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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피렌체
  • 월간리치
  • 승인 2014.10.10 15:23
  • 호수 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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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중세 도시, 피렌체통째 아름다운 예술의 본향

양모제조업 발달 이후 재력이 커지면서 르네상스 미술을 꽃피웠던 14세기에 이어 15세기 메디치 가문의 강력한 자치 이후 건축가를 비롯해 수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피렌체. 르네상스시대 이후 수많은 건축물과 예술품 말고도 눈길가는 곳곳이 아름다운 나머지 도시 자체가 아름다운 문화유산이다.

피렌체의 기원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59년 아르노 강에 식민지를 세울 때, ‘꽃피는 마을’이란 뜻으로 ‘플로렌티아’라고 임명한 것이다. 기원 후 1000년까지만 해도 작고 중요하지 않은 도시였지만 자치제도와 함께 발전하기 시작했다. 서기 900년에는 인구가 5000명이 었는데 1200년에는 3만 명으로 늘었다.
후에 양모 제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피렌체의 은행업자들이 성공하면서 도시에 수많은 재산을 가져오기 시작하였다. 14세기에는 여러 미술이 시작되면서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되었고, 다음 300년 동안, 피렌체는 역사상 예술의 중심지로 발전한다.
15세기 초반에는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통치하게 되어, 강한 자치 국가로 성장하면서 학문과 예술의 꽃을 활짝 피우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예술의 천재들, 단테를 비롯하여 보카치오, 마키아벨리 등 대문호들이 이 도시에서 태어나거나 활약했다.


건축가와 예술가의 고향

약 46만의 인구를 지닌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지인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피렌체 역사지구 전체가 1982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피렌체는 로마와 더불어 이탈리아 관광의 중심지라고 불리울 정도로 역사와 문화적으로 중요한 도시다. 상업과 금융업이 발달하면서 이탈리아 각지에서 뛰어난 재주를 지닌 예술가와 인문학자, 사상가 들이 피렌체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계 예술 유산의 많은 부분을 이탈리아가 간직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피렌체는 로마와 함께 엄청난 유산을 보유한 도시다.
피렌체 시의 중심지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예술작품과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하나의 박물관을 보는 듯 하다. 이것들은 대부분 11세기~16세기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들로, 두오모 광장을 중심으로 꽃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과 산지오바니 세례당 그리고 지오또의 종탑이 있고, 이곳을 중심으로 걸어서 단테의 생가와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과 베키오 다리, 그리고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모두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피렌체가 한눈에…미켈란젤로 광장

미켈란젤로 광장은 도시의 동남쪽에 있는 작은 언덕으로 피렌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절호의 지역이다. 피렌체처럼 도시 전체가 유적지로 지정되어 있는 곳을 둘러보고 나면 무엇을 보았는지 헷갈리게 된다. 특히 크고 작은 건축물이나 명화들이 많은 곳을 본 경우 먼저 전체적인 것을 둘러본 뒤 하나하나 자세히 보는 것이 효과적인데, 알맞은 장소가 바로 미켈란젤로 광장이다. 이곳에서 촬영한 사진이 주로 피렌체 관광 사진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두오모를 비롯해 베키오 다리가 한눈에 보여서 인상적인 이 광장은 아르노강 남쪽 기슭의 언덕 위에 조성되어 있으며, 광장의 곳곳에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다비드상’의 복사품들이 서있다. 관광객들의 사진촬영지로 유명하며 여러 복제품이지만 예술작품들과 사진촬영이 가능하고, 장사꾼들이 피렌체와 이탈리아 관련 기념품을 팔기 때문에 가지고 돌아갈 선물등을 고르는 관광객들이 많다. 여러 각도에서 아름다운 중세풍의 피렌체의 시가지를 바라보며 르네상스시대의 화려한 도시의 모습을 상상하고, 역사의 한속으로 잠겨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

