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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주년 바이오세라 전형탁 대표 씻고 마시며 숨쉬기 행복한 세상 희구
벌써 20주년 바이오세라 전형탁 대표 씻고 마시며 숨쉬기 행복한 세상 희구
  • 월간리치
  • 승인 2014.07.09 12:08
  • 호수 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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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세 가지 꿈이 있습니다. 가족과 이웃, 나아가 온 세계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저와 저희 임직원들은 최선을 다할 겁니다.” 과학자이면서 정도 경영의 길을 걷고 있어 더 믿음직한 ‘바이오세라’ 전형탁 대표이사를 6월 10일 창립 20주년 기념행사장에서 만나 그가 걸어온 길과 계획 그리고 꿈 이야기를 리치가 정리해 본다.

꿈을 향해 삶을 통째 걸다 보니 어느 새 저절로 노자(老子)가 설파했던 ‘상선약수(上善若水)’ 철학을 기업활동에 그대로 옮겨 실행하고 있는 이가 바로 '바이오세라(BIOCERA)' 전형탁 대표이사다.
△세제 안쓰고 빨래한 옷 입고 열심히 행복하게 활동하는 세상 △집집마다 활성산소 산성화세균 등 유해물질은 최소화 하고 알카리 환원수를 많이 마셔 당뇨, 고혈압 등의 고위험 질병 원인을 낮춰 건강이 증진되는 나라 △샤워기를 통해 공급되는 물 속 세균과 클로로포름 등의 발암물질 걱정 없이 유해 성분에 노출됐던 몸을 씻을 수 있는 환경이 영원한 소망이다.
때론 너무 더디게 느껴질지라도 그는 오직 인내하는 마음으로 끝내 다가올 미래를 믿었고 꾸준한 진척이 있었다.
먹고 마시는 것에서 몸을 씻고 빨래 하는 일까지 실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물관련 제품군이 해외에서 더욱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자동차와 의료 등 물론 생활 곳곳에 쓰이는 다양한 기업들의 제품에 향균 항산화 원재료 공급에 없어선 안될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창립 20주년을 맞은 이번엔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 공기 정화 장치를 자신 있게 내민다.
숲 속에 온 듯 ‘포레스트 에어’

“노 케미컬, 노 에너지, 에코 프렌들리 원칙 그대로 숲 속 공기만큼 방 안이나 사무실을 상쾌하게 해 드릴 겁니다.”  
바이오세라가 새로 내놓은 야심작 포레스트에어(FORESTAIR)는 옥시전제너레이터의 일종이지만 핵심 성능이 항균 항산화 세라믹 제품이기 때문에 화학공정을 거친 제품과 다르고 전기 또한 필요하지 않다.
“전기 없이 자연적으로 산소와 음이온을 발생시키는 나노 바이오세라믹을 담았으니까요. 공기 속에 있는 이산화탄소나 강산성 가스, 포름알데히드 같은 유해가스를 흡착하면서 깨끗한 산소만을 배출해 주는 제품입니다.”
바이오세라 세라믹 특유의 음이온 방출 기능과 함께 피톤치드향 카트리지를 곁들여 탈취효과에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안정감은 높일 수 있는 기능까지 갖췄다.
자연법칙과 세라믹이 어우러지니

싱그러운 나무와 식물들이 유해 요소는 흡수하고 산소를 발생하는 원리와 같다.
“많은 질병이 세균과 바이러스 때문에 일어 납니다.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핵폭탄을 동원한 전쟁이나 화산폭발 쓰나미 등 대형 재앙보다 바이러스와 세균이 더 위험한 것 아니겠습니까?”
유럽이 수 세기에 걸친 패스트로 인구가 반토막 난 것, 1차대전이 1918년 종식된 이면에는 스페인 독감 등 새로운 바이러스로 많은 병사들이 앓거나 목숨을 잃으면서 싸움터에 보낼 군인이 부족했던 것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을 전 박사는 강조했다.
사스, 에볼라 등 유해 바이러스와 세균 위협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위험이 더축 커지고 있다는 생각에 공기청정 효과를 내는 제품에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전 박사가 스스로 되돌아 보기에도 1994년 국내 처음으로 항균볼과 은나노 항균제, 액상세라믹 코팅제를 개발해 출시한 지 벌써 20년이다.
그는 담담히 말한다. “24년 전 막대기 하나 박았던 일이 친인척이 함께하는 말뚝이 되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떠받치는 큰 기둥으로 성장한 창업이어서 보람을 느낀다”고.
결정적 계기는 요업기술연구원 다닐 때 분무기로 유명한 한 기업이 항균 세라믹볼을 개발해 달라는 요청에 응했던 것이라고 회상한다.
국내 처음 항균 세라믹볼을 상용화한 기세를 살려 1994년 대성세라믹연구소 설립 멤버로 참여했고 1998년 벤처기업으로 등록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만경강 홍수와 대학 은사님의 가르침

“어릴 적 살던 곳 가까이 흐르던 만경강 가에서 숱하게 봤어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범람하면 가축들이 휩쓸려 목숨이 경각에 달리기도 하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기 일쑤였지요. 앞으로 사람이 100세까지 산다지만 물난리 속에 허우적 거리듯 건강과 행복이 위협받을 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게 되는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함께 의지할 수 있는 기둥을 세우기도 한다는 사실에 눈을 떴어요.”
위협받는 사람들이 의지할 곳을 만들어 주는 적극적인 타개책에 대한 깨달음과 더불어 대학 시절 은사님께서 베푼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의 삶이 가능했다고 그는 믿는다.
“제겐 무척 소중한 멘토셨던 교수님 덕에 삶의 바른 길을 볼 줄 알게 됐고 그 은공을 다른 사람에게 갚으려고 전세계 곳곳을 다니며 국제세미나에 연수에 강연 등, 요즘 말로는 재능기부라 해야할까요? 돌아다니다 결심했던 뜻이 씨앗이 되어 이렇게 자라난 셈입니다.”
게다가 딸 아이에게 찾아온 아토피가 너무 심해 원천적으로 극복해야 겠다는 생각에 탄생한 것이 바이오세라믹 대표적 응용 제품인 세라믹 볼이다.
“세제나 화학물질이 아토피의 원인입니다.”
처음엔 딸랑이 장난감 공장을 찾아 가서 세라믹볼을 넣어 세제를 덜 쓸 수 있는 제품 개발에 착수해 1997년에 상품화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시장에선 냉혹하게 외면 받았다. 세제 제조 기업들의 공세에다 바이오세라믹 원천기술은 물론 친환경 무화학 무에너지 패러다임이 인정받지 못한 탓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원천기술을 활용한 제품 납품을 잇던 중 2005년 독일에서 선풍적 인기가 일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국내엔 수십명 해외엔 수만명

전 박사가 아쉬워하는 부분이 있다면 아직 국내 보급이 선진국을 비롯한 해외보다 더디다는 정도다.
바이오세라 국내 직원은 20여 명으로 단출하지만 세계 곳곳에 제품 보급에 매달리는 인원은 수 만에 이른다.
아시아, 유럽, 미주, 오세아니아 등 진출 하지 않은 대륙도 없고 어떤 나라에선 전통적 의식구조에 맞춘 그 나라 만의 응용제품을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한다.
“우리는 온 세계 사람들이 날마다 바이오세라 제품에 힘입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업활동의 목적에서 이윤은 저 뒤로 미뤄 놓고 이웃과 고객들의 건강과 행복 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아 성장을 거듭했던 원동력은 그 만의 탄탄한 과학 지식과 안목, 그리고 앞선 기술개발 역량과 더불어 정직하고 굳센 신념에서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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