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2 10:05 (금)
탈속한 선과 면 넉넉한 포용
탈속한 선과 면 넉넉한 포용
  • 월간리치
  • 승인 2016.06.10 09:31
  • 호수 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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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 높이 걸린 연에서 서정성을 담아내던 화풍이던 80년대를 지나 자유분방 폭발하는 에너지가 넘쳤던 90년대를 거쳐 은유의 힘과 본질과 내면에 천착하기 시작했던 새천년을 지났다. 이젠 잴 수 없을 만큼 너른 품으로 공존하는 존재들과 신의 섭리를 자연스럽게 포용해 내는 작품세계다. 김동영 작가의 작가정신과 작품세계를 리치에서 조명해 본다.

“예전 작업이 분방한 붓질과 선명한 색채로 생의 에너지를 발산했다면 요즘은 넉넉한 여백과 담담한 무채색이 더해진 연륜과 지혜를 품어 안았다.”(정은영 한국교원대 교수)
자유로운 드로잉으로 그어낸 선(線)과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면(面)은 공존하는 모든 존재들의 숨결이 들고 나는 넉넉한 공간으로 열렸다.


개방과 포용의 원숙함

김동영 작가의 근작들은 조형(造形)해 낸 틀과 구성은 한 없이 자유롭고 이질적인 재료와 기법을 과감하게 감싸 안는다.
가깝게는 지난 10 여 년 탐색의 깊이가, 멀게는 지난 30년 넘도록 창작의 길을 우직하게 걸으며 불태웠던 작가정신이 무형식의 형식으로 넉넉한 원숙미를 체득한 셈이다.
분명 치열한 고투 끝에 탄생한 작품이니 시간 순서상 뒷자리에 놓인 귀결(歸結)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데 깊이 있게 응시해 보면 그게 아니다. 생명에 대한 찬미와 절대자의 섭리처럼 모든 존재에 앞선 근원 혹은 근본적인 주제가 소리 없는 호흡처럼 머문다.
밖으로 펼쳐 낸 화폭인데 존재의 처소가 형상을 갖춘다. 또한 생의 숨결과 기운이 가득하다.
네 잎 클로버를 모티프로 삼았던 예전 연작에서와 달리 개방과 포용의 미학이 만개해 있다.
이전 클로버 풀잎이 아슴한 실루엣이나 그림자로 드러나면서 즉흥적인 선과 거목을 닮은 널찍하고 묵직한 변주였다면 공간의 확장, 시간의 지속성을 내포함으로써 조화로움이 돋보인다.  


내재한 시간의 폭과 깊이

김 작가는 창작의 길을 걷기 시작한 초기 무렵부터 ‘미적인 힘’과 ‘신앙의 힘’이 존재의 두 근원이자 동일한 원천임을 천명하고 예술과 믿음이 자신 안에서 합일(合一)하기를 소망했다고 한다.
“미의식과 믿음은 결국 서로에게 속하며 저마다의 자유를 만끽하는 아름다운 공속(共屬)관계를 펼쳐보인다.”(정은영 교수)
하이데거에 따르면 공속관계란 ‘존재의 진리를 향해 인간본질이 생기(生起)하는 연관’이라 일컬었다.
김동영 작가에게 공속은 또한 진리를 향해 자신을 ‘실어 나름(Zu-trag)’으로써 작품 안에서 근원적으로 화합하는 ‘모아들임’이다.
실어 나름은 ‘내 안에서 스스로 섭리하도록’ 해야 하는 존재-합일의 원동력이 된다.


마르지 않은 은유의 샘

<Embracing> 연작에서 자주 드러나는 화소(畵素)인 실(絲)과 글(logos)은 김 작가가 ‘실어-나름’을 이행한 결과다. 캔버스를 뚫고 들어간 실이 물리적 차원에서 작가의식을 실어 날라 시간-공간의 공속을 이룬다. 아울러 개방과 포용의 화폭 위로 길을 만들며 밀알처럼 퍼져 있는 글은 존재-진리의 공속을 구현한다.
캔버스에 박임질된 실은 선의 이미지나 생명의 상징으로 콜라주 화면에 부착됐던 실과 끈을 연상시킨다. 선, 줄, 끈은 오랜 세월 마르지 않는 은유의 샘으로 작동했다.
<불타는 생명줄> 등 연(鳶)과 연줄을 모니프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던 것이 벌써 1988년 즈음이다.
당시의 끈이나 줄이 생명과 존재, 진리와 본질에 닿아 있으면서도 비가시적이었다면 <Embracing> 연작에선 엮고 꿰매고 수놓는 쓰임새 다채로운 실로 등장한다.


순환하는 생, 진리를 향한 길

공간을 가르며 족적을 남기듯 흐름을 표현하거나 점선으로 나타나지만 기호나 상징이 아니라 앞에서 뒤로 밖에서 안으로 다시 안에서 밖으로 순환 내지는 윤회하는 실체성을 포착하는 역할을 해낸다.
사면 팔방 여러 각도에서 길을 닦듯 써넣은 복음서의 구절들은 한계가 없이 메아리치는 진리를 은유한다. 밝은 광목 빛이나 깊은 먹빛 속에서 은혜, 기도, 선지자, 영광, 당신 등의 언어는 사전적 의미를 초월하는 생의 숨결로 산란한다.
정은영 교수는 “시각적 기호나 미적 상징을 넘어 작가가 다짐한 창작 서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자 보람에 대한 응답”이라고 풀이했다.
30 여 년 전 미국에서 돌아와 열었던 첫 개인전에서 “예술은 내 모든 것을 바치는 자신과의 서약”이라고 맹서했던 김동영 작가의 굴강한 의지가 확보한 방대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네잎 클로버 가 예시했던 세계

지금 이룩한 세계는 앞서 단초들을 예지한 바 있다. 서성록 평론가는 2011년 네잎 클로버 모티프에 푹 빠져 있던 김동영 작가 작품을 두고 ‘경쾌한 필선’과 ‘담백한 질료감’을 높이 샀다.
경쾌한 필선이 그의 화면에서 청량제 노릇을 하고 여로 재료로 살려낸 담백한 질료감은 비옥한 논밭에서 풍족한 소출이 나는 것처럼 조형적 내재성의 품격을 끌어올린다고 풀이했다.
단순화하기 시작한 구성과 차분한 색조, 물감 색조라기보다 자연이 조성한 듯한 무채색 등의 특질도 이 당시 성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광수 평론가는 1980년대 서정적 서술이 주를 이뤘고 1990년대는 폭발하는 내면의 힘이 용출(湧出)시키는 격렬한 표현을 거쳐 2000년대 네잎 클로버 알레고리와 내밀한 작가의식으로 변모했다고 구별 지은 바 있다. 깊이 가라앉은 내면세계를 통해 자연의 섭리를 천착하던 김동영 작가 창작에너지가 무르익어왔던 것임을 깨닫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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