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9 08:50 (목)
프랑스의 영앤리치 
프랑스의 영앤리치 
  • 유지선 프랑스 특파원
  • 승인 2024.09.3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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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MZ 사업가는 어떤 가치를 좇는가

 

올여름,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두고 미디어가 시끌시끌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파리에서 100년 만에 열리는 올림픽이라 대중의 기대도 상당했으리라 본다. 전대미문으로 야외에서 진행된 올림픽 개막식은 구(舊)와 신(新)의 조화, 다양성과 자유를 내세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에 대해서는 프랑스 내부적으로도 의견이 많이 갈리는 편이다. 역사적인 요소와 모던한 코드를 적절히 섞어 오늘날의 프랑스를 잘 보여줬다는 평가와 자국민의 취향이 많이 반영돼 해석이 불친절했다는 평가로 나뉜다. 이처럼 국제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프랑스라는 나라의 브랜드는 역사, 전통, 예술 등 풍부한 역사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2024년 프랑스는 어떤 모습일까?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프랑스 청년들은 어떤 가치를 좇고 있을까. 그들이 정의하는 사회와 성공은 무엇일까. 

포브스 30 언더 30은 세계적인 경제지 포브스에서 일부 지역에서 발행하는 다양한 산업 분야의 30세 미만 주목할 만한 인물 30명의 목록이다. 목록은 스포츠, 미디어, 사회적 기업, 할리우드·엔터테인먼트, 과학, 예술·스타일, 금융, 벤처 캐피털, 게임, 마케팅·광고, 기술(소비자와 기업), 교육, 의료, 소매, 음악, 식음료, 소셜 미디어,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 범주로 분류된다. 2024년 프랑스의 30 언더 30에는 다양한 기업과 기업인이 이름을 올렸다. 개중에서 가장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바로 형광 오렌지색이 특징적인 카페 체인 카페 뉘앙스와 샤를 코로 대표다.


그는 형 라파엘 코로와 함께 카페 뉘앙스의 공동창업자다. 파리에서 나고 자란 형제는 샤를이 18살이 됐을 때 각각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유학 시절을 보냈다. 유학을 마친 후 코로 형제는 커피에 대한 애정으로 다시 뭉쳤고, 독보적인 콘셉트와 최고급 커피를 내세워 2022년 카페 뉘앙스를 창업했다. 프랑스인에게 카페는 아침에 일어나 강아지 산책을 시키거나 출근 전 들러 하루를 시작하는 일종의 루틴과도 같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파리 전체의 카페 숫자는 30% 가까이 줄었지만, 신대륙 바리스타들이 자신들의 취향과 개성을 표현한 카페가 속속 오픈하면서 파리의 카페 업계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현재 트렌드를 이끄는 파리의 카페 중 현지인들로부터 1순위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카페 뉘앙스다.


카페 뉘앙스의 1호점은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와 호텔, 쥬얼리 브랜드가 밀집한 방돔 광장 인근의 한 골목에 있다. 코로 대표는 버터와 달걀 등의 유제품을 판매하는 오랜 우유 판매점 (프랑스에서는 이를 crémerie, laiterie라고 부른다)을 인수하면서 옛 건물의 정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카페 뉘앙스만의 독특한 브랜딩을 더했다. 카페는 간판 대신 글자가 박힌 외관, 대리석 천장과 바닥, 벽에 붙인 거울 등 1900년대 초 아르데코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여기에 대조적으로 형광 오렌지와 파스텔 컬러를 결합한 모던하고 팝한 인테리어 요소가 눈에 띈다. 이러한 유서 깊은 건물과 감각적인 인테리어는 유명 건축 회사 유크로니아 (Uchronia)의 작품이다. 카페 뉘앙스는 콜롬비아와 에티오피아, 브라질 등에서 온 최고 퀼리티의 원두로 내리는 라테와 모카커피가 최고 인기 음료이다. 인근 회사원들에게는 이미 동네 유명물로 자리 잡아 아침과 오후에는 늘 손님으로 북적인다. 여기에 검정깨 커피와 더티 차이 등의 독특한 메뉴도 있어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시그니처로 꼽힌다.


