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7 10:16 (화)
발칸반도의 심장, 불가리아
발칸반도의 심장, 불가리아
  • 이덕희 칼럼리스트
  • 승인 2022.11.2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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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벽화 융화된 예술복합체

 

불가리아(Bulgaria)는 동부 유럽 발칸 반도 남동부에 있는 나라로 북쪽은 루마니아, 남쪽은 그리스, 남동쪽은 튀르키예, 동쪽은 흑해, 서쪽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일부로 둘러싸여 있다. 1396년부터 500년간 오스만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으로 자치공국이 됐다. 1908년 불가리아 왕국으로 독립했으나 1945년 공산당이 집권해 인민 공화국이 됐다. 1989년 동유럽 민주화 영향으로 1991년 불가리아 공화국이 됐다. 발칸 반도 국가 중 유일하게 평화적으로 민주화가 된 나라다. 정식 명칭은 불가리아 공화국(Republic of Bulgaria)이다.

마다라 기수상(Madara Rider)은 불가리아 북동쪽 마다라 마을 부근 약 100m 높이 절벽에 부조로 705~801년 일어난 일들을 새겨 놓았다. 8세기 초 불가리아 왕조 개국 첫해에 만들어졌고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부조 내용은 기수가 말의 발아래에 누워 있는 사자를 창으로 찌르고 있다. 기수 뒤에는 개가 달리고 있다. 


이를 조각하는 방법은 첫째, 넓이 1.5cm와 깊이 2cm로 바위에 홈을 파내 윤곽을 나타냈다. 둘째, 표면 주위의 바위를 깎아서 조각이 도드라지게 했다. 셋째, 멀리서도 잘 알아보게 하려고 붉은색 회반죽으로 덮었다.


이 부조는 특유의 현실주의적 성향을 띤 조각이다. 부조에 새겨진 명문은 불가리아 왕조 개국 초부터 유명한 칸 통치 체제까지 사건의 연대기를 나타내 역사적 자료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바노보의 암굴 성당군(Rock-Hewn Churches of Ivanovo)은 카르스트 단층 지형의 자연 발생적인 동굴 내에 있다. 그 원형과 원재료가 잘 보존돼 있다. 이바노보 마을 근처에는 여러 개의 암굴 성당, 예배당, 수도원, 수도사 독방들이 밀집해 있다. 14세기경 그려진 수도원 프레스코화는 중세 불가리아 미술의 비범한 예술성과 주목할 만한 예술적 감수성을 보여주며 남동부 유럽의 기독교 예술 작품의 중요한 성취다. 이 프레스코화는 신고전주의 주제의 요소들과 시대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비잔틴 교의를 잘 담고 있다.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카잔루크의 트라키아 인 무덤(Thracian Tomb of Kazanlak)은 트라키아 왕인 세우테스 3세가 건설한 수도 세우토폴리스(Seutopolis) 근처에 있다. 대규모 네크로폴리스(공동묘지)의 일부다. 이 무덤은 트라키아 인의 창조적인 재능을 표현하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곳의 프레스코화는 트라키아의 회화 예술과 문화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음을 잘 보여준다. 또 이 그림은 헬레니즘 장례 예술 발전의 중요한 단계이기도 하다.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릴라 수도원(Rila Monastery)은 10세기경 동방정교회(Orthodox Church)의 성자 반열에 오른 은둔자로 알려진 성 요한(St John)이 설립했다. 수도원을 비롯해 성 요한의 금욕적인 삶의 은둔처로 매우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다. 이 수도원은 불가리아 슬라브족의 가장 오래되고 활발한 종교 중심지며 특유의 건축과 벽화가 서로 조화롭게 융화된 매우 훌륭한 예술복합체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 체제(1400~1878) 아래 지속적인 위협이 있었지만, 슬라브 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오스만 제국의 모든 그리스도 국가들의 문화와 예술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198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396년 불가리아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정복되고 약 500년에 걸친 지배에도 그들의 문화와 정신을 보존하는 유일한 영적 중심지는 불가리아 정교회였다.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지정할 것을 요청하고 정교를 핍박했지만, 오히려 지하교회를 비롯해 다수의 정교회가 설립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불가리아 내의 유적지 대부분은 기독교적인 것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키릴문자다. 이 문자를 발명한 사람도 불가리아인 조상이다. 이들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유적지는 그곳에 사는 자들의 정신과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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