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0:04 (화)
반복과 중첩의 구상적 표현
반복과 중첩의 구상적 표현
  • 김은정 발행인
  • 승인 2023.04.22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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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풀어낸 정철의 삶
정철 화가모습

 

화가 정철은 삼합 장지에 세필로 수천만 개의 산(山) 글자를 겹쳐 쓰는 작업을 통해 산을 담는다. 
화폭에 잔잔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색깔을 7~8번씩 바꿔가며 산이라는 글씨를 가득 채워 넣으면 
자연의 풍경이 드러난다. 리치에서 정철의 세계를 자세히 소개한다.

정철의 자연은 한 번의 붓질로는 불가능하다. 그의 산에는 나무도 풀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세필의 선만으로 화폭을 채운다. 한 겹도 아니고 여러 겹이다. 위아래로 그은 선들은 위로는 태양을 향하고 아래로는 대지를 향하는 식물적 존재의 방식을 제시할 뿐이다. 산에 서식하고 있다고 가정되는 요소를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자연의 과정을 작업의 과정에 중첩하는 방식이다. 동양화 붓으로 그리고 나중에 서양화 세필로 덧그리는 화면은 여러 층의 복합체다. 때로 산이라는 글자 세필로 찍어서 쌓아 올리기도 한다. 


수많은 반복을 하는 작업은 미의 창조를 넘어선 수행의 차원에 가깝다. 어떤 것이 그려졌든 그림 자체가 추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작은 집과 사람, 동물, 구조물 등을 나타내는 재현적인 선이 아니라 추상적인 선이다. 종이나 캔버스 위에 아크릴 과슈로 그려진 풍경은 서양화·동양화의 구별을 무색하게 한다. 동서양화 붓을 모두 활용하는 정철의 붓질에는 스밈도 있고 겹침도 있다. 그는 자기 작품이 불투명 수채나 분채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화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은 색감을 결정한다. 녹색은 여름, 붉은색은 가을, 흰색은 겨울을 연상한다. 산이 품고 있는 것은 야생 동물 또는 가축과 사람들, 그리고 자연에서 필요한 만큼만 얻는 고풍스러운 삶의 장치들이다.


이선영 미술평론가는 “정철의 풍경에는 불연속의 지점들이 있다”며 “우선 산 안쪽과 산 저편이지만, 산 안에도 다른 계절이, 가령 전경은 봄, 원경은 겨울 같은 모습 있다. 차례로 짙어지는 색조의 계열과 글자 등이 중첩된 선들은 무거운 느낌 없이도 자연의 깊이를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철은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리기는 하지만, 대부분 도시인일 관객의 향수에 호소하는 상투적 소재를 나열하는 것은 아니다”며 “그의 실제 체험은 자연에 대한 도시인의 원형적 이미지와 가까울 따름”이라고 했다.


“산자락 아래의 마을 아이들은 고향을 원형으로 하는 유토피아의 전형적인 표현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정철에게는 그것이 실제의 체험이었고 기억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는 산이 둘러싸인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햇빛이 잘 드는 산자락에 앉아 신작로 쪽을 바라보며 산 너머의 세계를 꿈꾸었다.

그 자리는 대개 무덤이었다고 한다. 산 안의 또 다른 산이라고 할 수 있는 무덤가에서의 상상은 작가가 30대까지 ‘무덤 앞에서’라는 제목의 작품을 하게 했다. 하지만 생의 끝이 아니라 생과 사의 동시적 터전인 산-무덤은 어둡지만은 않았다.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동양에서 자연스러운 순환적 세계관은 종말론적 비극과는 차이가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정철의 ‘믿고 싶은 땅’ 연작은 땅에 대한 믿음이 발로다. 믿음은 본질·근원·기초·시원이자 구하고 바라기의 다른 말이며 변함없는 은혜로움과 변치 않을 믿음이 미적 개간의 원형이다. 또 생명의 유지와 상처, 고독, 연정, 그리움 등으로 은유된 것들이 ‘믿고 싶은 땅’을 일구게 하는 동기”라고 짚었다.


정철은 이를 토대로 순수하고 균형 잡힌 상태를 유지한 채 자연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생명력 꿈틀거리는 본연의 자연과 인간 삶의 상관성에 개인의 서사를 군더더기 없는 조형 요소로 심어놓으면서 땅의 순수함에 대한 믿음, 깊이에의 다름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정철이 목마른 그리움이 목 타는 그리움이 될 때를 회상하며 그린 ‘무덤 앞에서’ 연작 함께 그의 ‘산’ 시리즈와 ‘믿고 싶은 땅’ 시리즈는 작가의 눈과 마음으로 거둬들인 에세이지만, 그 내면엔 생과 사에 관한 사생이 녹아 있다. 아울러 부재와 존재, 결핍과 충족을 담아낸 진실한 자전적 위치를 지닌다. 나아가 20여 년 동안 줄곧 그의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아온 표출의 거푸집으로서도 손색이 없다고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평했다.


