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이 생각하는 프랑스 음식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돼 있는가? 대체로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더 나아가 토끼고기와 달팽이 요리 등의 음식들을 연상하리라 믿는다. 미쉐린 가이드의 근원지이자 미식의 나라로서 프랑스 요식업계의 가장 큰 강점은 사실 그 다양성과 창의성에 있다. 유럽의 대표적인 멜팅팟답게 다양한 국가와 인종이 모여 사는 곳인 만큼, 프랑스에는 정통 프렌치부터 이탈리안, 스페인, 독일 등 주변 국가는 물론이고 중식, 베트남식, 일식도 상당히 발전됐다. 여기에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커피와 디저트, 와인에 치즈까지 더하면 매끼 무슨 음식을 먹을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는 프랑스 요식업계에서 수년 전부터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으니, 바로 ‘빅 마마’(Big Mamma) 레스토랑 그룹이다.
프랑스어로 ‘아르 드 비브르(l’art de vivre)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자면 ‘삶의 예술’로, 삶의 순간순간을 즐겁게, 여유롭게 즐기자는 정신을 표현한 말이다. 몇 년 전 전 세계를 휩쓸었던 ‘욜로’(YOLO) 정신과 비슷한 듯 다르다. 프랑스인들은 이 아르 드 비브르의 개념을 휴식과 취미생활에 깊이 연관 지어 사용한다. 바쁜 하루 끝에 친구들과 마시는 와인 한잔, 날씨 좋은 주말에 근처 공원에서 즐기는 산책, 난데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꿋꿋이 테라스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잔···, 이런 소소한 행복이 바로 아르 드 비브르다.
유독 이 아르 드 비브르에 자주 엮이는 것이 음식과 주류인데, 식문화와 주류문화가 발전한 만큼 프랑스인들은 미식을 무척 즐긴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한데 모여 사는 나라인 만큼, 수도인 파리에서는 그야말로 수백 가지 종류의 음식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카페의 수에 필적할 만큼 파리에는 다양한 식당을 만날 수 있다. 전통적인 프랑스 식당 ‘브라세리’(brasserie: 식당·카페·바를 모두 합친 식당), 중식부터 그리스식, 레바논식까지 아우르는 반찬가게 ‘트레터’(traiteur: 주로 테이크아웃하는 반찬가게로 실내에서 식사도 가능하다), 와인을 구매하는 것부터 테이스팅, 식사까지 가능한 ‘꺄브’(cave: 와인 백화점으로 가게에 따라 식사가 가능한 곳도 있다) 등 파리의 길거리에는 미식을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넘쳐난다.
100여 년이 넘는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고, 신축 건물의 수가 적인 도시환경이면 그 안의 시설들 역시 수명이 길 수밖에 없다. 1900년대 피카소와 고흐 등 유명 예술가들이 자주 방문했던 식당과 술집 등이 여전히 성업하는 곳이 바로 프랑스다. 이토록 기나긴 미식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에서 요식업계의 창업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빅 마마 그룹은 티그란 세이두와 빅토르 루거가 공동창업한 레스토랑 체인이다. 2015년 오픈한 첫 레스토랑 이스트 마마(East Mamma)로 그룹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3년 이내 파리에만 식당 7곳을 개업하는 공격적인 운영을 선보였다. 현재 파리에는 이스트 마마, 오베르 마마, 마마 프리미, 빅 러브, 비제리아 포포라레, 핑크 마마, 리베르티노의 7개 레스토랑이 성업 중이다. 모두 이탈리아 음식을 베이스로 주요 메뉴는 파스타와 피자, 와인 셀렉션도 이탈리아산의 비중이 높다.
빅 마마의 본격적인 날갯짓은 바로 2018년이다. 개소한 지 갓 1년도 되지 않은 스테이션F 입주에서 시작된다. 스테이션F는 프랑스 통신사 오랑쥬 그룹의 오너 자비에 니엘이 사비로 개설한 유럽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캠퍼스다. 옛 열차 정비소를 개조한 건물은 총 3가지 구역으로 나뉘는데 입주자들이 식사하고 쉴 수 있는 휴식공간 ‘칠 존(chill zone)’에 빅 마마 그룹의 ‘라 펠리시타(La Felicità)가 오픈했다. 4500㎡의 면적에 달하는 거대한 구역에 입주한 빅 마마는 구내식당이라는 개념에 새로운 변화를 주었다.
오래된 열차를 통째로 개조해 안에 배치한 다음 내부를 칵테일 바와 아이스크림 가게로 새롭게 단장했다. 푸드코트처럼 곳곳에 각기 다른 메뉴를 제공하는 구역을 만들고, 카운터와 식탁을 잔뜩 배치했다. 특히 카페로 조성한 구역은 식물로 뒤덮여 있어 스테이션F 입주자들과 방문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다. 도서관처럼 조성한 구역, 매일 밤 댄스파티나 DJ파티를 열수 있는 무대도 구비되어 있다. 이후 2019년부터 빅 마마는 해외 확장에 힘썼다. 2024년 현재 프랑스에는 파리, 릴, 리옹, 보르도, 마르세유 5개 도시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해외에는 런던, 모나코, 마드리드, 뮌헨, 함부르크, 베를린, 밀라노, 브뤼셀에 진출해 있다. 총 5개국에 24개 레스토랑이 영업 중이다. 빅 마마 그룹은 본격적으로 요식업계의 큰 기업으로 이름을 남겼다.
