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재의 도예 작품 숨 쉬듯 친밀한 ‘삶’ 굽다
이양재의 도예 작품 숨 쉬듯 친밀한 ‘삶’ 굽다
  • 월간리치
  • 승인 2016.10.09 17:04
  • 호수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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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 도전리 산속에서 도자기에 예술혼을 불어 넣으며 산다는 이양재 도예가. 영화를 보다가도 그림을 보다가도 우리 삶 속에 들어 앉을 예쁘고 쓰임새 좋은 도자기 생각을 연결하는 천생 예인의 성품이다. 깔끔한 백자 바탕 위에 강렬하고 심플하면서도 우리 정서 원형의 정감을 품은 작품 세계가 바로 당신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다면?


모네와 고흐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인데 하필이면 그는 도예가다. 이들 대가의 작품에 맑은 블루톤 그림이 많아서 좋아한다.
수련연못과 별헤는밤 같은 그림을 보노라면 당장 그곳에 달려가고 싶은 충동으로 넘실대던  풍부한 감성이 결국 돌아오는 집은 도예 세상이다.
모네와 고흐의 정물화에 등장하는 접시들에 눈길이 가고 좋은 그림을 벽면에 걸어놓고 그 아래 화병이나 커다란 도자기 접시를 놓고 과일을 담는 인테리어로 연동시키는 사색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죽일놈의 사랑’ 청화백자

이양재 도예가하면 청화백자를 떠올리는 팬들이 즐비하다.
‘하얀 도자 바탕 위에 파란색 그림이 다채롭게 터 잡은 세계’가 집안 여기 저기 일터 곳곳에 어우러져 있다고 상상해보라. 바로 그곳이 판타스틱 새로운 우주공간이 될 수 있다.
“청화백자의 가장 큰 매력을 꼽으라면 샤프하고 심플한 제 드로잉 스타일과 청색이 잘 어울린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청화백자 색상이 마음에 듭니다. 제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은 청화백자 컬러감이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색깔이어서 좋다고들 합니다.”
그가 파란색을 내는 청화안료는 금속성분의 코발트가 원료인데 조선시대에는 이슬람국가에서 중국을 거쳐 수입하던 너무 비싼 원료이다 보니 많이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신 오늘날 대한민국 도예가 이양재가 확장성 넓은 이 안료로 전통적인 작품에도 어울리지만 요즘 시대에도 세련미와 우아한 색채 매력을 드러내기 좋은 청화백자 기법에 심혈을 기울이는 셈이다.


펄떡이는 생명 물고기

그의 도자기에 자주 등장하는 갖가지 물고기는 무슨 의미일까?
생선을 즐겨 먹는다는 그가 10 여 년 전 문득 그동안 먹어치웠던 생선에 대해 경의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작업이라고 한다. 물고기 모습 자체에 깃든 조형적 언어에도 마음이 끌렸다.
“비늘의 표현도 재미있고 정적이지 않고 동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다 붓의 속도감 조절만으로도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서 주로 상감한 접시에 많이 그렸어요.”
붓선이 지나간 자리에 다양한 물고기가 다채로운 자세로 펄떡이는 순간이 굽혀서 고정돼 있는 작품을 보라. 머리모양 몸체 모양이 각양각색에 명태, 북어, 황태, 조기 바다 생선은 물론 송사리 미꾸라지 민물고기 등 표정도 레이아웃도 다양하다.


요산요수 그리운 그곳

‘요산요수’가 등장한 것도 따지고 보면 물고기 시리즈 확장판인 것은 아닐까.
산과 물이 어찌 좋지 않겠는가, 자연세계 모두를 즐기고 보살피자는 사념을 투영시킨 세계다.
상황에 따라 주인공이 바뀔 뿐 산이 있고 물이 있고 새가 있고 꽃이 핀 세상. 홀씨를 흩뿌리는 꽃잎들에서 제각각의 향내가 나고 새들은 즐거워 보이는 세상.
청화술병 입구 테두리에 선 드로잉으로 탄생하는 산의 모습은 칸딘스키의 그림보다 더 모던하고 심플하다는 평을 얻었다.
청화발이나 청화접시 등 넓은 테두리에 표현되는 드로잉들은 요산요수의 풍부한 자연을 듬뿍 담아낸다.
도자기마다 주인공이 다르고 스토리가 다른 편편이라면 각 편의 순차적 구성을 달리하면 또 다른 드라마로 이어질 법한 연계성을 품고 있다.


