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 정부도 바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 등을 통해 발표한 정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리치에서 자세히 소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보편 관세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CHIPS Act) 개정·폐지 등을 내세웠다. 한국 기업의 대미 통상 환경 불확실성의 핵심 정책은 보편 관세다. 트럼프는 전 세계 수입품에 대해 10~20% 수준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특히 중국산 제품을 대상으로 60% 이상의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예고했다.
만약 2기 행정부가 공약대로 보편 관세 10%를 한국에 부과하면 대미 수출이 152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트럼프는 무역적자의 주요 요인을 한국과 일본, 유럽, 멕시코, 캐나다 제품의 자동차·자동차부품을 지목한 바 있어 국내 자동차와 전기차용 배터리, 자동차 부품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한국산 수입품에 20%의 보편 관세가 부과되면 현대·기아차는 최대 19%의 EBITDA(법인세, 감가상각, 이자 차감 전 이익) 감소 리스크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보편 관세는 미국의 낮은 관세율(평균 3.3%)이 미국산 수출 상품의 경쟁력 약화와 일자리와 같은 내수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팬데믹 이후 일자리를 잃은 미국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재임 시절에도 상계관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바 있어 정책 추진의 가능성이 크다.
법무법인 율촌은 이와 관련된 보고서를 통해 “보편 관세 주장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목표(제조업 활성화·일자리창출·무역적자 해소 등) 달성을 위한 단기적·가변적 수단, 즉 협상용 카드일 가능성이 높아 한국 정부와 기업은 반대급부를 위한 협상 조건, 대상 등을 전제적으로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IRA는 전면 폐지보다 선별적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그 타깃은 신규 전기차세액공제(30D)가 될 가능성이 크다. 스티브 스칼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4일 공화당의 최우선 과제는 개인에 적용되는 세액공제 조항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30D를 예로 들었다. 현대차 등 한국 완성차 기업에 혜택을 부여하는 상업용 전기차세액공제(45W)는 정치권의 관심을 덜 받고 있어 폐지·개정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율촌은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가장 큰 수혜를 받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45X)는 IRA에 따른 최대 수혜 지역 대부분이 공화당 지지 우세 지역이고, 한국 배터리 기업의 대규모 투자에 따른 일자리 창출 등으로 폐지 여론이 강하게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입장에서 45X 폐지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있다”며 “이에 따라 전면 폐지보다 보조금 지급 규모(수혜 대상) 축소를 위해 45X 조항에 해외우려기관(FEOC) 제한을 추가 또는 확대 적용하거나 수혜 기간을 축소하는 등 수혜 대상과 총금액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반도체 정책에 대해서는 “중국 첨단반도체 개발 견제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바이든 정부의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바이든 정부가 동맥국과 협조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이었다면 트럼프는 우방국에 기대지 않고, 미국의 독자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을 활용해 중국을 첨단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봉쇄하는 전략으로 그 차이점이 있다”고 했다.
즉 트럼프는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을 유도하기 위해 우방국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보다 관세를 높여 미국 내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선호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반도체지원법을 통한 보조금은 축소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반도체지원법 유효기간이 법상 2027년으로 명시돼 있고 법안으로 수혜를 본 지역이 텍사스주(삼성전자), 인디애나주(SK하이닉스) 등 공화당 지지 지역이라는 점에서 법안의 폐지나 개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빅테크는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동동 수장으로 이끌 정부효율부의 출범, 빅테크 기업 검열을 반대해 온 브렌든 카 위원의 FCC 위원장 인선 등 기술·산업계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2기 행정부 주요 요직에 임명되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인공지능(AI)·기술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율촌은 “ 과거 1기 행정부 시절 정책을 거래로 간주하고 예측 불가한 행보를 보인 트럼프의 성향은 널리 알려져 있기에 당선 확정 직후 빅테크 경영자들은 면담을 요청하고 기금 지원을 약속하는 등 태세전환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이는 한국 경제계의 입장을 피력해야 하는 현시점에서 한국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대미 정부 간담회, 대외 협력 등이 트럼프 정권 초기에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트럼프 취임 날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열고 “트럼프 정부의 앞으로도 발표될 행정명령 등 정책의 실제 내용을 주시하면서 미 신정부 출범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과 대응 방향을 면밀히 재점검하겠다”고 했다. 이어 “철저한 준비를 토대로,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게 미국 신정부와 각계각층에서 협력 관계를 구축할 것”이라며 “이른 시일 내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도 추진하는 한편, 외교·산업부 장관 등 양국 간 고위급 소통도 본격적으로 전개하겠다”고 했다.
최상목 권한대행은 관세 등 무역정책 개편과 그린 뉴딜 정책의 폐지 등 일부 정책이 구체화하면 우리 경제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준비된 계획에 따라 대응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경제계 차원의 대미 접촉·협력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특히 조선업 협력 등 양국 경제 협력의 기회요인은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당부했다. 김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