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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미학 김선영 조각가 ‘몸’의 변주 삶의 총체성
은유 미학 김선영 조각가 ‘몸’의 변주 삶의 총체성
  • 월간리치
  • 승인 2016.09.02 12:39
  • 호수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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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층과 흔적이 쌓이고 쌓여서 형성되고 변화하는 정신과 영혼의 본성을 추구하는 김선영 조각가의 작업은 결국 ‘몸’에 대한 탐구이다. 여성성의 이미지가 짙어서 어머니로서의 존재 내지 여성신화로까지 상향 추상하는 평을 얻을 정도로 은유와 상징의 메타포어가 깊다. 리치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해본다.

“레진을 주재료로 하여 소금, 대리석, 크리스탈, 나무, 물, 오브제 등을 결합한 작업들은 모두 몸을 상징하는 매개체로서 살색 빛을 갖고 있다. 표면의 비정형 스크레치와 요철은 개인사로부터 복원해 낸 삶의 상처, 삶의 시간, 삶의 흔적들을 암시한다.”
예술작업 가운데 체력 소모가 극심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일이 조각작업인데 김작가의 작업과정 또한 적게는 50번에서 수백번에 이르는 샌딩과정을 거친다. 컬러링에는 원래 액체인 레진에 색을 넣는 과정을 거친다. “그래야 자연스러운 마띠에르를 구현하고 원하는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고백은 작가로서 성실성과 치열함을 짐작케 하는 선명한 단면 아닐까.


나-타자-익명적 주체 모두 품어

“지인들의 얼굴, 타자들의 얼굴, 익명의 얼굴들은 작가의 주체가 형성되기까지 배경을 말해준다. 주체란 타자들과 보이지 않는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며 하나의 인격이란 익명적 주체와의 영향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주체와 타자 그리고 익명적 주체를 아우르는 이러한 존재의 인식은 함께하는 삶, 더불어 사는 사회에 맞춰진 작가의 주제의식과도 통한다” (고충환 미술평론가)
비평가의 평가와 창작자 창작의식이 반드시 일치할 순 없지만 고충환 평론가의 이같은 평가를 김 작가는 작가노트에 인용해 놓았다.
물론 이에 앞서 그는 “나의 작업은 재료나 형태의 다름을 떠나 궁극적으로 몸에 대한 탐구이다. 그것은 물질(육체)로서 몸이자 정신(영혼)으로서 몸이다. 또한 몸을 통한 관계성과 함께 관계가 만들어내는 이상향에 대한 이야기이다”라고 고백한다.


신화·생명본향으로서 여성 아이콘

“김선영이 빚어낸 형상들에는 어머니가 깃들어 있다. 가슴과 같은 신체 일부 혹은 눈물과 같은 분비물이 고착된 형태로 나타나며 저고리나 골무처럼 체취가 배어 있는 사물로 나타나기도 하고 항아리인 양 통치마 형태로 현상하기도 한다.”(박영택)
박 평론가는 이를 두고 “작가 자신의 어머니인 동시에 어머니로서 삶을 사는 여성 자신”이라고 풀이한다.
더 나아가 자신과 어머니를 넘어선 존재 근원적인 어머니, 박 평론가는 ‘우주모(宇宙母), 지모(地母)이기도 하다’고 확장해서 평한다.
이질적이고 무관계한 관계의 망 속에 실존하는 자연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자연의 그 식솔들을 자기 속에 아우르는 둥지 형태로 현상(現象)하기도 한다.
생명본향인 여성으로서 특수성을 드러내면서도 보편적인 개념과 가치로 승화하는 매력이 그의 작품엔 가득하다.


삶의 반추로 확보한 동질성

김 작가는 분명히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의 풍경 위로 자기 어머니의 생애가 고스란히 내려앉음을 체감했을 것이다. 지난 인류 전체의 생애를 다시 반복해서 사는 것이 오늘의 인류 아니겠는가.
“수많은 바느질로 헤진 골무는 어머니의 눈물 그 자체였으며 어머니의 옷은 가족들의 성채이자 유일한 보금자리였던 것”일 텐데 김 작가가 반추한 어머니의 삶과 현재의 나를 돌아보는 작품들은 모든 생명체와 보편적인 인간 삶의 생애를 질문하는 선으로 확장되는 것이라고 박영택 평론가는 풀어 설명한다.
초현실적 분위기가 풍기는 몇 가지 사물들 간의 만남, 접목으로 기이한 변형태를 만들고 개별적이던 사물들을 ‘네트(Net)’화 하는 솜씨. 이와 더불어 그의 작가 정신은 에폭시를 이용해 뭇생명체들과 어머니, 여성의 삶과 관련된 소재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한복, 버선, 비녀, 골무도 쓰이고 낙타를 비롯한 수많은 생물들의 형상도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 이미지들은 무궁무진 접목되고 한데 맞물리면서 숙명적 상황과 사연들을 은유한다.


다양한 존재성을 함축한 의자

고 평론가가 여러 비어 있는 다양한 의자들을 놓고 김 작가가 암시하고 상징했으며 함축시킨 의미를 추적한 결과도 흥미롭다.
저 홀로 놓여 있기도 하고, 테이블 사이에 마주 한 빈 의자는 존재를 상징한다고 풀었다. 의자가 존재이며 몸이라고 본 것이다. 의자들 역시 김 작가가 형상화하는 몸들이 띄고 있는 살색 빛이다.
그리고 의자가 마주하고 있는 테이블 한 가운데 완만한 분화구처럼 움푹 패어진 부분에 물을 담아 놓았다. 삶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배를 통해 끝없는 출렁임과 연관관계 속에 있는 우리 삶의 속성과 본질을 떠올리게 하는 특질이 묻어 난다.


오랜 구도 가치관의 보편성

김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인 존재로서 자신의 만족이 최상의 가치이겠지만 그것은 결국 함께 할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춘다면 회전판 위에서 분주히 뛰는 사람처럼 결코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없다고 했던 릭 워렌의 말처럼 나의 시각이 타자에게 머물고 진정으로 함께 할 때 최상의 만족을 찾게 된다”고 밝혔다.
함께 만들고 살아가는 사회. 나는 너로부터 비롯되었고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인식은 종교적 세계관과 접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소금을 가득 실은 긴 배의 형상은 빛과 함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지상과제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유선형으로 나타난 특유의 형상이 어머니의 가슴이나 어머니의 눈물을 암시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개인사를 넘어 보편적 삶의 경험 세계를 지향하고 기독교적 도상학을 넘어 여성신화로 연결된다는 평가를 얻었다.
개인사와 보편사 여성신화와 종교적 아이콘이 중첩되고 어우러져서 암시하는 서사적인 스토리들이 근원적 존재와 자기 반성적 사유를 끌어오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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