“‘믿고 싶은 땅’은 자연의 본질이며 어머니이다. 그것은 너무도 크고 깊어서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으며 문자나 언어적으로도 감히 표현치 못할 고독한 상처다.”(정철) 그 원류는 부모라는 존재와 그로 인한 다양한 사적 레이어가 놓여 있으나 그렇다고 공유 불가능을 지정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 레이어는 작가 심리의 유동성을 재해석하며 타자의 사유를 소환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그것은 일종의 재연이다. 재연은 미학 또는 철학적 개념에서의 재연과는 다르다. 


홍 평론가는 “정철에게 있어 재연이란 현실을 토대로 전혀 새로운 것을 토해내는 개념에 가깝다”며 “즉, 재연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매개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의 세계가 드리워지는 무대이자 가시적 환기를 뛰어넘는 공감각적인 상황을 촉발하는 축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달리 보아 ‘은폐된 기억의 시간’이며 불변의 믿음과 본질로서의 땅이고, 실재와 비실재 간 거리감 혹은 분절의 골을 나타내는 기호”라고 했다.
정철의 ‘믿고 싶은 땅’은 실존을 확인하도록 하는 기억의 환기와 소환이면서 한 번도 잊지 않고 살아온 정철 삶의 연장이다. 이 연장 말미에는 존재하는 것들과 사라지는 것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지워버린 채 목도되는 것과 내재한 것의 무게를 교환한 흔적들이 녹아 있다. 이는 시간의 품 안에서 광범한 연계(連繫)로 드러나는 존재의 본질과 생의 파편들, 전환이라는 방식으로 생성되는 조각된 사고의 유연한 연결과 유영을 나타낸다. 이 가운데서도 존재에 대한 인식 없이는 달성될 수 없는 환기를 보여준다. 


홍 평론가는 “‘믿고 싶은 땅’은 시공을 휘감는 에너지, 붓이 지나간 흔적 하나, 흐름의 한 면, 일편의 기억 또는 그로부터 빚어진 심상이 갖는 작은 떨림 등으로 인해 대상의 심미적 차용화로 이어지고, 그 때문에 시각예술임에도 시각의 범주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면서 “마치 수없이 일일이 쪼개고 다듬은 시간의 파편을 하나씩 거둬들임으로써 응축과 확산이 격동하듯 반복되는 양상도 그의 그림에서 마주할 수 있는 지점이다. 더구나 응축과 확산 사이마다 축적된 에너지가 각각의 파동이 돼 생성되는 접촉변성작용은 작가적 개성을 담보하면서 그만의 특질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김은정 발행인

“산은 어려서부터 나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나의 아버지이며 스승이었다. 
 그 산에 올라 그리움을 달래고 만남을 간절히 바라왔다. 
 언제나 그 너머에 있을 이상향의 세계를 그리며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다. 
 지금 나는 산이라는 문자를 수없이 반복해 화면에 새기며 아직도 저 산 너머에 있을 다른 세상을 꿈꾼다. 
 그곳에는 새로운 바람이 나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새로운 힘을 전해줄 달콤함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정철

정철 프로필

· 개인전 30회(서울·대전·천안·일산·양산·중국·프랑스 등)
· 한국화 동질성전(청주·광주·대전·전주·서울)
· 한국 선면회전(서울시립미술관·오사카한국문화원·강릉미술관등)
· kama(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 Seoul art Fair(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 Finding Beauty of Love and Peace(아랍국립미술관)
· Kdrea and Dubai(두바이 현대미술관)
· 한중교류전(하얼빈대학·롯데갤러리 등)
· 대전한국화회전(타임월드갤러리 등)
· Manif ,seoul(한가람미술관·서울)
· Art  Daegu(대구 엑스코)
· Art  mezt(프랑스)
· 니스시 아시아작가초대전(프랑스)
· 상해아트페어(중국)


· 중심축 경계를 넘어(선송화랑 베이징)
· 아트부산(부산 백스코)
· 바람과바람의대화(인천시립월전미술관)
· 꿈과일상(양평군립미술관)
· 화랑미술제(코엑스 인도양홀)
· 기운의 조율(아트센타 쿠)
· KIAF(코엑스)
· 정철·이상열 초대전(스페이스 나무)
· 그 외 단체전 300여회

· 강의 경력 : 추계예술대학교·중앙대·한남대대학원 출강 및 역임
· 소장처 : 국립현대미술관·한국산업은행·KB국민은행·서울시립미술관·주식회사SK·대전시립미술관·제주해군기동사령부·조이마루·대전방송·국제태권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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