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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이야기꾼 김영리 화가 대지 가득 무량한 삶 희구
회화 이야기꾼 김영리 화가 대지 가득 무량한 삶 희구
  • 월간리치
  • 승인 2015.05.11 16:58
  • 호수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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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 미국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 기린아로 떠올랐으나 숱한 인간군상과 문화가 교차하는 도시생활은 의식의 방향감 상실로 인한 좌절과 고통으로 귀결됐다. 긴 외유에서 탈출해 택한 자연의 품, 너른 대지 가득한 생기를 통해 치유받은 작가혼은 이제 우리 삶의 진가를 담아내는 참된 이야기 화폭으로 피어나고 있다. 리치에서 경기도 양평 산자락에 펼쳐진 자연속의 그의 작업실을 찾아가 봤다.

“젊은 날 나는 예술이 형이상학의 산물로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자연으로 돌아와서 장황했던 나의 예술 이야기는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김영리 작가. 자연을 알게 되고 이 넓은 대지위 생동하는 생태계를 체험하면서 지치고 병들었던 자아를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작품에도 등장하는 ‘도시로 간 부엉이’는 경쟁과 배척, 그리고 적자생존의 냉혹무비함으로 가득찬 나머지 존재가치를 보호받지 못하는 불행하고 고독한 존재들로 넘쳐나는 ‘탈출구’ 없는 연옥임을 깨닫기에 이른다. 천만 다행인 것은 그림에 몰두할 줄 아는 열정적 부엉이였던 것. 10여 년 의식의 방향감을 상실했던 외유 끝에 아름다움과 괴로움이 무차별적으로 공존하는 자연세계로 돌아왔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공생하는 벌레들과 풀들, 물과 빛을 한 없이 품어 안으며 온갖 존재들이 무한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대지의 무량한 스케일 덕에 위무받고 치유받은 작가 혼이 한 층 성숙한 작품세계 속에 이야기 보따리를 가득 가득 채워넣기 시작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항상 노력하고 진실되게 세상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우리 어머니, 내가 지칠 때 존재의 의미를 되새김해주는 우리 아이들, 때로는 친구가 되고 비평가가 되어 주는 나의 동반자, 그들은 내 삶의 이유이다. 대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우리들의 삶 이야기를 그냥 그냥 이야기하고 싶다”고 독백을 머금는 경지로 옮겨 왔다.아프건 달콤하건 자연과 삶을 직시할 줄 아는 예술가는 노자(老子)가 일컬은 화광동진(和光同塵)의 미학반열에 올랐음이 틀림 없다. 노자가 남겼다는 도경(道經)엔 “만물의 날카로움을 꺾고 얽힘을 풀며(挫其銳 解其紛) 눈부심을 부드럽게 하고 세속과 함께하니(和其光 同其塵) 맑구나(湛兮)라는 구절이 나온다. 미국 화단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변모는 작가혼의 성숙과 확충이 이렇게 드라마틱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기에 충분하다. 동양전통 묘필 접목에 ‘환호’1984년 김영리 작가는 전문미술가로 수업을 마무리하자마자 시드니를 거쳐 1986년 뉴욕으로 건너가 새로운 시도들을 쏟아내 성공적 반응을 이끌었다. 어두움으로 표현된 도시와 냉혹한 인물들을 등장시킨 그의 작품은 종말론적 풍경을 새로운 통찰력으로 펼쳐보인다는 평을 이끌어 냈다. 주요 도시에 방영된 TV프로그램에선 그의 작품이 동양적 묘필을 현대미술에 결합한 창의적 사례라고 극찬했다. 