거리의 중심을 향하면 눈앞의 거대한 건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능한한 장엄하게, 더욱더 화려하게"라는 말처럼 175년, 엄청난 세월을 거쳐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 두오모는 피렌체 시내 어떤 외진 곳에서도 두오모의 아치형 돔의 일부분이 보일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하다.
두오모 성당은 1292년에 착공되어 1436년에 완공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이다. 깜비오가 설계를 하였고, 106m의 높이를 자랑하는 돔은 브루넬레스키 작으로 1420년 착공후 14년간 이 건축 공사에 종사했으며 사후 1461년에 완성을 보았다. 대리석 모자이크 장식의 벽체는 장관을 연출하며, 내부는 전성기 고딕 아치형 천정이 아치들로 받쳐져 있다. 관광객들이 직접 돔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보는 것이 가능하다.
두오모의 주변에는 볼 것이 굉장히 많다. 두오모 부속미술관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등 대성당에 관련된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도시의 구심점, 시뇨리아 광장

두오모 지역에서 화려하고 세련된 상점가를 남쪽으로 걷다 보면 넓은 시뇨리아 광장을 만날 수 있다. 중세 이래로 피렌체의 중심인 시뇨리아 광장은 오늘날까지도 피렌체 사람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을 모으는 정치적인 연설과 시위의 장소로 남아있다. 광장에는 복제품을 비롯한 많은 예술작품들이 즐비해 있어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다. 곳곳에서 거리의 판토마임이 열리고 있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도 마련되어 있다.
공화주의의 이상이 명백히 표현된 절대군주의 살해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에서 지암볼로냐의 기수상의 듀크 코지모 1세의 초상화식 동상(1594년)과 사비니 여인의 강간까지, 이 곳에 있는 건축물에서 신화와 과거의 정치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광장 중앙에는 넵튠 분수가 있고 종교개혁을 주도하다 처형된 사보나롤라의 처형지라는 표식인 화강암이 있다. 시뇨리아 광장을 상징하는 건물은 94m에 달하는 거대한 탑이 있는 베키오 궁전이다. 베키오 궁전은 현재 피렌체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웅장한 외관은 전형적인 중세풍이지만, 건물 내부는 여러 예술가의 수많은 작품으로 장식되어 있어 외관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영화 속 그 장면 베키오 다리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 등장해 피렌체를 찾는 연인들의 필수 코스인 베키오 다리는 아르노강에 세워진 피렌체의 최고로 오래된 다리로 1345년에 건설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폭격으로 아르노 강의 많은 다리가 파괴되었지만 베키오 다리는 지금도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다리라고 해도 여느 다리와는 달리 금속 공예품과 액세서리를 파는 수십 곳의 상점이 모여 있는데, 르네상스 이후 금속 공예품을 만들었던 장인들의 공방이자 생활 공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우피치 궁전과 강건너의 피티궁전을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했던 베키오 다리는 윗쪽으로는 귀족과 상인이 아래쪽에는 서민들이 거닐었다고 전해지며, 16세기에는 금은세공하는 가게들이 즐비해있었다고 해서 당시의 번화된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 베키오 다리의 중앙에는 인물의 흉상이 하나 서있는데, 이것은 금세공인인 벤베누토 첼리니의 흉상이다. 또한 영화 “향수”의 배경지로 원래 베키오 다리에는 가죽처리장, 대장간 등이 있었으나 소음과 악취를 이유로 추방되어, 이후 금세공업자들이 들어 왔으며 현재까지 다양한 보석,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운영되고 있다.
아르노 강과 어우러진 베키오 다리의 풍경은 해가 질 무렵에 최고조를 이루며, 맞은편에 있는 폰테 알레 그라치에 에서 보는 베키오 다리의 야경 또한 일품이다. 베키오 다리의 상점에서 파는 귀금속류에 대해서는 평이 엇갈린다. 저렴하고 질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중국제에 바가지를 씌운다는 사람도 있으니 유의하도록 하자. 꼭 뭔가를 산다는 것보다는 노을이 진 다리를 보기 위해서라도 한번쯤은 방문해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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