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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새지평 한기주 작가 안과 밖 초현실 융합
사실주의 새지평 한기주 작가 안과 밖 초현실 융합
  • 월간리치
  • 승인 2016.01.10 15:16
  • 호수 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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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판을 파내고 찢어서 생생하게 드러나는 결 위에 한지의 독특한 질감을 입히는 작업에 매진해온 한기주 작가. 흘러가서 부재한 과거가 응집하는 현재성을 적나라한 사실성으로 재구성하기에 오히려 큰 울림을 품는다. 삶의 긴장과 긴박감, 눈으로 보이지 않는 실존성을 초월하는 작품세계를 리치에서 자세하게 조명해 본다.


너무나 사실적인 요소가 올올이 살아나서 순식간에 시야를 가득 메워버리면 오히려 추상성이 극대화된 이미지가 소용돌이친다.
구체적 이미지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나무 둥치를 쪼갠 절단면을 돋보기나 현미경으로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사람의 시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불가시적인 질서가 새로움을 물씬 풍긴다. 또한 순방향 셈법에만 익숙한 이성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내면 또는 이면에서나 잠재하는 원상(元象)들의 결합과 이탈이 극 사실, 초 현실 미학으로 끝없이 번진다. 


성찰의 깊이, 부재의 현존

원목판을 도끼나 끌로 파내어 성형한다. 찢기거나 긁힌 자국, 파편들을 20겹 두들겨 캐스팅(Casting)기법으로 그 흔적들을 전사(傳寫)하고 나면 1차적 원상태는 사라진다. 그 빈자리에 2차적 한지작업을 한 형상이 남는다. 한기주 작가는 이렇게 술회한다. “한지의 품성을 가지고 나의 삶이 개임된 나무와 종이의 표정에 의해 근본을 표정짓게 하고 이 표정 뒤에서 은밀히 말하고자 하는 나 자신의 여러 인격적 요소가 작용토록 한다”고.
한 작가의 작품엔 과거와 현재가 융합되는 통시성(通時性)이 두드러진다.
“현재의 시간 속에 나타난 사물들은 현재 속에 나타난 과거로서, 매순간 과거로 변환되어 나타난 현재”이기에 “현재는 그 흔적이 사물을 대신하는 부재(不在)의 현존이라는 것이다.
원상(元象)을 대신해서 나타나는 나뭇결의 표정은 나뭇결이 아니라 나 자신과 작업과정이 창조해낸 산물이다. 이 흔적은 원상의 은닉과 잠상(潛像)으로 새롭게 드러난다.
이 흔적은 기호(記號)랄 수도 없고 이미지의 범주로 보기엔 훨씬 광대하다. 기호와 이미지 범주와 의미가 교차하는 공간에 부재도 아니고 현존도 아닌 부재의 현존을 추구한다.
그는 말한다. “나의 작품, 흔적의 미적 의미는 끝없이 은폐와 은닉 안에서 드러남”이라고. 따라서 한 작가 작품세계엔 은유의 미학이 바탕으로 깔린다는 평론도 따른다.


사실성 극대화로 이룩하는 추상성

그의 작품세계는 지극히 추상적인 동시에 지극히 사실적인 요소가 한꺼번에 전신을 드러낸다. 일견 모순적인 이미지의 집합체로 다가온다. 그의 작업이 끝나면 구체적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무 둥치를 쪼갠 면의 결을 독특하게 캐스팅한 채, 사물 내부의 불가시적 질서를 가시화하고 그 내부면의 불규칙한 질서를 예술로 재현한다.
모더니즘 갈래에서 추구하는 ‘낯설게 하기’와는 결이 다르다. 모더니즘의 자기비판으로서 ‘평면성’ 혹은 ‘단색주의’ 또는 ‘미니멀리즘’ 아니면 ‘개념미술’의 단계를 뛰어 넘으려 모색하고 성찰한 끝에 색다른 ‘매채성찰’이라고 보는 논평을 얻기도 했다.
표현 대상으로서 사물적 존재 자체의 자립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눈에 보이는 표현과 매체 자체와의 등가관계를 끈질기게 탐구하는 이중성의 통합이 있다. 그리고 지극히 동양적인 매체에 대한 시각상을 특질로 한다.