카페 뉘앙스는 현재 프랑스에서 하이엔드 스페셜티 커피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커피 원두는 에티오피아 또는 인도네시아에서 공정거래로 소싱하며, 중간 과정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이로써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과 원두 출처에 대한 투명성 등을 지키는 것을 철학으로 삼고 있다. 카페 뉘앙스의 매장과 온라인 스토어에서 원두와 드롭커피 키트 등을 구매할 수 있다. 가격대는 합리적이지만, 브랜딩은 명품을 연상하듯 매우 깔끔하고 고급스럽다. 브랜드명인 ‘카페 뉘앙스’ 역시 이 다섯 가지 원두의 색깔, 즉 ‘뉘앙스’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카페 뉘앙스는 또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카페 겸 식당인 ‘브라세리 (brasserie)’나 스타벅스 등의 모던한 카페 프랜차이즈와 차별화된 브랜딩을 선보인다. 매장은 유서 깊은 옛 건물의 멋을 그대로 살리면서 영한 요소를 적절히 섞어 넣었다. 파리의 일반 카페에서는 볼 수 없는 밝고 약간은 키치한 색감의 인테리어, 카페가 아닌 소품 편집숍에 온 듯 진열된 커피 원두와 꽃병, 오브제와 굿즈까지···. OFR 서점, 메르시 등 유명 소품숍의 본고장인 파리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브랜딩이다.

고급 원두와 투명한 소싱, 합리적인 커피 가격,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브랜딩이 더해져 이른바 “뭘 좀 아는” 트렌디한 소비자와 까다롭고 새로운 걸 찾는 커피 애호가 모두를 잡은 셈이다. 이미 레드 오션인 파리의 카페 시장에서 당당히 이름을 남기는 데까지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현재 카페 뉘앙스는 나이키, 더 로우 등의 유명 패션 브랜드와 프랑스 최고급 백화점 르 봉막쉐와 협업한 바 있다.


이렇듯 성공적인 브랜드를 이끄는 데에는 공동창업자인 샤를과 라파엘 코로 형제의 굳건한 커피 사랑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코로 형제는 에스프레소 바를 새롭게 재해석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카페 뉘앙스를 창업했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커피 원두에 좀 더 현대적인 옷을 입히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행을 즐기고 커피를 즐기는 청년 대표다운 발상이다. 카페 뉘앙스의 브랜딩에는 코로 형제의 미국 유학 생활의 영향도 돋보인다. 전통과 클래식을 중시하는 프랑스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와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독보적인 브랜드를 선보일 수 있었다.


현재 카페 뉘앙스는 커피 라인에 말차를 추가하는 등 제품 확장에 힘쓰고 있다. 원두는 물론 캡슐 형태의 커피도 판매하고 있다. 매장에서는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등의 클래식한 메뉴는 물론 로즈 라테 등의 개성 강한 메뉴도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물론 커피에 곁들일 수 있는 케이크, 쿠키류도 맛볼 수 있다.


프랑스 전 국민이 이용하는 구직 기관 ‘프랑스 노동(France Travail)’은 프랑스의 밀레니얼과 Z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업무에 있어 유동성과 협조를 가장 중요시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는 이직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며 자기개발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것에 적극적인 면모가 돋보인다고 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24%는 창업에 대해서도 매우 긍정적으로 집계됐다. Z세대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와 다양한 분야에서 협조를 중요시한다는 분석이 있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답게 SNS를 비롯해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다양한 툴을 자유롭게 소화하는 면이 밀레니얼 세대를 비롯해 이전 세대와 가장 차별되는 부분이다. 


혁신에 관해서도 매우 긍정적이다. 새로운 시도, 새로운 툴이 도입되는 데에 긍정적이라고 집계된다. Z세대는 조직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면모는 소비에서도 드러난다. 카페 뉘앙스의 창업 일화를 들여다보면 프랑스 MZ세대의 철학이 잘 드러나는 듯하다. 해외 유학에서의 경험을 백분 살려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브랜딩을 고안하고, 좋아하는 것을 쫓되 공정함을 유지함으로써 점점 까다로워지는 소비자들의 니즈까지 모두 챙겼다. 특히 환경 문제와 인권 문제 등에 관심이 많고 트렌드에 예민한 프랑스의 Z세대를 제대로 저격한다. 카페 뉘앙스의 브랜딩이야말로, 프랑스의 오늘과 내일을 잘 표현하는 듯하다.


파리는 유서 깊은 예술과 패션의 도시이지만, 보수적인 프랑스 정서에 맞추어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코드로 가득하다. 엄격한 건축 규제로 옛 건물들은 최대한 보존하고 신축 건물도 옛 건물의 높이에 맞춰 도시 전체가 통일된 느낌을 준다. 패션의 수도이지만, 분명히 ‘파리지엔’ 스타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여전히 마른 체형과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슬림한 핏을 선호한다. 마치 온 도시에 드레스 코드가 존재하는 듯, 쨍한 색감이나 스포츠웨어 등을 일상복으로 입는 파리지엔은 쉽게 볼 수 없다.

이는 도시 풍경의 큰 일부를 맡고 있는 카페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시크하거나 로맨틱한 분위기를 지향한다. 이러한 도시와 환경에서 카페 뉘앙스와 같은 시도는 매우 반갑다. 이후에도 이러한 개성 가득한 브랜드로 가득 차며 알록달록하게 변모할 파리의 앞날에 기대를 걸어본다.  유지선 프랑스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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