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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수의 ‘문명의 기억-히에로글리프’
박동수의 ‘문명의 기억-히에로글리프’
  • 월간리치
  • 승인 2011.07.08 13:16
  • 호수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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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수 화백이 근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근작들은 우리나라 고대문명, 황하 문명, 이집트 문명, 마야 문명 등의 여러 이미지들과 관련돼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은 이집트 상형문자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흔히 이집트 문자를 뜻글자 즉 그림문자로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소리글자도 함께 포함해서 사용하는 문자 체계다. 18세기 프랑스의 샹폴리옹이 로제타 스톤을 해석하기 이전에는 아무도 그 의미를 몰랐던 신비로움에 싸여있던 문자였을 뿐이다. 그는 문자의 구상성과 추상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집트 문자는 구체적 사물과 관련된 형상성과 그것에서 출발하여 의미 깊은 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강한 추상성을 겸비하고 있다. 이집트 문자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느끼며 살았는가를 오늘에 다시 한 번 추체험하게 한다.

 박동수의 작품 이집트 상형문자(히에로글리프, hieroglyph) 연작은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화면에 문자를 나열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예술작품이 지니고 있는 1차적 특성 즉 감성적 감각적 표현 체계를 앞세우고 있다. 회화는 일차적으로 색채와 형태로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가이자 추상미술 이론가였던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 1870-1943)는 ‘그림이란 말이나 사람의 이미지이기 이전에 물감으로 뒤덮인 평면이다’고 했다. 즉,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기 이전에 색채와 형태 그 자체로 사고와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회화작품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무슨 형태인지는 모르지만 리듬과 강약을 타고 얼룩덜룩 물감이 색채의 조화를 이루며 뒤덮여 있는 캔버스 평면이 작품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이론이 더욱 발전하면 아무 형태 없이 붉은색으로 또는 흰색으로 뒤덮인 캔버스가 작품이 되는 절대 추상에 이르게 된다.
박동수는 우선은 이러한 회화의 1차적 요소에 충실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1차적 요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다른 요소를 덧붙이는 작업을 한다. 그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즉, 제일 먼저 화면을 원색 계통의 물감으로 흘려 뿌리며 뒤덮은 후, 두 번째 그 위를 흰 안료로 전체적으로 두께 있게 입힌다. 마지막으로 스크레이핑(scraping) 기법으로 여러 가지 이미지를 선으로 긁어내어 작품을 완성시키는 과정이다. 이 세 단계를 하나하나 그 의미와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액션페인팅 기법 뛰어넘은 그만의 세계
첫 번째 단계에서 그는 추상표현주의의 기수이었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의 드리핑 기법처럼 원색의 물감을 화면 바탕 전체에 흘려 뿌린다. 잭슨 폴록은 액션페인팅의 선구자로서 물감을 막대로 듬뿍 찍어 화면에 줄줄 흘려 뿌리면서 전체 화면을 균질하게 채우는 전면균질회화(all over painting) 기법을 구사했다.
그림과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하나로 통일되며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동작이 화면에 전이된다. 그림을 시작할 때 나타난 원형(原形)의 추상적 형태가 급격하게 리듬을 타면서 화면 전체로 역동적으로 퍼져 나간다. 이른바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은 분출하는 본능의 역동적 행위를 날 것 그대로 화면에 담아내는 생동감 그 자체가 핵심적 내용이다.
박동수 역시 똑 같은 과정으로 물감을 흘려 뿌린다. 그가 잭슨 폴록처럼 원색의 생동감 있는 물감을 캔버스에 드리핑한 후 어떤 때는 그대로 완성된 작품으로 끝내고 싶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방이며 그렇게 되면 작품으로서 가치를 잃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첫 번째 단계의 드리핑 기법은 그만의 작품세계를 완성시켜가는, 다시 말하면 더 높은 단계의 발전적 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해 원색의 물감이 주는 역동적 생명감을 화면에 잠시 남겨 놓는 것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스크레이핑 기법으로 독특한 화면 분위기 연출
두 번째 단계로 그는 드리핑한 물감 위에 흰 안료로 두께 있게 골고루 전체 화면을 덮는다. 희게 덮인 화면에는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 아래층에 있는 원색 물감의 역동적 생명감은 그대로 꿈틀거리며 존재하며 밖으로 표출될 잠재적 가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끝 단계로 그는 원색 물감을 덮고 있는 흰 화면을 스크레이핑 기법으로 주로 선을 사용해 긁어냄으로써 그 만의 독특한 이미지들을 표현하고 있다. 긁어내어 드러난 이미지들은 변증법적 발전을 거친 또 하나의 이른바 ‘순수하게 정제되고 집약된 역동성’이다. 미학적 맥락은 다르지만 빈켈만의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에 비견된다. 빈켈만은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 조각 라오콘 군상을 예로 들며 라오콘의 격정적 역동성과 고전의 이상적 형식미가 균형 있게 조화돼 있으므로 ‘위대한 고요’를 느낄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위대함과 고요함은 일견 상충되는 의미를 지니는 듯 보이지만 고대 그리스 예술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해주는 말이다.