빅 마마 그룹의 성공 뒤에는 젊은 공동창업자의 영향이 크다. 공동창업자 티그란 세이두와 빅토르 루거는 1984년생으로 동갑내기이자 프랑스 유명 ‘경영학교’ HEC Paris의 동문이다. 두 사람은 이력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티그란 세이두는 특히 프랑스 영화계를 주름잡는 유명 부호 세이두 가문 출신이다. 빅토르 루거는 아티스트들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마이 메이저 컴퍼니(My Major Company)의 창업주였다. 빅 마마의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루거와 세이두는 어릴 적부터 이탈리아 여행을 자주 다니며 수많은 ‘트라토리아’(trattoria: 이탈리아의 지방의 특색 음식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의 식당)를 경험해 왔다. 유년 시절 가족여행부터 시작해 성인이 되고 난 후 친구 여행으로도 이탈리아를 자주 방문했는데, 창업을 결심한 이후로는 특히 여러 농장과 장인들을 만나 식재료 거래를 맺었다.
두 사람은 모두 작은 소도시의 로컬 식당을 발견하고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맛보거나, 이탈리아 특유의 쾌활하고 수다 많은 직원·셰프들과 어울리길 즐겼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특히 수도 파리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이 푸근한 문화를 그대로 데려오고 싶다는 마음에서 창업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아르 드비브르’와 추진력, 그리고 전문경영 지식이 만나 이색적인 조합이 완성된 것이다.
빅 마마의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기존 프랑스 요식업계에서는 흔치 않았던 ‘브랜딩’을 꼽을 수 있다. 빅 마마의 레스토랑들은 밝은 색감과 패턴, 꽃을 이용한 데코레이션, 강한 조명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인테리어 등 대체로 화려함이 돋보인다. 위치는 핫플레이스가 밀집한 파리 중심부와 동쪽에 주로 자리해 접근성과 유동인구 모두 잡았다는평가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셰프와 서버 등 스태프는 모두 20대에서 30대 전반으로 매우 젊은 편이다.스태프는 전원 이탈리아인 또는 이탈리아어 능통자로, 레스토랑 내의 소통은 전부 이탈리아어로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예약이 없는 운영 방식으로 무조건 웨이팅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어 빅 마마 그룹의 그 어느 레스토랑을 방문해도 기본 20~30분 이상 대기해야만 한다. 또한 빅 마마에서는 식재를 공급하는 이탈리아 농장과 장인들을 메인으로 내세워 ‘진정성’을 강조한다. 이 브랜딩 덕분에 트렌디하고 톡톡 튀는 인테리어와 정통 이탈리아식 음식,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는 활달한 스태프에 둘러싸여 마치 순식간에 이탈리아에 와 있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공수한 식재로 최대한 이탈리아식 공법으로 만드는 메뉴(파스타·피자·디저트류)가 까다로운 파리지엔들은 물론 런던, 마드리드 등 타 도시의 입맛도 사로잡았다는 평이다. 전반적으로 패밀리 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활발한 분위기와 정통 이탈리아 음식, 화려한 인테리어와 트렌디한 브랜딩이 20대부터 40대까지 아우르는 젊은 소비자층의 취향을 저격한 것으로 보인다. 빅 마마 그룹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레스토랑의 정보뿐만 아니라 창업 스토리, 식재료의 공급처 등 다양한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다.
최근 경영업계를 휩쓸고 있는 투명성과 진정성을 겸비하고 고객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거로 보인다. 빅 마마에서 공개한 정보 중 다음과 같이 흥미로운 지표도 있다.
이는 ▲총직원 수 2200명▲ 레스토랑 매니지먼트 중 75%는 내부 승진 ▲37개국 출신의 다양한 스태프 ▲매니저급 중 44%는 여성 매니저 ▲식재료의 75%는 프랑스 또는 이탈리아에서 공급 ▲신입 스태프 중 52%는 25세 이하 ▲레시피 중 65%는 채식 메뉴 ▲ 4년 이내 유럽 일자리 1000개 창출 ▲2023년 기준, 일자리 성평균지수 99점(100점 만점) 등이다.
라 펠리시타는 소위 프랑스에서 ‘가장 잘 나가고’, 프랑스식 취향이 전부 반영된 인테리어를 선보인다.
빅 마마는 레스토랑 경영 외에도 다양한 분야로 진출을 꾀하고 있다. 그룹의 창업 스토리를 엮은 ‘Big mamma: Cuisine italienne, con molto amore’(2016), 빅 마마에서 추천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가이드 ‘Le guide Big Mamma des restos en Italie’(2018), 그리고 레스토랑의 인기 메뉴를 재현할 수 있는 레시피 북 ‘La Cucina di Big Mamma: Les Meilleures Recettes de nos trattorias’(2019) 등이 있다.
팬데믹을 겪으며 요식업계에는 찬 바람이 불었다. 기업과 자영업자를 불문하고 수많은 식당이 문을 닫았다. 특히 미국에는 올해 상반기에만 레스토랑 체인 10곳이 파산 신청을 했다. 2000년대 초반에 성행하던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도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업형 레스토랑 그룹의 운영 방식도 크게 바뀌었다. 식문화에 보수적인 만큼 척박할 수 있는 프랑스의 요식업계에서 빅 마마 그룹은 브랜딩을 앞세웠다. 2017년 창업 후 첫 수익이 발생한 2021년(20만9000유로)에 이어 2022년에는 413만
유로를 기록하며 1년 만에 무려 20배에 가까운 급성장을 보였다.
이후 인플레이션과 경제 위기 등의 영향으로 2023년에는 373만 유로의 이익을 내며 약간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룹은 여전히 다양한 분야와 협업 및 진출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세월과 전통, 장인정신이 주목받는 프랑스 요식업계에 이들과 같은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