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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새 100년의 시작을 세계에 알린 「기생충」 봉준호 감독
한국영화 새 100년의 시작을 세계에 알린 「기생충」 봉준호 감독
  • 김은정 기자
  • 승인 2020.03.03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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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온 대로
열심히 시나리오 쓰겠다”

 

“지난해 칸영화제부터 올해 오스카까지 많은 경사가 있었다. 영화사적 사건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면이 있지만 사실 영화 자체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칸과 아카데미를 동시 석권하며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 스태프들의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낸 장면 하나하나, 거기에 담긴 고민 등이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속마음을 표출했다.


“이곳에서 제작발표회를 한지가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만큼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마침내 여기 다시 오게 돼 기쁘다.”
지난달 19일, 봉 감독은 지난해 「기생충」의 제작보고회가 열렸던 서울시 중구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귀국소감을 밝혔다.
약 250개 국내 매체와 40여 개의 외신이 몰릴 정도로 취재 열기는 뜨거웠던 이날 현장에는 봉 감독과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한진원 작가, 이하준 미술 감독, 양진모 편집 감독,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박명훈 등이 함께 했다.

기록의 잔치에 세계가 ‘들썩’

영화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봉 감독의 7번째 장편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거둔 성과는 ‘기록 잔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난해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시작으로 제66회 시드니영화제(최고상)과 제15회 판타스틱페스트(관객상), 제38회 밴쿠버영화제(관객상), 제43회 상파울루국제영화제(관객상), 전미비평가위원회(외국어영화상) 등을 받았다.
이어 뉴욕비평가협회(외국어영화상)과 LA비평가협회(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필라델피아비평가협회(외국어영화상), 워싱턴DC비평가협회(작품상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시카고비평가협회(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제9회 호주아카데미(작품상)·미국영화연구소(특별언급상), 전미비평가협회(작품상 각본상) 등을 거머쥐었다.
그런가 하면 제77회 골든글로브시상식에서는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까지 4관왕에 올라 한국 영화 새 100년의 시작을 세계에 알렸다.
해외 영화제 수상 19개, 해외 시상식 수상 155개, 총 174개 내역(2020년 2월 19일 기준)을 수상한 「기생충」의 수상 기록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특히 비(非) 영어권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탄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다. 아시아인 감독이 감독상을 손에 쥔 것은 이안 감독에 이어 두 번째이며 각본상 수상은 아시아 영화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뿐만 아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작품상까지 석권한 경우는 영화 「잃어버린 주말」과 「마티」에 이어 세 번째다. 게다가 국제장편영화상(구 외국어영화상) 수상은 한국영화 사상 처음이고 아시아 영화로 분야를 넓히자면 영화 「와호장룡」 이후 19년 만이다.

“달콤한 장식을 입히기 싫었다”

