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12:33 (월)
프랑스는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프랑스는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유지선 프랑스특파원
  • 승인 2024.03.30 18: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푸드·K-뷰티 편

 

요즘 파리 시내를 거닐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국 문화를 접하곤 한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샹젤리제 거리에 자리한 한인 식품점 K-마트는 점심 시간대에 직장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또한 1800년대 지어진 오스만식 건물로 가득한 동네 한복판에서 한식당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프랑스 최대 뷰티 유통사이자 편집숍 세포라(Sephora)에서 이니스프리, 라네즈, 닥터 자르트 등의 한국 화장품은 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와 있다.

자라(Zara), 에이치앤엠(H&M) 등 패션 스토어는 쇼핑하고 있자면 매장에 K-팝 아이돌의 노래를 틀어주기도 한다. 넷플릭스 프랑스의 주간 상위 랭크의 한두 자리는 꼭 한국 드라마가 꿰차고 있으며 지하철 옥외광고에 한국 웹툰과 드라마 홍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최근 몇 년 사이 해외에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을 이야기할 때 프랑스는 언급되는 국가 중 하나가 됐다. 일반적으로 한류를 이야기할 때 항상 일본과 중국, 동아시아를 시작해 미국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만, 지금 한국 문화가 가장 트렌디하게 떠오르는 곳은 단연 프랑스라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급부상하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 그중에서도 K-푸드와 K-뷰티의 현황과 미래를 들여다본다.

“프랑스의 또 다른 이름은 다양성이다.”(La France se nomme diversité) 
–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프랑스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다양한 문화권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멜팅 팟이다. 수도 파리는 예술과 빛의 도시라는 이름 외에도 ‘이민자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다양한 인종이 한데 모여 산다.

개중에서 동아시아권 인구를 추려본다면 대체로 일본인과 중국인 커뮤니티가 지배적이었다. 파리의 중심부 1구에는 일식당들이 밀집한 골목이 있고 13구는 공식적인 차이나타운이라 불릴 만큼 중국인 인구가 많이 모여 산다.

프랑스에 체류하는 한국 재외국민과 유학생의 수는 꾸준히 늘었지만, 그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2010년대 초반 K-팝과 K-드라마가 본격적으로 해외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지금 프랑스를 비롯한 해외에서 한국의 위상은 바로 문화 콘텐츠의 힘에서 비롯된 것으로 소프트 파워의 표본을 보여준다.
소프트 파워란 미국의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가 제시한 개념으로 군사력 혹은 경제력으로 대변되는 하드 파워(hard power)의 반대다.

‘강제나 보상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을 의미한다. (출처 : 글로벌 소프트파워 강국 실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9)
K-팝과 K-드라마의 인기로 가장 먼저 주목받은 것은 화면에 비친 먹거리와 라이프스타일 제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먹는 것과 입는 것, 바르는 것들을 보고 따라 사는 것이 계기가 돼 본격적으로 입문한다.

소프트 파워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 K-푸드야말로 가장 많은 장족의 발전을 보인 분야라 할 수 있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한식당과 한인 식품점은 모두 파리 시내에만 집중돼 있었고 그 수도 많지 않았다.

현재는 2022년 기준으로 한식당 개수는 파리에 200개, 지방 도시에는 80개를 돌파했으며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 구글 지도에 포함되지 않거나 지방에서 현지인만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소규모 한식당, 그리고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곳까지 합치면 300여 개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출처 : 프랑스존) 


프랑스 대표 배달앱 우버이츠에 등록된 업체 중 한식 메뉴를 제공하는 곳은 2021년 기준 1000곳을 넘긴다. 특히 한인 인구가 많이 거주하는 파리 15구는 한식당과 한인 식품점이 집중된 구역으로, 한식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매해 6월 15구 구청이 주최하는 ‘K-스트릿 페스티벌’로 먹거리뿐만 아니라 한국 유명 뮤지션이나 댄스팀을 초청한 공연을 볼 수 있는 행사다.


