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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위대하고 우아함과 섬세함이 녹아드는 ‘샤토 르 팽’
작지만 위대하고 우아함과 섬세함이 녹아드는 ‘샤토 르 팽’
  • 고재윤 교수
  • 승인 2021.07.28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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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소나무’에서 유래된 ‘Le Pin’


해마다 7월이면 해외 와인 투어를 가서 그 지역의 와인 공부도 하고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마시면서 즐거웠던 시간이었을 텐데, 2년 동안 해외 와인 투어를 가지 못해 더욱 아쉽다. 그래도 과거 와인 투어를 간 생각을 하면 추억이 떠오르고 행복했던 순간순간이 가슴에 벅차오른다. 그중에 가장 아쉬웠던 와이너리가 프랑스 보르도의 샤토 르팽(Château Le Pin)이다. 샤토 르팽에 갔지만 와이너리를 방문하지 못하고 사진만 찍었던 기억이 아쉽고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리치 8월호를 통해 좀더 자세히 소개한다.

 


샤토 르팽은 프랑스 보르도 지역 포므롤(Pome-rol)의 작은 마을 까튀소(Catusseau)에 있는데, 지롱드(Gironde) 강어귀 오른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샤토 옆에 자라는 ‘고독한 소나무’에서 유래하여 ‘Le Pin’이라고 브랜드명을 정했다.
2011년 벨기에 전통 건축 방법으로 세계적인 건축가 롭브레첸 대메(Robbrecht en Daem)가 설계한, 규모가 작고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을 살린 새로운 개념의 샤토 르팽은 작은 마이크로큐브와 중력을 사용하여 와인을 옮기는 방식을 도입해 문을 열었다.


샤토 르팽은 일부 와인 전문가들이 가라지 와인(garage wines; 미국에서는 cult wine이라고 함)의 원조라고 하지만, 소유주인 자크 티엔퐁(Jacques Thienpont)은 수용하지 않고 있다. 즉, 생산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희귀성과 높은 가격으로 그 시대가 낳은 최고의 와인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프랑스에서 작지만 위대한 ‘샤토 르팽(Château Le Pin)’, 미국 캘리포니아의 독수리 그림 레이블로 유명한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 그와 자웅을 겨루는 라이벌 ‘할란(Halan)’,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 만점을 획득한 ‘시네콰논(Sine Qua Non)’, 스페인의 로마네 콩티인 ‘베가 시실리아(Vega Sicilia)’ 등이 있다. 


샤토 르팽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부르고뉴 와인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매우 우아하고 섬세한 스타일의 와인으로, 프랑스 보르도에서 가장 명성 있는 페트뤼스(Pétrus)에 도전장을 내민 지 30년 만에 정상을 되찾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대로 벨기에의 와인 무역상이었던 자크 티엔퐁(Jacques Thienpont)가문은 와인 사업이 성공하면서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 양조로 성공하고자 했다. 그들은 보르도 마고(Margaux) 지역의 샤토 라베고스 제데(Chateau Labegorce-Zede)와 포므롤(Pomerol)의 비외 샤토 세르탕(Vieux Chateau Certan)을 소유하고 있었다. 


1924년 대대로 가족이 소유한 마담 라루비(Madame Laubie)가 1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했으나 1979년 자크 티엔퐁(Jacques Thienpont)은 이를 100만 프랑에 구입했다. 마담 라루비가 사망한 1979년 3월까지 이곳 포므롤(Pomerol) 지방은 저급 와인이 생산지로 무명의 신세였다. 현재 샤토 르 팽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조그마한 포도밭 5에이커는 새로운 명품 와인 시대를 열었다.

마담 루비가 사망한 후에 티엥퐁 가문이 포도밭을 인수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세계적인 와인 양조가 미셸 롤랑이 무명 시절 샤토 르팽의 와인 양조를 컨설팅해 성공하면서 더욱 명성을 얻게 되었다. 현재는 비외 샤토 세 르탕(Vieux Chateau Certan)을 관리하는 알렉산드레 티엔퐁(Alexandre Thienpont)이 포도밭을 관리하고, 자크 티엔퐁(Jacques Thienpont)은 와인 양조하고 판매한다. 

