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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Israel)
이스라엘(Israel)
  • 이덕희 칼럼 리스트
  • 승인 2019.07.0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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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적이고 다양한 유적지 즐비”

 

 

이스라엘(State of Israel)은 지중해 동남방 연안에 위치하며 해안선 길이가 273Km이다. 수도는 예루살렘(Jerusalem)으로 국가 전체 인구가 약 850만이며 그중 약 80%가 유태인이고 약 20%가 아랍계 유태인이다.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국해 유태인과 아랍계 주민간의 마찰이 늘 있어 사회적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중 네 곳을 살펴보고자 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핵심 지역이라 고대부터 늘 전쟁과 지배자가 바뀌는 예민한 곳이다. 그래서 여러 문화가 복합되는 특징이 있으며 문화유산도 많이 남아 있다.

고대 유대왕국의 상징 ‘마사다’

마사다(Masada)는 사해(Dead Sea)를 굽어보는 아름다운 자연에 바위투성이 구릉에 자리한 천혜의 요새다. 유대왕 헤롯(Herod)은 이곳에 로마의 고전주의 양식으로 호화로운 왕궁을 건설했다.
유대 나라가 로마의 속주가 된 뒤 유대 저항군의 마지막 피난처가 됐으며 내적으로는 유대왕국에 대한 유대인의 위협과 외적으로는 유대 왕국을 이집트 왕국에 복속 시키려는 클레오파트라의 위협에 대한 대비로 건설됐다.
서부 궁전의 핵심부는 작은 궁전 3개, 행정 건물, 병영, 비둘기장 3개, 커다란 수조 몇 개, 수영장 등이 있다. 북부 궁전은 왕과 왕족, 손님을 위한 공간이며 목욕 시설이 있다. 궁전 옆에는 기다란 창고가 18개로 방어용 성채 또는 요새 역할을 했다.
서기 70년 로마 황제 티투스(Titus)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2년 뒤 로마제국 총독 플라비우스 실바(Flavius Silva)가 유대 저항군 본거지를 소탕하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서기 73년 로마 군사들에게 점령 됐다. 이때 남아있던 960명 중 2명 빼고 전원 자살로 마감한 쓰라린 역사가 전해진다.
마사다는 고대 유대 왕국의 상징이고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가장 세련되고 완전한 로마 궁성 보루이자 압제와 자유 사이에서 인간이 벌인 끊임없는 투쟁의 상징이 됐다. 이에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대표적인 역사 도시 ‘아크레’

고대 도시 아크레(Old City of Acre)는 대표적인 역사 도시로서 현존하는 18~19세기 이슬람 요새 마을 아래에 십자군 때 건물의 중요한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그 결과 아크레는 예루살렘 중세 십자군 왕국의 수도 배치와 구조를 알 수 있으며 현재 성벽을 두른 오스만 제국 도시의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독립한 뒤 이 도시에는 소수의 이슬람교도만이 거주했다. 오늘날 지상과 지하에 11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아크레의 변화무쌍한 역사의 각 시점마다 이루어진 문화적 요소가 복합된 놀라운 유적이 많아 남아 있다. 이에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광범위한 교역로 ‘텔’

셋째, 성서 텔–메기도, 하솔, 베르셰바(Biblical Tels–Megiddo, Hazor, Beer Sheba)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이루어진 광범위한 교역로와 국가 간의 동맹을 통해 인간 가치의 상호 교환을 대변하고 있으며 이집트, 시리아, 에게 해 지역의 영향력을 융합하여 이 지역 고유의 양식으로 형성된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텔(Tel)은 선사시대 정착지 토루를 말하며 이스라엘 영토를 가로질러 펼쳐져 있다. 북쪽에 있는 텔 하솔은 갈릴리 호수 근처에 있고 텔 메기도는 그로부터 남서쪽으로 50Km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텔 베르셰바는 남부의 네게브 사막 근처에 있다.
이 세 곳은 성서에 등장하는 비옥한 토지에 자리 잡았던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도시의 부의 세력을 보여준다. 중앙 집권 세력은 정교하고 기술적으로 발달한 집수 시설을 건설하고 관리했다. 각 텔은 사원, 성채와 성문 체제, 궁전, 집수 시설, 도시 설계, 성서 관련 유적으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영문의 보고 ‘카타콤 유적’