프랑스 언론은 한식의 맵고, 컬러풀하고, 훌륭한 가성비에 집에서 만들기 쉬우며(Le Monde, Catherine Rollot, 2023), 건강하고 다채로우며 포장하기 쉬운 점 등을 매력으로 꼽았다. 미식의 나라인 만큼 프랑스인은 식사에 있어 식재료와 영양가를 꼼꼼히 따지며 건강을 매우 잘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팬데믹을 기점으로 젊은이들 층에서도 건강에 관한 관심이 급증하며 한식은 건강하지만,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미식으로 거듭났다. 현지에서 가장 쉽고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음식은 비빔밥이다. 초밥과 보분(베트남식 요리로 채소와 고기, 삶은 면을 버무린 음식) 등에 이은 ‘맛있는 건강식’의 대표주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K-드라마와 K-팝의 인기에 힘입어 한식의 인기에도 크게 불이 붙었는데, 이 현상은 이미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이 녹아든 프랑스 식품업계의 시선을 끌 만했다.


일례로 프랑스 최대 냉동식품 브랜드이자 유통업체 피카드(Picard)는 (국내에서 비슷한 브랜드로는 비비고와 고메 등을 꼽을 수 있다) 비빔밥과 만두, 떡꼬치 등의 한식 제품군을 출시했고 공식 홈페이지에는 해물파전과 비빔밥 등의 레시피를 공개했다.

2024년 1월에는 한정품으로 꽈배기 등 분식·간식 컬렉션을 출시했는데 큰 인기에 힘입어 조기 품절을 겪기도 했다. 프랑스의 국민 브랜드에 준하는 대형 유통업체에 한식이 입문했다는 것은 K-푸드의 발전에 있어 큰 한 발짝이라 할 수 있다.

이제 K-푸드에 심취한 프랑스 현지인들은 더 이상 한인 식품점에 의존하지 않고도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로컬라이징이 된 한식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사실 K-푸드를 논하기 이전에는 K-뷰티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뷰티는 2000년대 초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뻗어나갈 즈음 인기 드라마에 나오는 여배우들을 선망하는 수많은 팬을 사로잡았다.

K-뷰티의 주 핵심은 ‘피부 미용’과 그에 직결되는 ‘셀프 케어’(자기관리·건강관리에 가까운 의미)의 개념으로,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를 시작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영미권에 이어 유럽권까지 사로잡았다. 유럽권에서도 특히 프랑스는 뷰티, 미용, 건강 분야 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많은 투자를 하는 국가다.

세계 최고 규모의 화장품 브랜드를 보유한 로레알 그룹과 록시땅 그룹, 많은 럭셔리 브랜드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점을 보유한 글로벌 뷰티 유통사 세포라를 보유한 LVMH 그룹이 모두 프랑스에 거점을 두고 있다. 로레알그룹은 2018년 한국의 대표 색조 브랜드 스타일난다를 6000억 원에 인수했으며 LVMH 그룹의 세포라는 아모레퍼시픽의 주요 브랜드인 이니스프리와 라네즈, 외에도 빌리프(LG생활건강)와 닥터자르트(에스티로더 그룹에 인수) 등의 브랜드를 글로벌 계약으로 입점시켰다. 


국내 색조 브랜드 디어달리아는 프랑스 유수 백화점인 갤러리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에 입점했다. 특히 갤러리 라파예트는 지난해 프랑스에 있는 K-뷰티 편집숍 아가스킨(Agaskin)과 파트너십으로 K-뷰티 테마의 팝업 이벤트를 성공시킨 바 있다.

