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7:43 (금)
코로나가 바꿔놓은 중앙은행 역할론, 韓銀이 나아갈 길은
코로나가 바꿔놓은 중앙은행 역할론, 韓銀이 나아갈 길은
  • 이욱호 기자
  • 승인 2021.10.30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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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대부자’ 한은의 위기수습 못지않게 주목받는 위기예방 기능
서경영 금통위 위원

 

지난 9월 3일 서영경 금융통화위원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국경제 전망과 통화정책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찾아온 코로나19 위기로 전세계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최종대부자’ 중앙은행의 역할론도 재조명받고 있다. 발권력으로 위기를 수습하는 전통적인 중앙은행 역할 못지않게 금리정책 외 각종 비전통 통화정책으로 위기를 예방하는 사전적 금융안정의 중요성도 커졌다. 달라진 중앙은행 역할에 대한 서영경 위원의 발표를 리치에서 자세히 소개한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실물경제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금융시장 변동성이 증폭됨에 따라 주요국 중앙은행은 이례적인 초완화 정책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중앙은행의 신속하고 과감한 대응은 글로벌 금융위기(GFC)의 수습과정에서 체득한 중앙은행의 역할변화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인식 공유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생각된다.

첫째, 물가안정이 반드시 거시경제 안정을 보장하지 않으며 중앙은행은 전반적인 거시경제 안정을 추구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전통적 금리정책뿐만 아니라 비전통적 통화정책 등 다양한 수단의 적극적 활용이 요구된다.

둘째, 중앙은행 정책목표로서 거시경제 안정과 금융안정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때 발권력에 기초한 전통적인 최종대부자 기능(사후적 금융안정) 못지않게 미래의 금융위기 예방 역할(사전적 금융안정)이 중요하다. 위기 발생시 완화적 통화정책을 통해 시장안정을 도모함과 아울러 늘어난 유동성이 중장기 시계에서 자산가격의 급반전 등 금융불안으로 이어질 위험에 대해서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상충되는 복수의 목적을 추구함에 따라 보다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이 요구된다.

셋째, 통화정책이 불평등에 장기 중립적이라는 견해에서 벗어나 소득 및 자산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재분배경로(redistributional channel)에 보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경제주체들의 고용상태와 자산보유가 비대칭적일 경우 통화정책은 경제주체별로 근로소득 및 자산가격에 차별적인 영향을 미침으로써 분배와 후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경제위기의 충격은 취약계층에 집중되어 위기의 파장이 증폭되므로 이들 계층의 경제활동 회복을 위해 재정정책과의 공조가 중요하다.
코로나19 이후 통화정책 대응과 도전과제

코로나19 발생 직후 각국의 중앙은행은 GFC 당시 도입하였던 초저금리와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신속히 시행함은 물론, 금번 위기가 과거 금융위기와 달리 실물위기임을 감안하여 기업부문에 대한 자금지원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도 중앙은행 최종대부자 역할의 일반원칙, 즉 이례적 위기상황에서 손실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간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한다는 기본원칙은 유지되었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수준인 0.5%로 인하하는 동시에 증권사 대상의 RP매입, 회사채·CP 매입기구(SPV) 대출, 소상공인에 대한 금융중개지원대출 등 전례없는 수단까지 도입하면서 적극적으로 거시경제와 금융안정을 위한 정책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과감한 통화정책과 대폭적인 재정지출 확대는 경제주체들의 지나친 심리위축과 이로 인한 경기둔화와 금융불안의 악순환을 차단함으로써 경제적 파국을 방지하고 경기가 조속히 회복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다만 당초 예상보다 코로나19 보건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실물과 금융, 수요와 공급간 회복시차가 발생함에 따라 금융불균형이 누적되고 인플레이션 압력도 높아졌다. 코로나19 위기의 극복과정에서 통화정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도전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첫 번째 어려움은 통화정책 여건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전례없이 크다는 점이다. 통상 내생적 경제충격으로 발생(boom&bust)하였던 과거 위기들과 달리, 경제시스템과 무관한 외생적 보건위기가 발생함에 따라 경기흐름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통화정책을 선제적으로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커졌다. 앞으로 예상되는 성장의 주요 하방리스크로는 대면서비스 회복 지연, 공급차질과 GVC 약화, 중국경제 성장세 둔화, 고용의 불완전 회복 등이 있다. 다만 백신공급 확대에 따른 심리개선과 학습효과, 디지털 경제 확산 등은 부정적 영향을 제한하는 효과이다.

두 번째는 금융불균형이 누적되었다는 점이다. 과거 위기시에도 회복 국면에서 실물-금융간 불균형이 불가피하였으나 근래에는 금융과 실물 회복간 시차가 보다 커지면서 통화정책의 기조전환 타이밍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증가하였다. 위기 발생 직후 적극적인 시장안정화 조치가 필요했지만 완화적 금융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경제 주체들의 위험 추구성향과 자산시장 자금쏠림이 크게 확대되었다. 특히 주택시장에서 저금리를 활용한 레버리지투자가 확대 IMF(2017)는 27개국을 대상으로 한 패널분석을 통해 가계신용과 주택가격은 상호 강화효과(reinforcing feedback effect)를 가진다고 분석한 바 있다.