외유를 떠나기 전에도 그는 수묵화의 현대적 단계를 열어낸 작가로 주목받았던 터였다.상투적이고 작위적 칠 대신에 도시에 내동댕이쳐진 현대인의 절박한 현실을 표현하기 적합함을 입증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그는 대형 캔버스를 거침 없이 휘저으며 때론 활기가 넘치고 때론 해부학적 삽화 음침한 실루엣의 인물들이 도심 풍경과 대비시키는 과감함을 선보였다.이희영 미술평론가는 “충분히 수묵이 전통대로 표현할 기술을 지녔고 또한 그 교훈을 실천할 정도로 몸에 배었음에도 그것들을 희생했기에” “미국 문화의 복합적 다원주의의 가능성”이 주목받았던 때가 미국에서 작품 특징이라고 정리한다.절제된 몸짓 친절한 형상화크나큰 결단에 따른 귀국은 그의 채색화에 큰 변화로 나타난다. 이희영 평론가는 “먹의 의존이 거의 없고 절제된 몸짓으로 대상들은 친절하게 재현되었다”고 돌아 본다. 처음엔 식물만으로 채워지다가 2006년 이후로 새와 같은 동물, 그리고 시계나 노가 같은 문명의 산물들이 간헐적으로 등장했고 도시의 대상들 대신 전원의 대상들로 죄다 교체된 시기였다.그래도 문명의 산물은 자연세계의 영원한 생명력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성이 뚜렷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소재로 기능했다고 한다. 주인 잃은 안경, 쓸 사람이 없는 모자, 쉴 사람이 아직 오지 않은 벤치 등 인간의 부재를 부각시킨 무렵이다. 이 평론가는 “인간의 부재를 통해 오히려 포근한 온기르 회복하는 것은 김영리가 자연에서 획득한 예술적 가능성”이라고 풀이했다.가공의 인물과 장식 또는 소품경기도 양평군 정착 이후 김영리 작가의 정신세계는 심대원숙해 졌음이 틀림 없다. 그는 “평이하고 단순함 그리고 나눔 속에서 행복이 있고 지혜와 진실이 존재한다고 알려 준” 자연세계 관조의 깊이가 작품의 성숙미를 북돋아 주었으니까.이 평론가는 2008년 말부터 미술가의 가족이나 동화와 같은 가공의 세계에서 탈을 쓴 배우 등 가공의 인물이 등장하는 점에 주목했다.가족은 자연물과 인공물을 연결해주는데 꽃씨를 부는 모습, 의자에 모녀가 함께 앉은 역할 소파에 중력을 의지하는 휴식과 같은 전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부각하는 화풍은 “반복해서 관찰하고 마음으로 익힌 결과”라고 풀이했다.또한 갖가지 변화무쌍한 감정의 순간적 포착이 아니라 “항상 변함 없이 언제든 읽힐 수 있는 상징”으로 화폭을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생생한 감각으로 차오르는 화면이 평론가는 김영리 작가 작품의 특질에 대해 “엷은 물감이 층지고 얼룩들이 바탕에 스며드는 흔적을 남기고 군데군데 그 바탕의 결이 고스란히 노출되기도 한다”고 전한다. 견(絹)이나 아마(linen) 소재를 다루면서 칠이 층지게 함으로써 조절되는 표면이 관람자 망막에 정밀한 분별을 유발시키는 효과를 띠기도 한다. 감각의 말단에서 우러나는 섬세한 자극을 관람자 스스로 체감할 수 있도록 이끌어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받아들이고 대하는 스토리를 무궁무진 퍼 올린다고 할까.부재 했던 인간의 복귀, 온기가 회복되고 자연을 따르지만 자연은 작품 속 형상의 소재가 아니라 저절로 본질로 들어 앉은 세계를 열었다.“작품 표면에 면면히 목격되는 잠잠한 명상의 기회들은 시각 매체의 폭바럭 변혁에도 회화가 여전히 앞으로 중요한 암시가 될 것임을 확인시킨다”는 찬사가 잘 어울리는 작가 김영리.김 작가가 시화집을 냈을 때 황명걸 시인은 이런 작가론을 언급했다. “이제 그는 툇마루에 앉아 찾아온 친구와 다도는 몰라도 차 한 잔 기울이는 만남을 귀히 여기며 그늘을 찾아 단잠을 자는 강아지에게 애정어린 눈길을 준다”고. ‘생각의 소파’에 앉아 ‘마음을 여는 창’을 통해 ‘바다 위를 나는 나비’를 꿈꾸며 ‘진정한 자유’를 ‘노래하는 물고기’가 된 행복한 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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