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6 15:26 (화)
43년 최장수 한은맨  이주열 총재 퇴임
43년 최장수 한은맨  이주열 총재 퇴임
  • 김은희 기자
  • 승인 2022.04.01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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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성품·업무능력 탁월
 지난 3월 31일자로 퇴임한 이주열 한은 총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3월 31일 퇴임했다. 이주열 총재는 재임 8년 동안 기준금리를 9차례 인하하고, 5차례 인상했다. 취임 당시 2.50%였던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0.50%까지 인하했다가 1.25%까지 끌어올린 상황에서 임기가 만료됐다. 리치에서 이주열 총재의 한은 재임 8년의 주요 업적을 자세히 다룬다.

 

이주열 총재는 통화정책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한은에서 43년이라는 최장수 근무 기록을 가진 그의 이력은 한은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화려하다. 경제 전망을 담당하는 조사국장과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정책기획국장을 거쳐 통화정책 담당 부총재보를 역임했다. 이어 부총재(3년) 재임 때는 당연직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으로서 기준금리 결정에 참여했다. 총재를 연임하며 8년 동안 금통위 의장으로서 통화정책을 주도했다. 한은이 지난해 주요국 중앙은행 중에서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었던 데는 통화정책에 대한 이 총재의 전문성과 자신감이 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이 총재가 8년 동안 보여준 통화정책은 ‘외유내강’으로 표현된다. 경제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금리 인상 때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재임 8년 동안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미·중 무역 분쟁,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는 기준금리를 과감하게 인하했고, 경기 회복세가 뚜렷하다는 판단이 서면 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주열 총재의 통화정책

2014년 4월 1일 취임 당시 세계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한국경제는 성장잠재력이 약화하고 저성장·저물가 현상이 지속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이 총재는 취임 보름 만에 세월호 참사를 맞았고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확산했다. 결국, 이 총재는 취임 4개월만인 2014년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2015년 5월 메르스 사태와 2016년 6월 브렉시트를 거치는 동안 1.25%까지 인하하며 경기회복을 지원했다.


이 총재는 2017년 들어 국내 경제의 회복세가 견조한 흐름을 보이자 11월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통화정책 정상화를 도모했고, 1년 간격을 두고 이듬해 11월에 추가 인상을 단행했다. 성장세가 견실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그대로 두면 가계부채 증가와 자산 가격 상승 등의 부작용이 확대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2019년 들어 미·중 무역 갈등과 일본 수출규제 등의 악재가 이어지자 이 총재는 기준금리 방향을 다시 인하 쪽으로 틀었다. 2019년 7월과 10월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경기회복 지원에 나섰지만, 그해 경제성장률은 2.2%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0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세계 경제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이 총재는 3월 16일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며 ‘빅컷’을 단행했다. 그리고 5월 28일 추가 인하를 통해 사상 최저 수준인 0.5%까지 낮췄다. 그런데도 2020년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마이너스(-0.9%)를 기록했다.


2021년 접어들면서 국내 경제는 팬데믹 속에서도 수출을 중심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반면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부작용으로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자산 가격이 급등하는 금융 불균형은 심화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의 고삐를 다시 죄며 2021년 8월 주요국 중앙은행으로서는 처음으로 금리 인상에 나섰고, 11월과 올해 1월에는 추가 인상을 단행하며 1.25%까지 끌어올렸다. 국내외 물가가 급등하고, 미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뒤늦게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한은의 선제 금리 인상이 재차 주목을 받고 있다. 블룸버그 출신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지난해 11월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연준이 말만 하고 있을 때 한은은 행동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정책의 출발은 소통

이 총재는 “정책의 출발은 소통”이라고 강조하며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공을 들였다. 통화정책이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투명성·일관성·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 메시지를 낼 때 늘 사전에 정교하게 조탁하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단어를 선택할 때는 사전적 의미와 함께 일반인에 수용되는 의미를 따로 분석했고, 표현을 갈고 닦아서 사용했다.


통화정책 방향을 암시하는 중요한 표현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왔다. 지난해 5월 “실기하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고, 8월 인상 때는 ‘첫발’이라는 표현으로 추가 인상 의지를 밝혔다.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점진적’이라는 표현을 ‘적절히’로 대체하며 기준금리 연속 인상 가능성을 전했다.


이 총재는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금통위의 권위 회복도 임기 중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금통위가 거수기가 아닌 치열한 정책 토론의 장이라는 점을 알릴 필요가 있었고, 이는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2014년 10월 금통위부터 소수의견 존재 여부를 당일에 공개했고, 2016년 2월부터는 소수의견 표명 위원의 실명을 밝혔다. 의결문 기술 방식에서도 경제 상황이 전망경로에 부합하는지를 명시하고, 앞으로 통화정책 기준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으로 기술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분석·전망 정확도↑

이 총재는 취임 직후부터 적절하고 일관성 있는 통화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경제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전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조사국장과 정책기획국장(현 통화정책국장)을 역임하며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취임 직후 부정확한 경제 전망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2015년 1월 장민 금융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을 조사국장으로 영입했다. 한은이 조사국장을 외부에서 영입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총재는 2015년 3월 30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중앙은행은 경제 전망에 기초해 정책 신호를 보내고, 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정책 결정을 내린다”며   “경제 전망에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신뢰도를 높이고 원활한 소통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한은이 모니터링하는 경제지표도 대거 확충했다. 월별 카드승인 실적, 외국인 카드 매출 및 온라인구매 데이터 등을 경기 분석·예측 지표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또 경제 전망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감염병 확산 모형을 이용한 경제 전망(2020년 6월) 등 경제 전망 모형도 지속해서 개선했다.

