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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너지 조형적 결합 능해
생명에너지 조형적 결합 능해
  • 월간리치
  • 승인 2015.12.10 12:20
  • 호수 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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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非)선형적인 선과 획들은 카오스적이다. 사물과 그림자의 중첩, 암호에 가까운 원환 기호의 도입, 나아가 우리가 살면서 순간 순간 경험하는 파편들의 집열이다. 그렇게 난형 혹은 부서진 채로 비대칭적이거나 물결치는 거대한 망(網)으로 탈물질화 한다. 관계의 생멸과 인과 연으로부터 자유로운 해탈을 꿈꾼다. 리치에서 신중덕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해 본다.

“신중덕의 그림은 창조 작업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놓는 전통적이 페인팅 경향과는 다르게 현실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채 아상블라주(assemblage)를 통해 흔적을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흔적은 중심에서 가장자리까지 연장하면서 이뤄지기도 하고, 동시에 개념적으로 정의된 해부학적 파편들을 그림에 삽입하는 식으로도 이뤄진다.” (프랑스 평론가 제라르 슈리게라)
그런데 파편화됐으되 연쇄하는 흔적들은 결국 근원적인 본질 속으로 녹아든다.  


난형 혹은 부서지고 비대칭의 집적

신중덕 작가의 그림에서 의도되고 있는 것은 회화 공간에서 육체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와 무질서 속에서 육체의 위상을 규정하는 회화와 형태의 의미다.
작가 자신이 ‘우주의 춤’으로 재구성한 이 세포분열 속에서는 우리가 살면서 순간 순간 경험할 수 있는 파편들로 형상을 이룬다.
파편화된 흔적들로 그는 유기체적 생명성을 그만의 공간 안에서 조밀하게 조직한다.
분해된 형태들이 때로는 ‘난형’으로  또는 부서진 채로, 아니면 비대칭적은 모습이거나 물결치는 점과 같은 형태로 집적(集積)시킨다.
이렇게 집적된 하부 구조 위에 신 작가는 면과 색의 현기증을 일으키는 카오스(혼란)를 일으킨다. 
신 작가가 만들어낸 공간 속의 면과 점과 기호들은 통일된 언어로서 사물들을 조작함으로써 감동의 고리를 확보한다.
탄생과 죽음이 순환하고 설령 반대되는 것들일지라도 겹칩과 인접으로 연결시킬 줄 안다. 신 작가는 다만 이 때 언어를 통제하고 영적으로 재배치하여 인생을 엿볼 수 있는 덧문을 열어놓았다.


낱낱의 파편들이 생명을 이루다

이보경(조형예술학박사)은 만화경 연작 가운데 마치 나무가 토해 놓은 잎사귀와 같은 파편들이 빛을 따라 부유하면서 화면의 배경 구조를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의미가 배제된 단순한 문양으로, 분절로서의 형태소처럼 쓰인다. 이들 문양과 형태소는 공간과 공간을 질서정연하게 연결하기도 하고 겹치는 과정에서 지우기도 하면 균질한 조형적 결합을 낳는다.
이렇게 연결된 사건들은 다시 역동적인 망(網)을 이룬 채 온 우주를 상정한 공간에 생명 이미지로서 구체적 형상을 갖추어 간다.
생명성을 강화하듯이 반복해서 그은 선으로 그래낸 형상들, 나뭇가지에 맺힌 봉오리와 나무를 포함해 파르르 떨고 있는 입방체들, 바람에 헝클어진 풀숲 사이에서 고개를 젖힌 꽃의 순간, 그리고 꽃이 한가득 만개한 순간조차 부동의 시간을 향한다.
어떤 것도 고정돼 있지 않은 세상인데 신 작가가 펼쳐보인 모든 것들의 멈춤은 과연 어떤 뜻이 내포돼 있을까.
“현재에 머무는 대상들이 연출한 광경들은 마치 자연의 순환과정에서 다른 단계로 가기 직전에 어떤 벼화가 이뤄지려는 극적 순간으로 지각된다.
전 단계의 완성적인 존재이자 다음 단계의 미완성적 존재가 되어 생명의 순차적 운동법칙을 재현하고 은둔과 발현의 현상을 반복하는 셈이다.
이보경은 “질서의 원리로 실현한 우주적 공간에 현실에서 가져온 생명이미지들이 공간과 시간을 교차를 이뤄낸다”고 봤다.
질서(원리)와 무질서(엔트로피)가 만나 관계를 맺고 나면 또 다른 차원의 원리가 잉태한다. 작품안에서 차원 사이를 이동하는 통로인 ‘계단’은 작품 자체가 이동과 변화 동학(動學)을 내포하고 있음을 뜻한다.


한 세대 지나도록 통째 작품에 몰입

30여 년, 한 세대 통째 회화적 탐구를 추구했던 신 작가 창작의 궤적이라 해서 굴곡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물질에서 생명의 리듬으로 리듬에서 우주만물의 원리와 사태를 형상화 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정은영 교수는 <만화경>연작이 구축한 구조와 현상이 시간의 켜와 결이라고 단언했다. 층이 지는 것을 뜻하는 켜와 무늬를 뜻하는 결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켜’는 시간을 두고 쌓인 퇴적이고 ‘결’은 퇴적이 펼쳐진 상태를 가리킨다.
붙였다가 다시 떼어내는 ‘데콜라주’ 작업이 반복되고 퇴적과 침식을 거쳐 형성된 엔트로피의 거대한 망. 질서정연한 그리드 구조에 균질적인 무질서의 흔적을 덮어놓는 작업을 거듭한다.
물질적 세계로, 사물에서 출발한 현상을 다시 탈물질의 영역으로 돌려보낸 작가는 이 ahesm 것을 의식과 사물의 흔적으로 제시한다.
구조와 현상, 의식과 사물, 실체와 그림자 등 이 모든 것이 시간 속에서 진동하면 하나로 통하는 전일적 세계를 그는 펼쳐보인다. 연기론(緣起論) 바탕에서 보면 인과 연에 의해 쉼 없이 움직이고 미세하게 진동하며 형상을 통해 드러났다가는 사라진다 피고지는 모든 것들의 순간 속에서 맺는 관계이자 생멸(生滅)이 드러난다.
겹치고 또 겹친 세계는 작가에게 자유화 해탈의 길로 향하는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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