“영화 「괴물」도 「설국열차」도 열차라는 공간이나 괴물이라는 것 등 사이파이 요소가 많은 작품인데 「기생충」에는 그런 것이 없다. 동시대 이야기고 우리 이웃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한국의 뛰어난 앙상블이 실감 나게 표현한 덕이다.”
전 세계 약 67개국에서 개봉한 「기생충」이 가장 ‘핫한’ 영화 중 하나로 급부상한 이유에 대한 봉 감독의 자평이다. 그는 이 영화에는 빈부격차에 대한 코미디적인 면이 있고 빈부격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씁쓸한 면도 있는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적나라함을 피하기는 싫었다고 설명했다.
「기생충」에서 빈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유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그 부분을 불편해하지만 영화에 달콤한 장식을 입히기는 싫었다’고 말하는 봉 감독은 ‘왜 그렇게 이 영화가 인기가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저의 업무가 아닌 것 같고  왜 영화가 인기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기자나 평론가, 관객 분들이 평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당시 질문이 영화제 성격에 대한 이야기였다. ‘칸과 베를린은 국제영화제이고 아카데미는 미국 중심의 영화제’라는 것을 비교하다가 자연스레 나온 얘기다. 미국 젊은이들이 그걸 SNS에 올리며 화제가 됐던 것 같다. 무슨 전략이 있었던 건 아니다.”
봉 감독은 지난해 10월 미국 매체 벌처와의 인터뷰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은 국제 영화제가 아니다. 매우 지역적인(로컬) 영화제”라고 발언했던 ‘로컬 영화제’에 대해 미처 못다 한 말을 전했다. ‘처음으로 오스카 캠페인을 하는데 무슨 도발씩이나 (제가) 하겠나’고 웃으며 답했다.
“번아웃 증후군은 이미 2017년 영화 「옥자」로 경험했다. 그러나 「기생충」이 너무 찍고 싶어서 영혼까지 긁어모아 작품을 찍었다.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참 긴 세월인데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것 같아 기쁘다. 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사실이다.”
번아웃 증후군에 대해 언급한 봉 감독은 촬영 기간보다 긴 오스카 캠페인도 마무리 지었지 않냐며 여러분과 이야기하면서 ‘끝이 나는구나’ 생각 든다고 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 ‘일을 많이 해서 좀 쉴까 생각했는데 스콜세지 감독이 쉬지 말라고 하셔서…’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오늘 아침 마틴 스콜세지 감독님이 편지를 보내셨다. 저로서는 영광이었다. 저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편지니 말씀 드리기는 실례다. 마지막 문장에 수고했고 쉬어라고. 대신 조금만 쉬어라고, 다들 차기작을 기다리니 조금만 쉬고 일하라고 하셨다. 감사하다.”
봉 감독은 이날(2월 19일) 오전 마틴 스콜세지 감독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며 거장의 부탁을 짤막하게 소개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그가 영화 스승으로 꼽는 거장으로 앞서 그는 오스카 감독상을 받은 뒤 ‘마틴 영화를 보면서 공부를 했던 사람인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산업계가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두 사람의 패러디 영상을 봤다. 유세윤씨 참 천재적인 것 같다. 존경한다, 문세윤씨도 최고의 엔터테이너이신 것 같다.”
봉 감독은 유세윤과 문세윤의 패러디 영상에 뜨겁게 호응했다. 그의 수상 소감이 화제를 모으면서 2월 18일 유세윤· 문세윤은 이를 패러디한 ‘Parodysite(패러디사이트)’ 영상을 공개해 관심을 끌었고 이에 대해 그의 화답이 이어진 것이다. 이 영상에는 문세윤이 봉준호 감독을, 유세윤이 샤론 최의 역할을 맡아 두 사람의 말투와 행동을 똑같이 따라 했다.
“동상을 세운다, 생가를 보존한다는 그런 소식을 뉴스를 통해 보긴 봤다. 그런 건 우리가 죽은 후에 해 달라. 그냥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가리라 생각하고 기사를 넘겼다. 딱히 그 외엔 할 말이 없다.”
봉 감독은 총선을 앞두고 TK 지역 예비 후보들이 일제히 봉준호 관련 공약을 내세우는 등 정치권의 여러 반응에 대해 거절의사를 담아 재치 있게 답하며 선을 그었다.
실제 대구 지역에 연고가 있는 강효상 의원(미래통합당)은 “봉준호 감독 이웃 동네에서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며 봉준호 영화 박물관을 세우겠다고 공언했다. 배영식 예비후보(미래통합당)도 “대구 남구에 봉준호 영화 거리와 동상을 세우고 생가 터를 복원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젊은 신인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기생충」 시나리오를 가져갔을 때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을 냉정하게 해 봤을 때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환경은 젊은 감독들이 모험적인 것을 하기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그는 올바른 영화 생태계를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지난 2월 17일 영화계 인사들이 제안한 일명 ‘포스트 봉준호법’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로 양극화되고 있는 충무로 상황과 이로 인해 젊은 신인 감독에게 충분한 기회가 열리지 않는 점을 안타깝다는 것이다.
임권택 감독, 정지영 감독, 방은진 감독, 배우 정우성, 조진웅 등 59명의 1차 서명인이 제안한 이 법안에는 ▲대기업의 영화 배급업과 상영업 겸업 제한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금지 ▲독립·예술영화 및 전용관 지원 제도화 등 주요 내용을 담고 있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가 평행선을 이루는 부분이 안타깝다. 한국 영화 산업이 도전적인 영화들을 껴안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최근 나오는 훌륭한 독립영화들을 보면 워낙 재능들이 꽃피우고 있어서 결국 영화 산업과의 좋은 충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봉 감독은 현재 한국 영화의 현실에서 젊은 감독들의 기발하고 도전적인 영화가 나오기 힘들어 보인다면서도 재능이 있는 독립영화를 보면 곧 영화 산업과의 좋은 충돌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산업계가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소신을 피력했다.
그는 지난 1980~90년대 붐을 이뤘던 홍콩 영화가 이후 어떻게 쇠퇴해갔는지 그 기억을 분명히 갖고 있으며 그런 길을 걷지 않으려면 한국영화 산업이 모험을 두려워 말아야 하고 산업이 그걸 더 껴안고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차기작? 평상시처럼 할 것”

“「마더」 때도 흑백 버전을 만든 적 있다. 다른 거창한 의도보다는 고전 영화, 클래식 영화들의 동경, 소위 말하는 로망이 있었다. 세상 모든 영화가 흑백이던 시절도 있지 않았나. 내가 만약 1930년대를 살고 있고 흑백영화로 찍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번에도 홍경표 감독님과 의논해서 흑백버전을 만들었고 두 번 봤다.”
봉준호 감독이 개봉을 앞둔 ‘기생충’ 흑백판 버전을 설명했다.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상영했는데 똑같은 영화지만 묘했고 다른 느낌들이 있으며 「마더」 때도 그렇지만 배우 분들의 미세한 표정이 섬세한 연기의 디테일이나 뉘앙스를 더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보시는 분들마다 느낌이 다를 수 있어 뭐라고 선입견을 가지거나 강요하고 싶지는 않는다면서도 배우 눈빛, 표정에 더 집중할 수 있고 그 밖의 느낌도 있지만 보시면서 느껴보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 작품을 위해 일을 하는 게 저의 업무다. 20년간 해 온 대로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제가 영화 산업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차기작은 이미 「기생충」이 이런 반응을 얻기 전부터 기획된 것이라 평상시처럼 할 것이다.”
차기작에 착수할 의지를 드러낸 봉 감독이 준비하고 있는 영화는 두 편이다. 하나는 공포스러운 상황이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는 내용의 한국어 영화다. 또 다른 하나는 지난 2016년 런던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어 영화다.
봉준호 감독은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님 말대로 조금만 쉬었다가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며 “배우와 스태프들은 한결같이 「기생충」을 뒤로 하고 또 다른 작품, 또 다른 작업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고 저 또한 그렇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봉준호(영화감독)

========================= 프로필 =======================
▲1969년생
-잠실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사회학 학사

▲주요 경력
-한국 영화아카데미 11기/제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명예홍보위원(2009년 5월)
-제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대표 집행위원(2009년 6월)
-제9회 미쟝센단편영화제 공포, 판타지부문 심사위원(2010년 6월)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2011년 1월)
-제64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 부문 심사위원장(2011년 4월)
-제10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절대악몽부문 심사위원(2011년 6월)
-제3회 올레 스마트폰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2013년 1월)
-제67회 에든버러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2013년 5월)
-해양경찰 명예홍보대사(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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