현안 분석 중요성 강조

이 총재는 재임 하는 동안 한국경제가 해결해야 할 중요 과제로 저출산·고령화와 고용 문제를 꼽고, 경제연구원에 집중적인 연구를 지시했다. 그는 저출산·고령화를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이 식어가는 주요 원인으로 봤고, 고용은 경제성장의 최종적인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한은 경제연구원은 2017년 4월부터 9월까지 15차례에 걸쳐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서는 고령화의 원인과 특징은 물론 경제성장, 경상수지, 노동수급, 소비, 인플레이션 등에 미치는 영향을 여러모로 분석됐다.

또 2018년 7월부터 12월 중에는 고용 관련 기획연구보의 역할고서 14건을 발간했다. 여기서는 고용구조의 특징과 과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생산성, 청년실업, 최저임금, 창업 효과 등을 분석하고 경제정책을 조명했다. 한은은 이들 연구를 바탕으로 정책 대안을 마련해 청와대와 정부·유관 기관에 제안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한은의 연구기능에 있어 학술적 가치보다는 현안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코로나19나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주요 이슈가 발생할 때 이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보고서를 집중적으로 발간해 통화정책과 경제 전망의 주요 참고자료로 활용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활동 참가율 변동요인, 고용 재조정 및 거시경제적 영향, 가구소득 불평등에 미친 영향 등에 관한 분석이 대표적이다.


국제협력 강화

이 총재는 연임 첫해인 2018년 11월 11일 국제결제은행(BIS) 이사로 선임됐다. 우리나라가 BIS에 가입한 1997년 이후 최초의 이사직 수임이었다. 임기는 2019년 1월부터 3년이었으나 지난해 11월 6일 BIS 이사회에서 이사로 재선임됐다. 이 총재가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의 ‘이너써클’로 불리는 BIS 이사회에 참여하면서 이들과 언제든지 직접 소통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국제금융 현안에 대해 우리의 입장과 의견을 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 총재는 임기 동안 캐나다와 스위스 등 주요 기축통화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연장하며 외환 안전망을 공고히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은은 2017년 11월 캐나다 중앙은행과 만기와 한도를 사전에 정하지 않는 방식의 통화스와프 상설계약을 체결했다. 상호 무기한·무제한 형태의 양자 간 통화스와프는 처음이었다. 이어 2018년 2월에는 또 다른 기축통화국인 스위스 중앙은행과 106억 달러 규모의 만기 3년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해 3월 계약을 연장하면서 만기를 5년으로 확대했다. 캐나다와 스위스는 미국·유로존·영국·일본과 더불어 6대 기축통화국으로 꼽힌다. 이들 나라와 통화스와프를 맺은 비기축통화국은 중국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였다.


이 총재는 2017년 10월 사드 갈등으로 한중 관계가 냉각된 상황에서도 세간의 예상을 깨고 중국인민은행과의 통화스와프 연장을 끌어냈다. 여기에는 국제무대에서 돈독한 관계를 쌓았던 중국인민은행과의 신뢰가 바탕이 됐다. 이 총재는 코로나19 사태 직후인 2020년 3월 원·달러 환율이 1300원에 육박하며 외환시장에 긴장감이 감돌았을 때 한미 통화스와프를 발표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19일 비상경제 회의에 참석한 이 총재에게 이례적으로 두 번에 걸쳐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2020년 7월과 12월 두 차례 연장을 거쳐 외환시장이 안정되면서 예정대로 2021년 말 계약을 종료했다.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 준비

이 총재는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에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준비해 나갔다. 국가적 차원에서 CBDC 도입이 결정되면 차질 없이 발행할 수 있도록 기술적·제도적 준비를 해놓겠다는 것이 이 총재의 생각이었다. 이 총재는 이를 위해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모의 테스트를 단계적으로 시행했다. 2018년 2월 가상통화연구반을 신설한 뒤 이듬해 2월에는 디지털 혁신연구반으로 개편했고, 2020년 2월에는 디지털화폐연구팀으로 확대했다.


또 카카오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를 모의실험 연구용역사업자로 선정해 지난해 8월부터 CBDC 모의실험을 진행했다. 제조·발행·유통 등 기본기능을 구현하는 1단계 모의실험은 지난 1월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지금은 오프라인 결제 등 확장기능 및 신기술 적용 가능성을 검증하는 2단계가 진행 중이다.


이 총재는 박근혜·문재인 정부에 걸친 8년 동안 한은의 중립성과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총재는 43년을 근무한 최장수 한은맨으로서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중시했다. 특히 청와대나 정부의 기준금리 관련 발언에는 가차 없이 비판했다. 시장 참가자들이 한은보다 권력의 눈치를 더 살피는 순간 통화정책은 신뢰를 잃고 기능을 상실한다는 판단에서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놓고 금융위원회와 대립할 때도 이 총재는 단호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개정안이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이자 임무인 지급결제 기능을 침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총재는 국가가 개인의 정보를 과도하게 수집·감시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은 ‘빅브라더법’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은희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재임 8년 부문별 주요 업적

프로필

▲ 학력
- 원주 대성고(1970년) 
- 연세대 경영학 학사(1977년)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경제학 석사(1988년)

▲ 경력
- 1977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 통화정책담당 부총재보, 부총재를 역임한 후 2014년 총재로 임명되어 2018년 연임
- 한은 총재 연임은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맡기 시작한 1998년 이후로는 처음이며 정권이 바뀐 이후 연임된 것도 처음
- 부총재 퇴직 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고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로 활동한 2년을 제외하고 43년을 한국은행에서 근무. 이는 한국은행 최장수 근무 기록
- 한국은행 내 핵심 요직을 거치는 동안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17년간 참석한 통화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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