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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예술가 이종한 작가 일상보다 멋진 세상 일구기
멀티 예술가 이종한 작가 일상보다 멋진 세상 일구기
  • 월간리치
  • 승인 2016.02.11 19:12
  • 호수 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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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이미지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서 펼쳐 보이던 이종한 작가가 이제는 연작 시리즈로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아련한 그리움이 피어나는가 하면 언제나 머물고 싶으리만큼 꿈꿨을 법한 세상을 펼쳐보이기도 한다. 일일이 꼼꼼한 수공을 거치길 마다 하지 않는 작가정신 가득한 이종한 작가의 순수미학 세계를 들여다 본다.

멀티 예술가 이종한 작가
일상보다 멋진 세상 일구기


일상 속 이미지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서 펼쳐 보이던 이종한 작가가 이제는 연작 시리즈로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아련한 그리움이 피어나는가 하면 언제나 머물고 싶으리만큼 꿈꿨을 법한 세상을 펼쳐보이기도 한다. 일일이 꼼꼼한 수공을 거치길 마다 하지 않는 작가정신 가득한 이종한 작가의 순수미학 세계를 들여다 본다.


“나는 매일 매일 꿈을 꾼다. 순간 순간마다 꿈을 꾼다. 꿈의 시작은 하루에도 몇 채씩 집을 지었다 부수는 일이다.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집들이 산다.”
이종한 작가 마음 속에는 무수한 집들이 형성한 마을이 산다. 집이라지만 그냥 건축물일 리가 없다. 
생생한 詩片들로 부활하는 꿈

작가의 말을 모아서 들으면 당연히 이야기가 있다. 어릴 적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꿈과 희망이 숨쉬며, 성장하는 동안 강요받았던 규범과 질서에 타협하지 않으려 했던 의식세계의 갈등과 화해의 스토리가 깃들어 있다.
가고 싶은 곳과 가야할 곳 사이에서 수 없는 방황을 겪었던 시간의 점핑과 되돌림이 어울린 끝에 비로소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형상을 갖추고 생생한 이미지로 짜놓은 시편(詩片)들이 돋아나는 과정이다.
작가는 말한다. “늘 변함 없이 내 곁에 있는 일상적인 것들을 담아 나의 가치로 만든다”고.
평범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것에 깃들어 있던 의미를 되살리고 때론 잠시 놓쳐버렸던 경험을 예술감성의 촉수로 부활시킨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꿨던 꿈을 한지에 쏟아 붓는다.
“동네 모퉁이 골목에서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로 땅바닥에 집을, 그리고 나무를 그리고 하늘에 햇님과 비행기를 그리며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면서 어린 시절 기뻐했고 즐거워했던” 그런 ‘나’를 무한 생성시킨다.
그리고 “지금은 흙바닥이 아니라 물에 풀어진 닥종이에 색을 들이며 여러 사람들의 집을 만들면서 그 때 내 모습을 떠올리며 눈을 찡그리며 희열을 느낀다.”
<지금·여기> 배회와 탐색의 시기

“확실히 그는 어린아이에 가깝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는 천성이 낙천적이며 한마디로 천진난만하다. 아주 오랫동안 유치원생이나 그릴 법한 원시적인 이미지! 해 달 별 구름 산 나무 집 연필 기차 사다리 새 그리고 잠수함까지…. 생각해 보라! 이렇게 원초적인 이미지 외에 그려낸 추상적 그림들이 있었는가”
이종한 작가를 사랑하는 지인 가운데 <지금 여기(Here & Now)> 연작에 몰두하던 무렵에 대해 이광록 KBS PD가 논평과 함께 던졌던 반문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그의 화폭 위를 천천히 더듬어 보면 짜거나, 눈시울이 젖을 정도로 매콤하거나, 알싸하게 퍼지는 묘한 향기 사이로 목젖을 잡아당기는 새콤한 맛을 느낄수 있다”고 한다.
지난 2012년 이 연작들로 개인전을 열었을 무렵 미술학 박사이기도 한 이호영 화가는 “우리는 어제 만났던 사물을 다시 만날 수 없다. 지금 여기는 항상 새로이 탄생하는 만남들 속, 새로운 사물들”이라는 말로 이정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여기의 현재는 과거의 겹침, 즉 시간의 주름들의 변곡점 위에서 유동한다. 현재는 과거의 주름위, 미래의 시간들이 겹겹이 겹친 공간들의 표면이다. 만남이 불가능해 보이는 공간들이 현재, 여기에서 만나고 있다. 현상은 그러므로 단일 구조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다의적이고 다층적인 주름의 형태로 표면화 형상화 되어 있다.”(이호영 박사)
‘Here’와 ‘Now’가 뒤집어 만나면 바로 ‘Nowhere’가 되는 세계는 이종한 작가가 이끄는 길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세상인 셈이다. 
귀향과 정착의 세계 <집>들

