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프랑스 사회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과 불확실성에 놓여 있다. 물가 불안과 정치적 극단화 속에서 연금 개혁은 여전히 시민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2023년 강행된 연금 개혁은 단순한 제도 변경을 넘어 세대 간 가치 충돌과 불신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제 하반기를 앞두고 프랑스는 개혁의 후폭풍을 수습하며 제도적 정당성과 사회적 신뢰 회복이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해 있다.
프랑스의 연금 제도는 소득 분배형(Pay-As-You-Go) 방식으로 운영되며 현재의 노동 인구가 내는 기여금으로 현재의 퇴직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구조다. 이 시스템은 퇴직자 평균 소득의 약 50%를 보장한다. 이는 전 생애 동안 최상위 25년 소득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제도를 운용하는 프랑스 국가연금관리공단(Caisse Nationale d’Assurance Vieillesse)은 고용주·근로자 양측의 사회보장 기여금을 관리해 현재는 연 소득 약 3만7000유로까지 15.15%의 기여율을 적용하고 나머지 소득에 대해서는 추가 요율이 부과되는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한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방식은 세대 간 연대에 기반하고 있지만, 고령화와 기대 수명 증가로 노동자 1명당 연금 수급자 비율이 2000년 2.1명에서 2020년 1.7명으로 낮아졌고, 2070년에는 1.2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이런 상황은 연금 재정의 구조적 악화를 유발하며 정부가 퇴직 연령 상한을 높이고 기여 기간을 연장하는 개혁에 나선 배경이 되고 있다.
프랑스에는 공공 연금 체계를 중심으로 40개가 넘는 다양한 직역 연금 제도가 존재한다. 일반 직장인뿐 아니라 공공 부문, 철도, 전기·가스 등 특정 분야 종사자들은 별도의 특수 연금 제도를 통해 더 유리한 조건에서 퇴직이 가능했다. 하지만 고령화와 기대 수명 증가로 연금 수급자가 늘어나면서 연금 제도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3년 프랑스 연금 개혁은 이러한 배경에서 강행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주도로 시행된 개혁의 핵심은 법정 퇴직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조치다. 2030년까지 점진적으로 시행되는 이 정책은 연금 제도의 재정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시도로 해마다 늘어나는 적자 규모를 통제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반영한다. 하지만 이 개혁은 프랑스 사회 전반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약 70%의 국민이 개혁에 반대했고 전국 곳곳에서 파업과 시위가 이어졌다. 특히 의회 표결 없이 헌법 제49조 3항(정부가 하원의 표결 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을 활용해 개혁을 강행한 정부의 태도는 민주주의 절차 무시에 대한 비판을 키웠다.
개혁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 퇴직 연령 상향: 법정 퇴직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연장
• 기여 기간 연장: 완전 연금을 받기 위한 최소 기여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연장 (2027년까지)
• 특수 연금 제도 폐지: 철도와 에너지 등 특정 직군에 적용되던 42개 특수 연금 제도를 통합
• 최저 연금 상한도 인상: 최저 연금을 월 980유로에서 1200유로(최저임금의 85%)로 인상
이 과정에서 두 가지 핵심 쟁점이 부각됐다.
첫째, 장기 경력자(young starters)의 제약 문제로 육체노동이 많은 이른 취업 세대가 조기 은퇴 혜택을 상실하면서 불평등 논란이 일었다. 둘째, 성평등 관점에서의 부채감이 제기됐는데 여성의 경우 평균 기대수명이 짧고 출산 등으로 인한 경력 단절이 많은 현실에서 동일한 기여 기간과 정년 기준은 구조적 불리함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프랑스는 현재 GDP의 약 14%를 연금에 지출하고 있다. 이는 유로존 평균보다 높은 수치다. 감사원(Cour des Comptes)은 2045년까지 연금 적자가 4700억 유로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며 개혁 없이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정치권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와 총선에서는 좌파 연합이 연금 개혁 철회를 내세웠고 극우 정당들 또한 대중의 불만을 흡수하며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연금 제도의 재정 지속 가능성을 고려할 때 완전한 개혁 철회는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결국, 정부는 노동계와 시민사회와의 대화를 통해 제도 조정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한편, 한국의 국민연금제도는 프랑스와 달리 기여형 구조와 적립식 구조가 혼합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은 현재 법정 연금 수령 시작 연령이 63세다. 2033년까지 65세로 점진적으로 상향될 예정이다. 또 수급을 위해 최소 10년 이상 내야 하며 소득대체율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는 더 높은 연금 수급 기준과 공공 부담 비율을 가지고 있어 제도적 관점에서는 재정지속성보다 연대성과 보장성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이다.
양국 모두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로 인한 재정 압박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안고 있지만, 제도 설계와 사회적 수용도 측면에서는 서로 다른 해법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2025년 하반기 정부는 기존 개혁의 틀에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2단계 연금 조정’에 착수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의 연금 개혁 논쟁은 세계적인 추세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미 2019년과 2023년 두 차례 대규모 시위로 제도 개혁이 좌초된 바 있다. 특히 2019년의 연금 단일화 추진은 파업과 거리 시위로 사회 혼란을 초래했다. 2023~2024년 개혁에서는 약 70%의 국민이 반대하며 좌파·극우의 정치 전략 공약으로 부상했고 2024년 선거에서도 여전히 핵심 이슈로 남았다. 경제적 관점에서 퇴직 연령 연장은 노동 참여율과 GDP 상승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고령자의 고용 질 개선 없이 단순 연장은 불평등과 사회 불안을 가중할 수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이처럼 프랑스 연금 개혁은 단순한 정책 변경이 아닌 역사적 저항과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분석이 얽힌 복합 문제로 2025년 하반기는 제도 안정화와 사회적 합의 구축이 핵심 과제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유지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