 

신의 물방울에 소개된 
샤토 르팽

이런 역사를 가진 샤토 르팽은 일본의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 3권에 1982년산이 소개되면서 포므롤 지방의 최고 와인으로 적은 물량의 희소성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어 아시아 와인 애호가들에게 관심을 불어 넣어 주었으며, 한국에는 1년에 24병 정도 수입되고 있다. 


첫 빈티지는 1979년으로 500~600 케이스가 생산되었으며, 1병에 100프랑이던 가치는 3년 뒤에 1982년 빈티지가 미국의 유명한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을 받으면서 페트뤼스(Pétrus)에 견줄만한 최고의 와인으로 평가받게 되었고 수퍼 스타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다. 웅장한 스케일과 매끄러움이 특징이며, 가격도 그 희소성으로 페트뤼스에 견줄만한 고가로 형성되었다. 최고 품질의 메를로(Merlot)를 사용해서 양조하며, 적은 생산량과 극도의 화려한 품질로 와인 전문가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컬트 와인의 효시가 됐다. 그리고 1995년 독일에서 개최된 페트뤼스와 비교 시음 결과 페트뤼스 와인보다 더 우수한 와인으로 평가 받았다.


샤토 르팽의 포도밭은 샤토 주변으로 약 2.7ha의 규모에 메를로(Merlot) 포도 품종 100%를 재배하지만, 포도밭에 함께 심어진 카베르네 프랑(Carbernet Franc) 덩굴이 몇 그루 있다.

포도밭은 매우 척박한 땅으로 기반암 위에 자갈, 모래가 섞인 점토질 토양 토양에서 평균 수령 38년 이상 된 포도나무에서 수작업을 통해 양조한다. 7개의 소형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양조되며 100% 프랑스산 뉴 오크통에서 32°C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발효되고, 공급되는 포도는 바디감과 향이 넘실대며 조화로운 균형감을 갖춰 품질이 뛰어나다.

보르도에서도 가장 짙은 루비 색상이며, 최초로 출시된 1979년 빈티지가 최고라고 할 만큼 클래식한 등급이다. 와인 전문가들이 강한 오크향이 와인의 향을 압박한다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샤토 르팽 와인의 차별화된 가격에 질투하는 경쟁자들의 소문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샤토 르팽 와인의 초기 빈티지들도 현재까지 우아하고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세련된 복잡함을 간직한 1982년, 아름답게 균형을 갖춘 1983년, 그리고 매우 이국적인 1989년 빈티지가 사랑받고 있다.

1990년과 1996년 빈티지는 최근 20년 동안 가장 뛰어난 와인으로 주목받았으며, 1990년 빈티지는 도발적이고, 부드럽고 매력적인 맛, 1996년 빈티지는 매우 농축된 맛을 보여준다. 2000년, 2003년 빈티지는 가뭄과 불볕더위로 현상으로 생산을 단념한 장인정신을 보여주었다.

 

15년 이상 최고의 빈티지로 선정

참고로 샤토 르팽의 최고의 빈티지는 2016년, 2015년, 2012년, 2010년, 2009년, 2008년, 2006년, 2005년, 2001년, 2000년, 1998년, 1990년, 1989년, 1985년, 1988년이다.


필자는 빈티지가 별로 좋지 않은 1995년 빈티지를 시음하였는데 짙은 루비색과 풍부한 블랙 체리, 자두, 코코넛, 시트러스 향, 장미향, 허브향, 에스프레소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커피향, 토스트향, 설탕에 절인 과일의 향긋하고 달콤한 향이 황홀감을 주며, 실크처럼 부드럽게 감기는 듯한 섬세한 타닌과 균형감, 그리고 신선한 여운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화사 발랄한 여성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 와인은 쇠고기, 양고기, 야생고기와 특히 잘 어울린다. 그러나 너무 일찍 개봉한 것이 후회될 정도로 와인이 쉽게 열리지 않아 5년 후에 개봉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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