실제 이집트 상형문자를 소재로 한 박동수의 히에로글리프 연작들을 작품에서 조금 떨어져서 거리를 두고 보면,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선들은 전면균질회화를 이루면서 동양적 사유가 깃든 어찌 보면 모순인 듯한 고요한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이 작품들을 가까이에서 보면 여러 가지 내용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작품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여러 가지 동식물이나 인물, 물건들의 형태를 간략화 추상화시킨 상형문자 이미지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문자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이집트 문자 단어를 넣기도 하고 때로는 문자 사이의 빈 공간을 추상적이 점이나 선으로 채워 넣어 화면 구성 효과를 더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화면에 변화를 주기 위해 옆으로 긴 타원형 안에 파라오 왕 이름을 새겨 넣은 카르투슈(cartuoche)를 배치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카르투슈 안에 그의 이름을 새겨 넣어 작품 싸인을 대신하기도 한다. 예술적 상상의 세계에서는 작가 스스로가 파라오 왕이 될 수도 있으며 오히려 허구적 상상의 재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박동수의 작품세계는 근래 히에로글리프를 시작으로 다른 여러 가지 소재로 확산되고 있다. 즉 마야문명의 인체 형상에 기초한 마야문자들과 신화적 이미지들, 우리나라 고대 벽화에 나타나는 많은 이미지들, 그리고 한편 구체적 형상을 표현한 연꽃, 목련, 장미 소재의 작품들도 있다.
결국 이 모든 작품들은 캔버스 아래층에 있는 원색 물감의 감각적 역동성과 그 위를 덮은 흰색을 긁어내어 새긴 여러 사유적 이미지들이 조화를 이루어 ‘감성과 이성의 변주’라는 박동수의 작품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고대 문명 강한 관심, 풍부한 작품 세계 원천
작가는 생태적으로 자신 주위의 외부 사물을 받아들이는 감각의 폭과 깊이가 크다. 마치 빛에 민감한 인화지 같이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의 모든 것들을 자신의 작품 세계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생태적으로 강하다. 작가 주변의 현상과 이미지들을 때로는 직관적 감성으로 때로는 성찰적 사고로 자기 자신에 투영하여 그것을 다시 작품으로 형상화시키는 능력은 마치 인화지 같이 민감한 작가의 감각적 흡인력이 비유될 수 있다.
박동수 화백 역시 주변 세계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많다. 공간적으로는 세계 여러 지역의 생활과 문화에 관심이 많고, 시간적으로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추체험의 동기가 매우 강하다.
특히, 그는 고대 문명에 대한 관심이 강하다. 먼 옛날 그들의 사고와 감정을 현재에 작가 자신의 사고와 감정에 조율하여 반추하는 것은 그만큼 삶과 작품 세계의 내용을 풍부하게 해주는 원천이 된다.
그의 근래 작품은 그가 어렸을 때 체험과도 관련이 깊다. 그는 어려서 마당의 흙바닥을 파서 나무, 집, 자동차 등의 형태 또는 글자 등을 새기고 그 위에 흙으로 덮어 형상을 숨기고 난 후 다시 찾아내는 놀이를 자주 했다. 덮인 흙을 차근차근 헤쳐 내어 상대방이 흙바닥 속에 숨겨놓은 형상을 찾아내는 놀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신비로움과 호기심을 키우는 좋은 체험이었다.
그는 현재 화단에서 여러 가지 중책을 맡고 있다. 한국미술협회 중앙 본부에서는 서양화 분과 부위원장으로, 경기도에서는 경기미술협회 수석 부이사장으로,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인 의왕시에서는 의왕미술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이러한 활동은 개인적으로는 작품 할 시간을 빼앗기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이러한 직책을 계기로 그 직책에 걸맞는 더욱 좋은 작품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그의 근작들에 대한 평은 매우 좋다. 그는 앞으로 어느 지역 어느 시대의 문명이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들이 느끼고 생각하며 살았던 흔적을 소재로 그의 작품 세계를 더욱 확대 발전시켜 나갈 포부를 밝히고 있다.  

박동수    Park, Dong Soo 화가

한성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서양화 전공)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석사 졸업
개인전(덕원미술관, 단원미술관, 현갤러리) 및 단체전 300 여회
국전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중앙미술대상전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92 IAA 서울 기념전 (예술의 전당)
한국?네덜란드 현대작가전 (Galerie Jos Art, Netherlands)
용인국제아트엑스포 (용인 문화예술원 전시실)
안산국제아트페어 (단원미술관)
한?인도 국제미술교류전 (Lalit Kala National Academy of Art)
한국미술의 빛 초대전 (Milano Brera Art Center, Italy)
MBC 미국개국기념 한국미술대표작가전 (귀넷몰아트홀, 아틀랜타)
경기현대미술 베이징전 (Gallery Space DA, 베이징)
2009 칭따오 국제미술제 (칭따오 시립미술관)

홍익대, 인천대, 서울산업대 겸임교수 역임
대한민국미술대전, 경기미술대전, 행주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의왕국제플래카드아트 페스티발 대회장
경기의 사계-아름다운 산하전 운영위원장 역임
*현: 한국미술협회 이사 및 서양화1분과 부위원장
    경기도미술협회 수석부이사장, 의왕미술협회장
    월간아트프라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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