세 번째는 총량적인 거시경제 지표와 부문별 경기상황간 격차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위기과정에서 소득불균형 뿐만 아니라 수출-내수간/제조업-서비스업/대기업-중소기업 등 부문간 차별화가 심화되었던 경험이 있으나 최근 4차 산업혁명과 고용시장 구조변화 등이 맞물리면서 이러한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이에 따라 경제주체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의 판단에 있어 어려움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지나친 불균형이 미래 안정성장의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통화정책적 고민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향후 통화정책 수행의 방향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지난 8월 정책금리를 25bp 인상하였다.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실물경제는 금년 2/4분기에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였으며 이는 주요국에 비해 빠른 회복세이다. 금년도와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잠재수준(2%초반)을 상회할 전망이며, GDP갭은 내년 상반기에 (+)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년간 금리인상기를 보더라도 GDP갭과 물가갭이 (+)로 돌아서기 전에 기준금리가 선제적으로 조정된 바 있으며, 경기회복 기대가 있는 경우 경제심리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한편 금융상황은 시계열 측면(time dimensions)과 국가별 비교(cross-country dimensions) 기준에서 모두 우리나라의 금융불균형 정도가 심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금년 들어 금융권 가계대출과 개인의 주식신용융자 잔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였고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의 증가폭도 주요국중 가장 높았다. 소폭의 금리인상으로 금융불균형을 되돌리는 데 한계가 있으나 통화정책 기조변화의 신호역할(signalling effect)을 통하여 경제주체들의 위험추구 행위 및 레버리지투자와 나아가 자산가격 급등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8월의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통화정책 상황은 여전히 완화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기대인플레이션으로 도출한 실질장기금리(국고채3년 금리 기준)가 마이너스(-) 수준을 지속하는 가운데 소비자물가에 기반한 실질장기금리도 금년들어 마이너스(-) 수준으로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준금리 인상 이후에도 가계부채와 주택가격의 높은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자금조달금리가 여전히 낮은 데다, 전세 및 주택 공급물량 부족 등에 따른 주택가격상승 기대심리가 가세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거시경제와 금융상황을 균형적으로 보아가면서 추가인상의 시점과 속도를 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향후 통화정책 수행시 다음과 같은 점을 중점적으로 고려하고자한다.

첫째 실물경제와 물가상황의 지속적 개선여부를 꼼꼼히 점검해 나갈 것이다. 우리 경제는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서 코로나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수요회복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저성장 기조가 가속될 위험도 있다. 특히 최근의 경기회복이 글로벌 IT호황에 따른 수출과 투자 회복에 힘입은 바 크고, 통화정책의 보다 직접적 대상이라 할 수 있는 민간소비가 아직도 코로나 이전 수준을 밑도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향후 백신접종 확대를 계기로 소비반등(pent-up demand)이 기대되지만 코로나19 전개상황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고 정부이전소득을 제외할 경우 가계소득 개선세가 미약한 점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내년에는 다시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기대인플레이션이 낮아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금년 9월 기대인플레이션율(향후 1년)은 2.4%로, 작년 6월(1.6%, 사상최저) 이후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다만 소비부진, 저물가 현상의 배경에는 구조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는 만큼 이로 인한 통화정책의 완화적 bias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할 것이다. 동시에 주요국과 달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에 자가주거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체감물가와의 괴리가 지속되고 있으므로 중기적으로 주거비 반영도를 현실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물가지수에 자가주거비를 포함하고 있는 미국, 독일 등 주요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자가주거비를 CPI와는 별도의 보조지표로 작성하고 있는 데다 시장가격이 아닌 계약가격 기준을 적용한다. 

둘째 금융불균형 상황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지금과 같이 자산가격 상승이 신용팽창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경우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율이 목표치를 하회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채수준이 과도할 경우 자산가격 반락 가능성과 취약부문의 디폴트 리스크가 증가하여 금융안정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거시경제적 측면에서도 수요여력이 제약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부채가 증가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유량효과(flow effect), 즉 신용증가과정에서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는 효과가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저량효과(stock effect), 즉 원리금 상환부담 증가를 통해 총수요를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최근 가계부채 증가는 과거와 달리 20~30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 계층의 소비성향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향후 소비 기반의 상당한 잠식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 및 기업의 이자상환부담 증가가 불가피하나 금리수준이 위기 이전에 비해 여전히 낮아 우려할 정도는 아니며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정책금리 25bp 인상시 연간 이자부담규모는 가계는 2.9조원, 기업은 2.1조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금융안정 상황점검, 9.24일)된다. 취약부문에 대해서는 여타 지원정책을 보완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코로나19 이후 주택가격의 상승세가 확대되면서 유럽중앙은행, 뉴질랜드 등 해외에선 통화정책 운용시 주택가격을 명시적으로 고려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셋째 통화정책이 소득불균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코로나 위기 이후 재분배정책 등의 영향으로 ‘소득불평등’ 지표는 하락하였으나 자산가격 급등으로 인해 ‘자산불평등’ 지표는 상승 자산5분위 배율은 금융자산의 경우 2018년 7.5에서 2020년 8.0으로, 부동산의 경우 동기간중 6.2에서 6.7로 상승하였다. (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확장적 통화정책의 근로소득 증가경로는 제약된 반면, 자산가격 상승효과는 강화된 것도 주요 배경중 하나로 판단된다. 통화정책 완화기조를 조정하게 되면 경제의 불균등 성장을 시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며, 보다 집중된 재정정책과 금융중개지원대출 등 여타 정책을 병행할 경우 더욱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넷째 포스트코로나의 구조적 변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충격이 4차 산업혁명, 인구구조 변화 등과 맞물리면서 기존의 경제구조 변화를 가속할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 혁신과 고용구조 변화 등이 소비, 투자, 물가, 자산가격 등 거시·금융 상황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여 통화정책 수행시 감안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용시장 손실이 잠재성장률의 추가하락으로 이어지면서 통화정책의 구조적 완화압력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므로 규제개혁, 이해갈등조정 등을 통하여 신산업 발전과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온라인거래 확대 등을 바탕으로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의 추진이 가속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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