베이트 셰아림의 네크로폴리스:‘유대인의 부활’에 관한 기념비(Necropolis of Bet She’arim:A Landmark of Jewish Renewal)는 지하묘지인 일련의 카타콤(Catacomb)의 일부였다. 유대인이 로마의 지배에 대항하여 싸운 두 번째 봉기가 실패한 이후 기원전 2세기부터 예루살렘 외곽에 있는 주요 매장지가 됐다.
이 카타콤 유적은 각종 예술 작품과 그리스어, 아람어, 히브리어, 팔미라어로 작성된 명문의 보고다. 베이트 셰아림은 유대교의 구전 율법인 미쉬나(Mishna)를 문서로 엮고 서기 135년 이후 ‘유대인의 부활’을 이끈 유대인의 영적이자 정치적 지도자다.
이곳의 매장 유형과 문화적 표현의 동화 그리고 묘지에 안장된 시신의 출신 등을 명기한 비문을 통해 유대인들이 곳곳에 흩어져 살았다는 사실과 주변 민족 문화가 유대 종교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증명하는 귀한 자료들로 가득하다. 이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세계문화유산지로 지정됐다.

끊임없는 분쟁으로 세계의 화약고

이스라엘은 성경 구약에 나오는 인물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조상으로 삼고 있다. 그 후손들인 유대인들은 출애굽 시대를 거쳐 팔레인스타인 지역에 살다가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디아스포라로 전 세계 지역으로 흩어졌던 민족이다.
20세기에 들어와 다시금 옛 조상이 살던 그 지역에 국가를 세운 것이다. 오늘날 2000년 이상을 이 지역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아랍족들은 졸지에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가 됐다. 이로 인해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테러로 세계의 화약고가 됐다.
그러나 지역적으로 볼 때 여러 민족들의 문화들이 거쳐 가며 남겨진 복합적이고 다양한 유적지들이 즐비하다. 이 유적지들은 늘 전쟁과 테러로 위험에 노출 되어 있어 항상 불안한 상태이다. 인류의 자산인 이 유적지들이 그럴수록 더욱더 신경 써서 잘 보존되기를 기원해 본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핵심 지역이라 고대부터 늘 전쟁과 지배자가 바뀌는 예민한 곳이다. 그래서 여러 문화가 복합되는 특징이 있으며 문화유산도 많이 남아 있다.

고대 유대왕국의 상징 ‘마사다’

마사다(Masada)는 사해(Dead Sea)를 굽어보는 아름다운 자연에 바위투성이 구릉에 자리한 천혜의 요새다. 유대왕 헤롯(Herod)은 이곳에 로마의 고전주의 양식으로 호화로운 왕궁을 건설했다.
유대 나라가 로마의 속주가 된 뒤 유대 저항군의 마지막 피난처가 됐으며 내적으로는 유대왕국에 대한 유대인의 위협과 외적으로는 유대 왕국을 이집트 왕국에 복속 시키려는 클레오파트라의 위협에 대한 대비로 건설됐다.
서부 궁전의 핵심부는 작은 궁전 3개, 행정 건물, 병영, 비둘기장 3개, 커다란 수조 몇 개, 수영장 등이 있다. 북부 궁전은 왕과 왕족, 손님을 위한 공간이며 목욕 시설이 있다. 궁전 옆에는 기다란 창고가 18개로 방어용 성채 또는 요새 역할을 했다.
서기 70년 로마 황제 티투스(Titus)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2년 뒤 로마제국 총독 플라비우스 실바(Flavius Silva)가 유대 저항군 본거지를 소탕하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서기 73년 로마 군사들에게 점령 됐다. 이때 남아있던 960명 중 2명을 빼고 전원 자살로 마감한 쓰라린 역사가 전해진다.
마사다는 고대 유대 왕국의 상징이고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가장 세련되고 완전한 로마 궁성 보루이자 압제와 자유 사이에서 인간이 벌인 끊임없는 투쟁의 상징이 됐다. 이에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대표적인 역사 도시 ‘아크레’

