메웠다.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많은 생산량과 다양한 꽃들을 출하하니까 당당하게 상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지역민들을 ‘하나’로 만든 것이다.
“(제가) 지역민들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항상 받기만 하면 그 사람은 언젠가는 외면을 당한다. 저는 생각이 다르다. 받은 만큼은 못되어도 어느 정도는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1인 원테이블 원플라워 운동’ 활성화

1500평 규모의 농장에서 꽃을 가꾸고 있는 길 이장의 연 매출은 1억원 정도다. 그가 밝힌 순수익은 이중 50%에 해당하는 5000만원이다. 5000만원은 그와 아내의 인건비 정도 수준이다.
그는 자신이 이처럼 빠르게 정착하고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이면에는 지역민들과 이천시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여기에 이천의 지리적 여건도 한몫 거들었다고.
“이천에는 임금님표 쌀 뿐만 아니라, 인삼, 채소, 화훼, 축산(한우, 젖소, 돼지 등), 과일 등 품질이 우수한 다양한 농산물이 생산되고 있는데 이는 일교차가 큰 기온과 햇빛, 물, 토양, 자연재해가 없고, 거대 시장인 수도권에 인접해 있어 물류비용이 적다는 점과 이천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부지런한 농부들의 지혜로움이 함께 어우러져란다.”
그런데 길 이장은 그동안 느꼈던 우리나라 꽃 소비액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현저히 작은 것에 대해 은 속상함을 토로했다. 유럽으로 갈수록 꽃 소비액이 많은데 일례로 1인당 꽃 소비액의 경우 스위스는 9만5000원, 일본은 3만3000원인 반면 우리나라는 1만3000원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주장하는 것이 ‘1인 원테이블 원플라워 운동’이다.
“꽃은 인성에 도움이 되고 정신적 마인드에도 좋은데 식당에 가보면 꽃이 없다. 사무실이나, 음료수병에 꽃 한 송이를 꽃아 집안 식탁이나 책상에 놓아두거나 작은 꽃다발을 엮어 선물을 하는 등 꽃소비를 늘릴 수 있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다.”
그는 청년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아파트 단지별로 주기적으로 꽃 트럭을 몰고 가서 판매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꽃 소비도 늘고 구매자들은 인성과 정신적 마인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IMF전에는 금융기관 객장 테이블마다 꽃꽂이가 있었는데 비용절감차원에서 모두 사라졌다. 이또한 부활해 꽃과 함께하는 삶 실천에 금융기관도 동참해 주었으면 한다.
길이장은 귀농귀촌에 성공하려면 “귀농귀촌은 언어만 같을 뿐 문화가 다른 지역으로 삶의 기반을 옮기는 것인 만큼 이민에 준하는 사전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시골마을은 도시와 그 생성과정이 다른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시골마을은 기존 주민들이 불편함을 무릅쓰고 견뎌왔기에 포장도로가 생기고, 전기가 들어오고, 상하수도가 들어 온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주인인 셈이다. 이런 점을 이해하고 이들의 기득권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길봉섭 이장은 “정부에서는 농업인 조직화와 수출보다는 내수시장 활성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시스템을 생산 원가에 기반을 둔 판매 가격을 형성하는 것 등 농민 입장에서 검토해 농수산물 시장을 안착시키고 농민을 위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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