여기에 프랑스에 아직 입점하지 않은 브랜드가 다수 참가했는데, 색조 브랜드 롬앤은 팝업 기간 모든 제품이 품절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K-뷰티의 인기와 로컬라이징의 대표적인 사례로 브랜드 에르보리앙(Erborian)을 들 수 있다. 한국인과 프랑스인 공동창업자를 둔 에르보리앙은 브랜드 소개에 ‘Korean skin therapy’, ‘Paris-Seoul’, ‘Korean herb’ 등 한국과 관련된 키워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제품 제조는 한국 제조사를 통해 이루어지며 제품군은 2000년대 초반에 유행을 이끌었던 BB 크림과 CC 크림류로, 피부 미용에도 좋은 색조 제품으로 자연스러운 화장을 선호하는 20대 중후반 이상의 프랑스 여성을 타깃으로 한다.

에르보리앙은 현재 세포라를 비롯한 주요 뷰티 유통업체, 전국의 약국, 까르푸(Carrefour) 등 대형 유통업체에 입점을 모두 마친 상태다. 
프랑스 뷰티계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한국적인 요소를 버무린 브랜딩과 제품으로 가장 먼저 로컬 시장과 소비자를 사로잡은 것이다.

이러한 브랜드 성공에 힘입어 에르보리앙은 2012년에 록시땅 그룹에 인수됐다. 또 에르보리앙은 2020년 본격적으로 한국에 역수출되기도 했는데,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인플루언서인 김혜림(유튜브 ‘혜림쌤’)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필수템으로 소개돼 인기를 끌었다.

현재 에르보리앙은 신세계 백화점, 시코르(신세계 보유), 29cm 등 국내 다수의 뷰티 유통 브랜드에 입점해 있다.
K-푸드와 K-뷰티, 두 업계 모두 큰 성장을 보이며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으나 여기에는 이면도 존재한다.

K-푸드는 팬데믹 이후로 급격히 늘어난 다수의 한인 식당 중 상당한 비율이 한인이 아닌 중국인 또는 외국인 경영자를 두고 있어 한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수익성을 쫓아 공격적인 마케팅과 프랜차이즈로 새로 지은 업체의 개수도 많아 가장 중요한 음식의 퀄리티를 해치기도 하고 무늬만 한식인 사례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한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흔하디흔한 베트남 식당이나 일식당과 차이가 없고 제대로 된 한식을 찾기 어려운 곳도 있다.

일식당이나 중식당, 베트남 식당 등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높은 가격대도 화두에 오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제육볶음, 김치찌개 등의 국민 음식이 프랑스 한식당에서는 훨씬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되기도 한다. 한식은 특히 식재료를 많이 필요로 하는데, 최근 몇 년간 인플레이션으로 식재값이 폭등한 것도 한몫한다.  


K-뷰티는 절대적인 인프라 부족에서 터져 나오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한국 소프트 파워의 기둥 중 하나임에도 프랑스에서 K-뷰티를 접할 수 있는 채널은 많지 않다.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쇼핑을 선호하는 프랑스 소비자들을 위해 현지에서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는 대체로 리셀링을 하는 소상공인이나 개인사업자가 많다.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온라인 뷰티 유통 사이트 ‘예스스타일’(YesStyle)은 국내 기업이 아니라 홍콩 소재의 기업이다. CJ의 올리브영이 글로벌 웹사이트를 오픈해 온라인 소비자들을 노리고 있으나 경쟁업체보다 매우 늦게 합류한 셈이다.

높아진 유류세와 팬데믹 이후 턱없이 엄격해진 관세도 한몫해 K-뷰티 제품을 한국에서 구하고자 해도 한국 정가에 비해 판매가가 훨씬 높아지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K-뷰티의 강점 중 하나인 가성비를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용 장벽이 낮은 아마존 등의 플랫폼에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리셀링에 거래되는 제품과 온갖 짝퉁이 난무하기도 한다. 높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형 소프트 파워의 부상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좋은 콘텐츠와 산업이 글로벌화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노출로 해외에서 큰 호응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환영할 일이다. 다만 이 소프트 파워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산업군에 대한 충분한 지원과 인프라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로 보인다.  유지선 프랑스 특파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