고대 도시 아크레(Old City of Acre)는 대표적인 역사 도시로서 현존하는 18~19세기 이슬람 요새 마을 아래에 십자군 때 건물의 중요한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그 결과 아크레는 예루살렘 중세 십자군 왕국의 수도 배치와 구조를 알 수 있으며 현재 성벽을 두른 오스만 제국 도시의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독립한 뒤 이 도시에는 소수의 이슬람교도만이 거주했다. 오늘날 지상과 지하에 11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아크레의 변화무쌍한 역사의 각 시점마다 이루어진 문화적 요소가 복합된 놀라운 유적이 많아 남아 있다. 이에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광범위한 교역로 ‘텔’

셋째, 성서 텔·메기도, 하솔, 베르셰바(Biblical Tels· Megiddo, Hazor, Beer Sheba)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이루어진 광범위한 교역로와 국가 간의 동맹을 통해 인간 가치의 상호 교환을 대변하고 있으며 이집트, 시리아, 에게 해 지역의 영향력을 융합하여 이 지역 고유의 양식으로 형성된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텔(Tel)은 선사시대 정착지 토루를 말하며 이스라엘 영토를 가로질러 펼쳐져 있다. 북쪽에 있는 텔 하솔은 갈릴리 호수 근처에 있고 텔 메기도는 그로부터 남서쪽으로 50Km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텔 베르셰바는 남부의 네게브 사막 근처에 있다.
이 세 곳은 성서에 등장하는 비옥한 토지에 자리 잡았던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도시의 부의 세력을 보여준다. 중앙 집권 세력은 정교하고 기술적으로 발달한 집수 시설을 건설하고 관리했다. 각 텔은 사원, 성채와 성문 체제, 궁전, 집수 시설, 도시 설계, 성서 관련 유적으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영문의 보고 ‘카타콤 유적’

베이트 셰아림의 네크로폴리스:‘유대인의 부활’에 관한 기념비(Necropolis of Bet She’arim:A Landmark of Jewish Renewal)는 지하묘지인 일련의 카타콤(Catacomb)의 일부였다. 유대인이 로마의 지배에 대항해 싸운 두 번째 봉기가 실패한 이후 기원전 2세기부터 예루살렘 외곽에 있는 주요 매장지가 됐다.
이 카타콤 유적은 각종 예술 작품과 그리스어, 아람어, 히브리어, 팔미라어로 작성된 명문의 보고다. 베이트 셰아림은 유대교의 구전 율법인 미쉬나(Mishna)를 문서로 엮고 서기 135년 이후 ‘유대인의 부활’을 이끈 유대인의 영적이자 정치적 지도자다.
이곳의 매장 유형과 문화적 표현의 동화 그리고 묘지에 안장된 시신의 출신 등을 명기한 비문을 통해 유대인들이 곳곳에 흩어져 살았다는 사실과 주변 민족 문화가 유대 종교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증명하는 귀한 자료들로 가득하다. 이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세계문화유산지로 지정됐다.

끊임없는 분쟁으로 세계의 화약고

이스라엘은 성경 구약에 나오는 인물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조상으로 삼고 있다. 그 후손들인 유대인들은 출애굽 시대를 거쳐 팔레인스타인 지역에 살다가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디아스포라로 전 세계 지역으로 흩어졌던 민족이다.
20세기에 들어와 다시금 옛 조상이 살던 그 지역에 국가를 세운 것이다. 오늘날 2000년 이상을 이 지역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아랍족들은 졸지에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가 됐다. 이로 인해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테러로 세계의 화약고가 됐다.
그러나 지역적으로 볼 때 여러 민족들의 문화들이 거쳐 가며 남겨진 복합적이고 다양한 유적지들이 즐비하다. 이 유적지들은 늘 전쟁과 테러로 위험에 노출 되어 있어 항상 불안한 상태이다. 인류의 자산인 이 유적지들이 그럴수록 더욱더 신경 써서 잘 보존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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