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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예술 그윽한 ‘체코’ 古都마다 알싸한 낭만의 향취
역사와 예술 그윽한 ‘체코’ 古都마다 알싸한 낭만의 향취
  • 월간리치
  • 승인 2016.03.09 20:32
  • 호수 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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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문명의 기품을 제대로 간직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요즘 사람들 내음이 앙상블을 이루는 유서 깊은 고도(古都)가 여럿 포진한 나라. 카프카와 드보르작처럼 기라성 같은 문인들과 위대한 음악가를 배출한 저력이 깃든 곳.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겐 아직 낯선 곳에서 문학과 음악이 넘치는 낭만 체험을 시도해 보자.


체코는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로 대표되는 위대한 작가들과, 드보르작으로 대표되는 위대한 음악가들을 배출한 나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지금도 음악을 사랑하는 국민성 때문에 체코인이라면 누구나 음악가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이처럼 문학과 음악으로 잘 알려진 체코가 최근에는 아름답고도 신비스러운 고도(古都) 프라하로 인하여 또 한 번 명성을 떨치고 있다.


동유럽의 파리, 프라하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이자, 수많은 역사를 간직한 곳답게 작은 골목 하나에도 중세의 향기가 배어있어 유럽에서 아름답기로 으뜸가는 도시다. 시내 곳곳에는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남아있어 고풍스러움을 더한다.
프라하에는 시대를 망라한 수많은 중요한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또 EU가 지정한 2000년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명명된 9개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프라하 주요 관광지
프라하 야경의 상징, 프라하 성
프라하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프라하성은 9세기에 이미 교회가 있던 자리였다. 11-12세기에는 로마네스크 바실리카 교회가 성 비타 로툰다를 대체하기 위해 세워졌고 이어 성 조지 교회가 재건되었다. 특히 같은 시기에 외각의 돌담이 축성되어 성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대통령 영빈실로도 쓰였지만 현재는 구왕궁에 집무실과 영빈관만 남아있다. 성의 정문 앞으로 가면 매일 정오마다 근위병 교대식을 볼수 있다. 프라하 성은 상당히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기때문에 강가의 야경을 내려다 보기에 좋다. 프라하 성을 본 후 내려오며 황금소로를 구경하면 된다.

연금술사의 거리, 황금소로(Zlata ulicka)
16세기의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거리로 후기 고딕으로 지어진 프라하 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좁은 길이다. 동화에 나올법한, 허리를 굽혀야 겨우 들어 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길인데, 원래 이곳은 성에서 일하던 집사와 하인들이 살던 곳이었으나 이후 연금술사들이 모여 살면서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하지만 정작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그 집들 사이에 있는 22번지가 실존주의의 대표적 작가인 카프카가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벌써 500년 이상이 지났지만 이곳은 여전히 16C 옛날 모습 그대로의 거리 모습을 보전하고 있고, 이제는 서점, 레코드 가게, 기념품점과 같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어 손님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아름다운 프라하의 휴식처, 카를교


프라하 중심에 놓인 예술적인 다리로 보행자만 다닐 수 있다. 늘 음악과 마술 등의 퍼포먼스를 구경할 수 있는 다리로 길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유럽 중세시대의 건축 교량 중 으뜸으로 꼽힌다. 다리 양쪽의 탑은 예전에 통행료를 받기 위해 세워졌다고 하나 현재는 전망대로 쓰이고 있다. 다리 중간에 어두운 빛깔의 30개 동상이 서 있고 이 가운데 만지기만 하면 행운이 온다는 몇몇 동상은 수많은 손길 탓에 변색된 부분이 역력하다.

프라하의 심장부, 구시가지 광장


블타바 강 오른쪽 지구인 '구시가광장'에 있는 구시청사는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건물로, 건물벽에 붙어 있는 천문시계가 유명하다. 현재는 건물이 2차 세계대전 때 파손되고 천문시계가 있는 70m의 탑만 남아있는데, 매 시간마다 정확히 울리는 천문시계는 천동설에 기초한 두개의 원이 나란히 돌아간다. 또 이곳 안에는 프라하시민들이 결혼식장으로 이용하는 작은 예배당과 탑내부에 후스파 사람들이 수용된 적이 있는 감옥도 있다.
매 시각마다 한번도 틀림없이 정확하게 시간을 알리는 이 시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끊이지 않고 몰리는데, 두개의 원반위에 있는 천사의 조각상 양 옆으로 창문이 열리고, 죽음의 신이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12제자가 창 안쪽으로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시계의 위쪽에 있는 닭이 운다. 이 시계의 제작자에 대해서는 시계 제작의 거장이었던 미쿨라슈가 만들었다는 것과 15세기경 프라하의 천문학자이자 수학교수였던 하누슈가 만들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누슈가 만들었다는 설에 대해서는 또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의 손재주를 시샘한 누군가가 그의 한쪽 눈을 멀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계를 지키다 쓸쓸히 병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과 함께 한때 이 시계도 움직임을 멈췄는데, 이후 몇 번의 수리와 1948년에 설치된 전동장치에 의해 지금까지 그 아름답고 신기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도시=세계문화유산, 체스키 크룸로프

체코 공화국의 남동쪽에 자리한 중세의 성도시인 체스키 크룸로프는 인구 약 1만 5000의 작은 도시다. 13세기의 한 지주가 이곳에 성을 건설하면서 이 도시의 역사도 시작되었는데, 이미 700년의 역사가 흘렀으며 중세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겨져 있다. 붉은 기와지붕의 중세적인 건물들과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고딕양식의 성, 바로크와 르네상스 등 중세의 미술양식이 섞인 정원들 등이 그것이다.
성 아래로 구시가지가 발달해 있는데, 지금까지도 이 도시의 중심으로 각종 상점과 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으며 지금까지도 성장사도를 달리고 있다. 또한 이곳은 1992년에 프라하, 성 요한 네포묵 순례교회, 쿠트나 호라, 호란 비체 등과 함께 보헤미아 땅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보헤미아 지방 두 번째로 큰 체스키 크룸로프성


이 성은 체스키 크룸로프와 그 역사의 시작을 같이 한다. 13세기 중엽, 대지주였던 비텍(Vitek)가가 블타바 강이 내려다 보이는 돌산 위에 고딕 양식의 성을 건설함으로써 이 도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700년이 흐른 고도로서의 체스키 크룸로프를 상징하는 중요한 상징물이며, 이 도시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둥근 탑과 길다랗게 늘어져 있는 옛 건물들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옛 왕궁으로 쓰였던 이 건물은 두터운 돌을 쌓아 만든 것으로, 중세 귀족들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는 방과 식당, 창고, 부엌, 접견실 등에 각종 공예품과 그림,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모라비아 중심도시, 올로모우츠

체코 동부의 모라비아 지방의 중심도시로 교통과 경제적 입지조건이 좋은 도시다. 올로모우츠는 체코의 중요도시들 중 하나로 인구는 대략 10만 2000명 정도다. 독일어로는 '올뮈츠'로 불리는 이곳은 모라바강 곁에 터잡았다. 도시는 11세기 무렵 건설되었는데, 중세에는 브르노와 함께 모라비아의 중심지였다. 17세기에 스웨덴군에게 파괴되었으며, 18세기에는 오스트리아 요새로 재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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