사람과 물고기가 어울리고 밤과 낮의 구분이 없으며 기차와 자동차가 미지를 향해 달려가는 세상, 여기저기 별과 구름이 떠도는 환상적이며 소풍 갈 때의 설레임이 살아 숨쉬던 <지금·여기> 연작을 선보였던 이종한 작가는 어느 순간부터 거대한 변신을 선보인다.
서성록 미술평론가는  이 작가의 작품세계 분수령이 된 것은 2008년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된 ‘아트 & 플레이 Future’전이 계기가 됐다고 구분짓는다.
일상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 이미지로서의 ‘집’이라는 테마에 주목하기 시작한 때가 이때부터였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당시 작품은 한지로 떠낸 집의 이미지를 비스듬히 쌓아 올려 마치 약간 퇴락한 달동네를 연상시켰다고 한다. 규모도 크고 사뭇 비장한 정서가 감돌던 역작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그때의 싹이 줄기를 거듭 뻗어서 <집> 연작으로 성장했음을 서 평론가는 주목했다.
종이로 만든 집들이 계단식 모양으로 층층이 이어져 있는 것이, 노크를 하면 금세라도 집주인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이런 집들이 모인 마을은 골목길 안에 이발소, 솜틀집, 연탄가게가 보이고 지붕에 마구 떨어지는 빗방울소리, 바람에 덜컹거리는 문소리, 강냉이 튀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마을이다.
그리운 마음과 회상을 매개로하는 감동의 극대화는 퇴색한 듯한 한지와 은은한 백라이트 효과에서 기인한다고 서 평론가는 풀이한다.
오돌토돌 소중함 살리는 한지 작업

바탕이 밋밋하지 않고 오돌토돌한 촉각성이 두드러지는 한지로 일으키는 풍경이 길어올리는 독특한 질감은 보는 이의 마음과 의식세계에 공감을 자아낸다.
섬유질이 강한 닥나무 재질감이 거친 화면의 텍스추어로 잔류하게 되는 것이 특질이다. 물에 풀어진 한지를 말리고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한지를 덧바르기를 세 번 이상 거치고 나면 충첩되어 성형된 닥종이 질감이 촉각적인 성질을 고조시키는데 이렇게 탄생한 집의 이미지들이 우리 마음 속에 희미해진 기억들을 불러 일으키는 작용을 훌륭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종한 작가가 지어 보인 집에는 굴뚝 연기 오르듯 대화가 피어오르고 집집마다 저녁을 먹으며 소곤거리는 소리, 자장가 소리, 자녀들과 나누는 대화 등이 번져 오기에 누구라도 빙그레 미소를 짓게 되는 것처럼. 집안의 불빛를 창문으로 은은히 흘려보냄으로써 행복했던 과거를 추억하거나 지금의 행복을 음미하거나 또는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고픈 소망을 일깨운다.
서 평론가는 “일일이 수공으로 성형한 집의 이미지도 그렇고, 그런 이미지들을 화면에 하나하나 붙여가면서 전체의 모양을 잡는 것, 그리고 화면 뒷판에 라이트를 넣고 인두로 지져가면서 밤하늘 불빛효과른 내는 힘든 노동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전한다.
쉽게 물에 풀어지고 어떤 모양이든지 순순히 수락하고 따뜻함을 잊지 않는 한지의 미덕을 올올이 살려내려는 작가의 의지와 솜씨는 창작활동 초기부터 발현됐던 특성이자 에너지였음을 알 수 있다.
멀티플 역량 선보였던 평면설치

서 평론가는 1992년 이종한 작가 개인전 때 작품세계의 특징을 한 마디로 압축해 “일상성의 詩化”라고 일컬었던 바 있다.
이미지 자체가 현실세계로부터 비롯되어 이해하기 쉽고, 한 편의 동화처럼 소박한 심성을 토로하고 있어 친화감을 주며, 공간확장을 기하지만 수많은 이미지와 축약된 기호들로 일상성을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게 아니라 반고체 상태의 종이를 손으로 주무르고 반죽해 벽면 전체를 캔버스로 활용하는 평면설치 전시회를 열었던 그 무렵, 서 평론가는 “고요한 전율감”을 강조했다.
“작가의 따사로운 체온이 얹혀진 물질경험이요, 표정없는 무기질에 호흡을 불어 넣어 (새로운)생명체를 잉태시키는”작업 효과에 찬사를 보냈다.
변모와 진화 그리고 한 없는 성숙을 거쳐 오늘 이정한 작가의 작품세계엔 “집이란 의무와 과제의 촘촘한 틀안에 얽매이기보다 주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편안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그런 현실을 향해 우직하게 나아가자는 희망어린 요청이 담겨 있다.
1989년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지금까지 개인전을 거의 매해 거르지 않고 열었던 창작열과 예술혼은 결국 묵직하면서도 은은하게 거대하면서도 긴 감동으로 이어진다. 일상성의 시화가 수행하는 은유 혹은 메타포(Metaphor)가 순수미학의 깊이를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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