깊은 물일수록…‘한지’의 수용성

한 작가는 작가노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한지가 갖는 품성을 사랑한다. 내가 흐르는 냇물에 비추어진 달을 보고 달을 느끼듯.”
“예술은 반드시 작가의 삶과 긴박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예술이란 한 시대의 삶의 현장 속에서 산출되는 긴장된 자신의 삶의 표명이며 나의 작업 속에서 내 의식의 표정이 무엇인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깊은 산에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노송의 꺾이고 굽어지고 휘어진 모습에서 멋과 여유, 그리고 아름다움을 공감하는 작가다. 온갖 비바람과 때때로 가뭄과 혹한을 거치면서 삶의 사투를 벌였을 행로에 숨어 있는 침묵의 메아리, 진체를 이루는 형상을 포착하기 위해 성찰을 거듭한다.
찍히고 찢어진 나무 살점의 표정 속에서 삶의 긴장과 긴박감에 눌린 자신의 삶을 본다는 한 작가. 삶을 조여오는 모든 속박과 현실들에 직면해서 그것들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저항하는 과정을 도끼와 끌로 힘을 다해 나무판을 가르고 파편화시키며 오히려 생생했던 나무결의 원상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여기다 한지가 배어든다. 격렬한 예술창조 작업에서 끝없이 부딪치고 깨지고 부서지는 고통이 그윽히 품어 안는 한지의 수용성을 담지한다.
“나는 대관령 산골짜기의 맑은 물에 내 얼굴이 투명하게 비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설레곤 한다. 맑은 물이 내 얼굴이 투명하게 비춘다는 사실은 심성과 작품의 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느 것이다. 얼굴은 물리적 현실이고 비쳐진 그림자는 마음의 은유이자 정신의 반영일 것이다.”
은유에 집중하고 간접 화법을 즐기는 과정에서 병렬이 아니라 융합과 합치의 공간과 형상을 구축해서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할까.


첨예하고 치열하게 극사실 체험

첨예하게 파고 들어 치열하게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기에 그가 관객의 심상에 옮겨 되살리는 공감영역은 ‘충실한 체험’의 무게를 지닌다.
한지가 품은 끈질긴 물성을 빌어 나무 둥치의 파편들, 쪼개어진 결들로 오히려 삶의 연희를 자연스럽게 절개(切開)시킨다. 일회성 단순묘사로서 사실주의를 무참히 뛰어 넘는 도약력.
물질적 한계, 물리적 제한, 기록된 의식과 경험 등을 완전히 뛰어넘는 심미안이 길어올리는 무수한 흔적들이 농(濃)과 담(淡)이 교차, 반복, 혼재되면 공감의 폭과 깊이가 무한해지는 체감효과를 뿜어내기 마련이다.
평면성이되 부조와 같은 입체감이 살아나는 비결은 아마 이런 것에서 연유하는 것이지 않을까.


공간을 통째 잠식하는 초현실

기본적으로 주어진 평면세계 위에 한지가 띄는 독특한 물성의 촉감과 매력을 활용해 자연 형상이 갖는 지극히 추상적인 법칙과 질서를 섬세하고 정결하게 드러내는 기법은 또다른 혁신성의 한 단면이다.
전통적 재질과 오늘 당대의 예술정신이 만나 펼쳐보이는 작품세계. 일련의 극사실적 초현실성은 체험이 깊게 용해된 것이어서 필연적으로 입체성을 향해 나아간다.
김복영 평론가는 이렇게 느꼈다고 한다. “분노에 찬 저항, 한스러움과 이지러짐, 침잠과 의기소침, 그리고 이것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들, 기쁨과 전율의 정서들, 또는 감정들에 이르는 그의 삶 모든 국면들이 용해돼 있다”고.
1차적 물성들을 연결짓고 켜켜이 쌓아서 긴 시간 거쳐 온 궤적을 통째로 은유하려는 시도. 이렇게 해서 물성으로부터 고차원적인 의미가 집약된 작품세계다.
한 작가의 은유 미학은 작품 표면의 표정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체가 사물과 사건에 부딪칠 때 발산되는 섬광이나 에너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또 하나 최근 들어서는 패어진 나무결과 파편들의 표정을 더욱 실감나게 하는 색채의 등장이 새로운 단계로 올라서려는 변신과정을 보여준다. 색채가 등장하면서 부조적이던 특질을 회화적인 것으로 변화가 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짙은 암바가 애용되는 것은 자시의 감정적 요인이 작용한 것이고 파내어진 나무결 패턴에다 철근을 병합시킴으로서 철근이 갖는 질감으로 작가 내면의 이야기를 더 크고 깊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극히 객관적 상황들을 빌려 삶의 단면들을 단숨에 열어제끼는 대단한 은유의 자태가 그의 작품들의 매력이며 장점이다.”(김복영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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