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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아우르는 쉼터 ‘민가다헌’
세대 아우르는 쉼터 ‘민가다헌’
  • 월간리치
  • 승인 2010.10.01 06:30
  • 호수 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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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는 오래된 성이나 저택, 궁을 개조해 도서관, 박물관 등 문화공간이나 레스토랑 등으로 변모시킨 예가 많다. 우리나라에도 과거의 건축물을 활용해 현대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구성한 곳이 있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민가다헌’이 바로 그곳. 고급 와인레스토랑이자 전통 찻집으로 운영 중인 민가다헌은 전통가옥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해 세대를 아우르는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민가다헌은 원래 구한말 명성황후의 조카 민병옥 대감의 저택인 ‘민병옥이’ 이다. 화신 백화점을 설계한 건축가 박길용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량형 한옥이기도 하다.

최초의 개량형 한옥

서양 건축물처럼 천정을 높여 공간감을 확장하고 대문 외에도 현관을 두었으며 화장실과 욕실을 내부에 설치했다. 거실, 룸, 도서관 등 구역별로 설계하고 이를 연결하는 긴 복도를 설치하는 등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개념이 도입됐다.
전체적으로 서양 건축의 실용성과 한옥 특유의 간결한 구조적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공간으로 완성됐다.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민속 문화제 제 15호로 지정됐다.
SBS 드라마 ‘떼루아’ 속의 와인레스토랑 ‘떼루아’의 모델이기도 한 민가다헌은 각기 다른 분위기를 가진 네 가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를 개조한 카페는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여성적이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햇볕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한옥 특유의 밝은 색채를 가진 다이닝룸은 민가다헌 안에서 가장 한옥의 아름다움을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지적이고 남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빅토리아 양식의 도서관은 다른 공간과 분리되어 비즈니스를 위한 미팅이나 중요한 모임자리에 주로 활용된다.
창호지와 모시블라인드로 장식한 전통 창과 풍광이 일품인 테라스는 정원을 내다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연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예사롭지 않은 ‘메뉴’

공간미만큼이나 민가다헌의 제공하는 메뉴도 예사롭지 않다. 미국과 호주에서 수학한 송경섭 주방장은 정통 이탈리아&프랑스 요리에 한식 재료와 조리법을 가미한 한국식 프랑스 코스를 선보이고 있다.
깔끔하게 제공되는 잣죽 스프, 현미영양밥과 백김치 등 한식 메뉴는 친근한 동시에 세련된 품위를 느끼게 한다. 한상 가득 차려내는 푸짐함은 없지만 대신 요리 하나하나의 맛을 깊이 음미하고 함께 식사하는 사람과 차분하게 대화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특히 메인 메뉴인 ‘누룽지와 제주산 흑돼지 삼겹살찜’, ‘레드 와인 소스의 호주산 와규 너비아니’, ‘버섯 소스의 한우 떡갈비 빠삐요뜨’ 등 민가다헌의 개발 요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서양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요리들은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크게 사랑 받고 있다. 공간의 분위기를 잘 살린 영리한 메뉴라는 평가다.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 서비스 또한 민가다헌의 자랑이다. 전문 소믈리에 외에도 소믈리에 교육을 받은 다수의 직원들이 와인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민가다헌은 셀러에 보관하고 있는 와인의 종류만도 300여가지에 이른다.
맵고 자극적인 소스 대신 담백한 조리법의 한식 메뉴를 차용한 민가다헌의 요리는 와인과 특히 좋은 궁합을 자랑한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와인과 한식의 어려운 매칭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좋다. 도리어 한옥의 우아함과 한식의 부드러움이 와인과 얼마나 어울리는지 놀라게 될 정도다.
와인 가격이 합리적인 것도 와인 맛을 돋우는 매력 중 하나다. 인기 와인인 ‘로버트 몬다비 나파벨리 까쇼’가 10만 원 대, ‘캔달 젝스 까베르네 쇼비뇽 그랑 리제르바’ 10만 원 대, ‘베라짜노 키안티 클라시코’ 7만 원 대 등 일반적 청담동의 와인 레스토랑 등에 비해 20% 가량 저렴한 가격에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전통 가옥의 정취와 한국 음식의 특성을 와인과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민가다헌은 외국인에게 인기가 높다. 외국인 손님이 왔을 때 접대를 하기 좋은 장소로 손꼽히기도 하고, 관광 책자를 보고 직접 찾아온 외국인 손님도 많은 편이다.
신용철 민가다헌 지배인은 “ 내국인과 외국인 비율이 6:4 정도”라며 “관광책자에 실리는 등 관광객들에게 알려지면서 외국인 손님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또한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이곳에서 살아있는 한국의 전통을 편안하고 즐겁게 향유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들어냈다.

위치      : 서울 종로구 경운동 66-7, 안국역 4번 출구, 운현궁 맞은편
오픈 시간 : 오후 12~3시, 저녁 6~11시
가격      : 점심코스 2만1000원부터 4만9000원, 저녁 코스 3만9000원부터 9만 원
            모과차 7000원, 매실차 7000원, 홍삼차 9000원, 세작녹차 9000원
연락처    : 02-733-2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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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민가다헌의 뒷이야기
크게/ 전통은 어떻게 이어졌나?

민가다헌은 문을 열기 직전인 2001년 종로구청과 영업종류와 방식을 놓고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감내해야 했다.
전통 가옥에서 식사와 술(와인)을 판매 할 수는 없다는 종로구청의 주장과 좀 더 경쟁력 있는 와인 레스토랑으로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경영자 ㈜와인나라 측의 주장이 맞부딪쳤기 때문이다.
당초 월드컵을 앞둔 서울시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전통문화재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2000년 인사동의 민병옥가를 소유주와 구두 협의해 일정 비율의 개ㆍ보수비를 분담하고 개ㆍ보수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전통찻집으로 운영되길 바랐던 서울시와 이미 전통찻집이 많은 인사동에선 전통찻집은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 소유주는 영업종류와 방식에 대해서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소유주는 민가다헌을 당시 와인 문화를 녹일 수 있는 한국 전통 공간을 찾고 있던 ㈜와인나라에 임대한다.
1930년대 동서양의 문물이 섞이고 양반들 사이에서 와인 문화가 번지기 시작하던 시대의 향취가 그대로 녹아있는 민가다헌은 ㈜와인나라가 찾던 ‘전통&와인’이라는 콘셉트에 꼭 맞아들었다.
레스토랑 프로젝트는 빠르게 진행됐다. 종로구청의 영업 허가가 떨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시 문화제 위원들의 감수를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살린 인테리어 설비까지 마무리가 됐다.
그런데 영업을 시작하기 직전 서울시는 종로구청을 통해 영업정지등과 관련한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이유는 ‘당초 서울시의 개ㆍ보수 지원 목적과 맞지 않음’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문화재를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어떤 것인 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3차까지 이어진 이 소송에서 대법원이 ㈜와인나라의 손을 들어준 덕에 민가다헌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손님들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인을 물론 외국인 고객에게까지 크게 사랑을 받고 있는 민가다헌은 현재 CEO가 가장 선호하는 와인레스토랑, 에어프랑스 기내 잡지와 동경TV, 호주 TV, 스위스 TV, 심지어는 2002년 당시 서울시 홍보자료에까지 (소송중임에도) 게재되어 한국의 전통가옥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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