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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화백 신현국
계룡산 화백 신현국
  • 리치
  • 승인 2018.05.31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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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와 詩情
추상과 구상
장엄한 합주

 

반 백 년 가까이 계룡산을 호흡하면서 계룡산 연작으로 성가를 올렸던 신현국 화백가 올 봄 제 15회 미술세계상 수상 초대전을 열었다. 낮과 밤의 조도와 구름과 바람의 조도에 따라 언제나 스스로를 달리 드러내는 산세와 자태의 무궁무진함을 매개로 화단(畵壇)과 미술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신현국 화백 작품세계를 리치에서 재조명해 본다.

생명 발원의 영원성 탐구

처음 정착한 때가 1970년대이니 벌써 40년 안팎 면면히 창작하는 존재로 지내왔다. 이젠 정신세계 자체가 계룡산이 되고 계룡산이 곧 화폭으로 다가 설 때마다 또 달리 첩첩이 다가왔다가 물러난다.
큰 맘 먹고 충청도를 향하지 않아도 생명 연원의 영원함과 인간과 민족 서사의 편린이 낮은 고도에서 높은 봉까지 숩과 능선을 이루는 계룡산의 시공 속으로 흠뻑 빠져들 기회가 있었다.
지난 3월10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미술세계 제1전시장에 다녀 온 사람이면 바로 그런 특별한 감동에 침잠하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네 모든 산은 생명의 시초를 품는다. 바다에 닿기 전까지 뭍 세계를 적시는 물줄기가 산에서 샘솟은 것이고 옛 사람들은 세상 생명 모두에게 필요한 비를 내려주는 구름이 산에서 생성됨을 사유했으며 무수한 식물과 동물 그리고 미생물 생태가 산에 깃들어 있으니까.
신항섭 평론가는 신현국 화백 작품 세계를 놓고 ‘생명의 아름다움에 순응하는 거인적인 산의 설화’라고 함축해서 정의한 바 있다.
자연세계와 생명의 아름다움을 응시하고 마음과 의식세계에 담았다 버렸다를 반복하는 그릇이 신 화백에게는 화폭이었을 뿐.

품이 깊을수록 응축되는 친숙함

신 화백가 구축한 화풍을 익히 아는 사람들은 이제 그의 작품에 계룡산임을 특정할 만한 어떤 특징이 있지 않은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백지홍 미술세계 편집장은 “흡사 추상표현주의 회화처럼 보이는 그의 작품은 계룡산을 특징할만한 요소가 강조되어 있기는커녕 전체적인 모습이 ‘산’의 형상임을 알 수 있는 최소한의 흔적만 남아 있다”고 표현한다. 만약 능선을 뜻하는 몇 개의 선조차 없다면 계룡산을 형상화했기는커녕 산을 담은 것인지 아닌지 유추하기 불가능한 작품이 허다하다.
백 편집장은 “세밀하게 재현한 산의 모습이 아니라 ‘생명력’이다”라고 풀이해 준다.그럼에도 신화백의 작품을 접하면 다층적인 연상이 흠뻑 느껴지는 특별한 체험이 가능하다. 사람의 손으로 제한된 화폭에 모두 담기에 불가해한 산의 생명력, 캔버스 위에 뚜렷하게 남은 터치에 깃든 신 화백 예술혼의 생명력, 두텁게 칠해진 안료에 숨쉬는 생명존엄의 서사성과 시정(詩情)이 조화롭게 융합되어 있음을.