독보적 드로잉 세계

결국 그의 청화백자 작품이 시선을 잡아끄는 힘은 1차적으로 드로잉 아이덴티티(Identity)에 있다.
“하얀백자 위에 펼쳐지는 파란색의 절제된 선”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려 보인다.
절대 붓끝이 두 번 가는 법은 없이 빠른 손놀림 속에 한 없는 섬세함이 녹아든 드로잉.
“제 드로잉은 주로 자연을 테마로 한 것이 많은데 드로잉 할 때는 마음 속에 형상화한 주제를 빨리 좇아가면서 그립니다. 마음을 가득 채웠다가 순식간에 비워버리는 격이라고 할까요.”
새, 꽃, 닭, 물고기 등의 존재들이 머릿속에 꽉 차 있다가 하나씩 머릿속을 떠나 작품위에 내려와 채워지는 과정.
그렇다고 드로잉이 결코 단조롭지만도 않다. 하얀 백자 도자기 입구 아래부터 화병 옆면에 용머리가 이어지는 드로잉은 생동감과 역동성이 보는 이를 설레게 만든다.
대학 때부터 드로잉엔 천재로 불렸다는 실력이 청화백자에 스피디한 선과 면으로 어우러져 예술적 형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형태에 개의치 않고 드로잉으로 차별화한 작가, 현대적 선 드로잉을 접목한 작가, 캔버스에 그렸으면 더욱 성공했을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 작가.
이런 면들이 우리나라 도예가 가운데 독보적 드로잉 품격을 지닌 작가로 곱히게 된 원동력인 셈이다.


흙을 찾는 경건한 순례

청색안료와 드로잉에 앞서 그의 작품에서 토대가 되는 백색도자기의 몸체를 이루는 흙에 대한 경건함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보통 도자기를 만들 때 쓰는 흙을 소지라고 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소지는 밀양점토에 백자소지 원료인 카오린과 규석질 점토를 혼합한 겁니다. 이 소지 안에 남은 미량의 철분을 제거하는 작업을 탈철이라고 하는데, 탈철시키기 위해 둥그런 원통에 자갈 같은 규석을 흙과 함게 반죽한 볼밑을 돌려 미분쇄한 소지를 씁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지를 만들려면 큰 규모의 설비를 갖춘 전문 소지공장이 있어야 하는데 공장이 줄어들자 최소한의 시설로 흙을 잘 정제할 수 있는 작업장을 대안 삼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와 더불어 ‘도토’를 찾는 순례에도 나선다. 옛적 도공들이 짚신을 신고 비오는 날 도토가 있을 것 같은 곳에 짚신 자국을 냈다가 비 그친 뒤에도 선명한 자국이 남아 있으면 도토일 확률이 높았기에 이 방법을 썼다는 것이다.


한국적인 생활 도자기

명품 도자기 대명사로 꼽히는 ‘로얄 코펜하겐’의 세련미도 좋고 한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들여온 북유럽풍 디자인이 지닌 보편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는 한국적인 도자기를 생각했다.
유럽 스타일은 한국 음식을 담으려 만든 것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에서였다.
서구식 식생활이 공존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밥그릇, 국그릇 우리요리에 어울리는 접시는 필요하지 않느냐는 발상.
그래서 그는 우리네 일상 문화를 그릇으로 빚어서 구워낸다.
실생활에 사용되는 기물이니 사용하기 편하면서 청화백자 기법에 우리 정서에 착착 달라붙는 드로잉으로 미적 요소를 극대화하는 창작열을 불사른다.


궁극의 꿈 ‘사발’을 향해

이양재 도예가는 홍익대 디자인과 4학년을 다니다 말고 도자기와 흙이 좋아 도예과 1학년에 다시 입학해 대학원까지 마친 뒤 영국 스톡 온 트렌드 칼리지 유학을 다녀왔다.
대학 때부터 사발의 멋에 매료돼 물 흐르듯 망설임 없이 빠른 손놀림으로 사발을 빚어내던 조선시대 도공 못지않은 사발을 만들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산다.
사발을 향한 꿈은 임진왜란 때 우리 도공이 대거 끌려갔던 역사적 고찰에서도 커졌지만 보통 내공으로 빚을 작품이 아니라는 신념에 차곡차곡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무인들이 칼 쓰는 정신과 선비의 붓놀림과 같은 일필일도(一筆一刀)의 경지랄까요. 하루 3시간씩 최소 10년을 꾸준히 하면 된다는데 조선시대 도공의 빠른 손놀림, 달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사발의 선, 빛의 속도로 굽을 딴 그릇의 바닥을 보면 절로 숙연해 집니다.”
그런 무심의 경지에 오르는 날 그가 빚어서 구워낸 사발은 또 어떤 신세계를 열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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