여든의 반 탐구에도 知不完

올해로 만 여든에 접어든 원로화백 신현국에게서 계룡산은 창작 영감을 긷는 샘이자 삶이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스승이다.
웅장하기로나 화려하기로 계룡산보다 윗줄에 놓아 마땅한 산이 많지만 신 화백는 계룡산이 가장 장엄화고 아름다운 곳이다.
사실 다양한 면면의 사람들이 계룡산이 품은 생명력을 알아보았기에 동반자로서 귀의하는 곳이다. 한국 샤머니즘을 비롯한 여러 종교인들에게 큰 뿌리를 이루는 명산이라면 예술 창작의 근거 혹은 본원을 이루는 명산이기도 하다.
백 편집장은 “산 능선을 제외한 형상이 앵포르멜(informel) 작업처럼 해체되어 있는 듯하며 표면 이에 남은 거친 붓자국들은 흡사 추상표현주의 작업을 보는 듯하다”고 묘사한다.
신 화백는 “의도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어느날부터 산의 능선이 보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미대에 진학하고 나서 본격적인 창작을 시작한 후 약 10여 년 간 추상작업에 몰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관(南寬)과 김환기(金煥基) 작가에게 배우고 앵포르멜 운동에 참여했던 이력이 있다.
구체적인 대상 없이 색과 선, 안료의 질감이 만들어내는 구성미로서 감상자의 의식과 정서에 새로운 자각을 주는 화풍에서 계룡산을 담는 작업으로 돌아섰을 때 화풍으로 이동은 형식미학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


원숙해서 더욱더 담박(淡泊)한 세계로

그럼에도 여든 인생의 반이나 되고 앞으로 비중은 더욱 커질 연작으로도 그는 계룡산을 완전히 알고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신 화백 작품세계로 들어가 보면 추상회화와 구상회화의 구분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둘 모두를 품어낸 조화로운 합일의 세계랄까.
특정한 형상을 예정해두고 완성하려하기보다는 색과 선이 질료의 특성과 어우러진 끝에 과거 어느 한 순간일지 혹시 미래 어느 한 계절 아침나절일지 대낮일지 깊은 밤일지 사람의 눈에 비치지는 않지만 있는 그대로였던 계룡산 진체의 한자락이 화폭에 찾아오도록 인도했을 뿐. 형상이 명료한 작품은 화백의 의식이 좀 더 또렷이 작용한 때일 것이다. 반면에 백지홍 편집장은 “몇몇 작품에 이르러서는 액션페인팅처럼 ‘우연’이 가미되는” 작품이 감상의 묘미와 공감을 더해주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평한다.

 

새로운 화풍 거목의 품격 기대

그리고 아직 미공개 작품들이 뭇 예술인들과 비평가 그리고 감상자들을 설레게 한다. 작업실 한 족에 자락을 이루고 있는 작품들은 게룡산 연작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확실하면서도 “면(面)에 이를 정도로 두껍고 무거웠던 터치 대신에 경쾌하고 얇아진 선 중심으로, 투터웠던 마티에르는 상대적으로 얇아지는 미감을 전한다”는 품평이다. 원숙하고 완성미에 다가갈수록 담박(淡泊)하게 변모하는 것이 세상 존재들의 특질이라는 것을 우리 인류는 깨달아왔다.
신현국 화백가 선보일 새로운 작풍의 작품세계 또한 더욱 맑고 더욱 고요한 속에 생명의 연원과 인간 정서의 본질에 가까운 세계를 창조해 주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신 화백 작가노트 중에서 제법 알려진 대목이 떠오른다. “산에서 배운다. 산처럼 의연하고 깊고 오묘함 온갖 희로애락, 칼빛, 바람마저 아우르며 당당하 하늘과 맞닿은 자존감 수없이 그리며 수없이 그 산을 헤매며 하늘과 마주친 그 산을 배운다.” 

 

프로필
- 홍익대 미대 회화과 졸업
- 개인전 45회
-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갤러리, Danglim미술관 초대전 외 다수
- 이인성미술상·이동훈미술상 심사위원, 오지호미술상 심사위원장
- 대한민국 청년 비엔날레 심사위원장
- 미국 필라델피아 초대전
- 한국구상대제전(2008,2009 예술의전당)
- 국제 아트페어 - PICAF(서울 코엑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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