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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최고의 ‘떼루아’에서 생산되는 ‘샤토 라피트 로칠드’ 와인
보르도 최고의 ‘떼루아’에서 생산되는 ‘샤토 라피트 로칠드’ 와인
  • 고재윤 교수
  • 승인 2020.03.30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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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강렬한 ‘특별한 맛’

 

프랑스 보르도 와인 투어를 10회 정도 갔지만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Rothschild)를 갈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프랑스 보르도 1등급 와인이며 메독지역 5대 샤토(샤토 무통 로칠드; Chateau Mouton Rothschild, 샤토 라투르; Chateau Latour, 샤토 라피트 로칠드; Chateau Lafite Rothschild, 샤토 오 브리옹; Chateau Haut Brion, 샤토 마고; Chateau Margaux)중 4곳은 2~5번을 간 곳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늘 빠져 있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최초 이름은 ‘샤토 라피트’였다. ‘라피트’는 ‘작은 언덕’이며 보르도는 ‘강가’라는 뜻으로 ‘샤토 라피트’는 ‘강가의 작은 언덕에 있는 와이너리’ 의미다. 즉, 보르도의 ‘최고의 떼루아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역사는 17세기부터 시작됐고 1868년 제임스 마이어 로칠드 남작이 인수한 이후에 현재는 5대손인 에릭 드 로칠드 남작이 관장하고 있다.
금융업을 하던 제임스 마이어 로칠드 남작이 인수하고 난 후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샤토 라피트 로칠드’로 변경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대대로 금융으로 가문을 이어 왔지만 에릭 드 로칠드 남작은 보르도대학에서 양조학과 포도재배학을 전공한 와인 전문가다. 

세계적 와인 생산지 ‘보르도’

2019년 7월의 무더운 여름에 프랑스 보르도 메독지역 5대 샤토 중에 마지막으로 샤토 라피트 로칠드를 방문하는 기회가 왔다. 사실 와인 전문가도 5대 샤토를 모두 가보기는 어렵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무더위를 헤치고 아침 10시에 도착했는데 반갑게 맞이해주는 입구의 팻말과 함께 웅장한 포도밭이 보였다.
포도밭 표시판에 5개의 화살이 그려진 로고를 보는 순간 제임스 로칠드 남작과 5명의 아들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떠올랐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다섯 아들을 불렀다. 아들에게 1개의 화살을 꺾게 하자 쉽게 부러졌다. 다시 5개의 화살을 한꺼번에 주고 꺾으라고 했지만 아무도 꺾지 못했다.
그는 5명의 아들에게 “한 개의 화살은 쉽게 꺾이지만 여러 개를 뭉치면 꺾을 수 없다”는 탈무드 이야기를 유언으로 남기며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했다. 이런 교훈이 담긴 ‘5개의 화살’이 와인 병에 새겨져 샤토 라피트 로칠드 와인의 상징적인 문양이 됐다.
세계적인 와인 생산지라고 하면 단연 프랑스 보르도가 꼽힌다. 보르도의 가론강과 지롱드강 왼쪽에 위치한 메독의 포이약 산지는 가장 힘차고 무게감 있는 장기 숙성형 풀 바디스타일의 레드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구조감, 균형감, 세련미 모두 나무랄 데가 없다. 포이약 마을의 대표적인 와이너리는 샤토 라피트 로칠드로 자긍심이 대단하다.
나폴레옹 3세는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개최하며 보르도 와인에 등급을 부여했는데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그랑 크뤼 1등급으로 지정한 4개 샤토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최초로 1등급에 지정됐고 등급 발표 시에 첫 번째로 발표되면서 ‘1등급 와인 중의 최고’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일본의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도 6권, 7권에서 5대 샤토 중에 최고 와인으로 치켜세웠다. 또한 중국에서 2009년에 가짜 샤토 라피트 로칠드 와인의 파동이 있은 후 2012년 2월부터 샤토 라피트 로칠드와 카뤼아드 드 라피트(Carruades de Lafite) 와인 병에는 모두 ‘버블 코드’라는 인증 실을 부착한 후에 유통시키고 있다.
그날 안내한 수석 와인메이커 슈발리에는 “포도밭의 떼루아가 중요한데 토양층이 자갈과 석회석, 진흙 등으로 구성돼 있고 지롱드강의 영향으로 습도도 적당하기 때문에 포도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최고의 와인이 생산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 와인이 유명세를 타게 된 일화는 1985년 12월 5일 런던 크리스티스 경매장에서 제3대 미국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것으로 추정되는 ‘Th.J’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 1787년산 샤토 라피트 와인이 23만 달러에 팔리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1787년은 토마스 제퍼슨이 미국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해이기 때문에 더욱더 의미가 있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대사활동을 하면서 보르도 와인에 심취했고 1784년 프랑스 보르도를 방문하면서 샤토 마고와 샤토 디켐을 구입한 기록도 있지만 샤토 라피트 로칠드에 와인을 주문한 메모지가 발견되면서 경매 와인의 진실성에 무게가 실렸다.
또한 프랑스 루이 15세 황제는 식사를 할 때 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 와인을 마셔 ‘황제의 와인’으로 인기를 끌었고 세계적인 미국의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1982년, 1996년, 2000년, 2003년 빈티지에 100점 만점을 부여하면서 와인의 품질을 인정받았다.
한 가지 팁을 주면 수석 와인 양조가가 웃으면서 흘렸는데 2016년 빈티지가 최고의 와인이 될 것이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프랑스를 벗어나 해외로 와인 사업에 눈을 돌려 칠레의 ‘로스바스코스’, 아르헨티나의 ‘보데가스 카로’로 진출했고 최근에는 중국 산동성 연태 봉래 지역에 8년 동안 와인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전통적인 양조 방법에 과학적인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포도 품종(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프티 베르도 등)을 직접 재배·관리하고 수확과 선별 작업까지 모두 수작업을 고수한다.

은은하며 섬세한 향 ‘일품’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건물 외관은 화려하지 않으나 정감이 갔으며 지하의 와인 셀러를 보면서 명품와인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지하 셀러에서 샤토 라피트 로칠드 2004 와인을 시음했는데 분위기에 압도됐다. 
와인은 매우 은은하면서 섬세한 향이 일품이다. 짙은 자줏빛이 감도는 루비 색에 섬세하고 절제된 타닌, 단단한 바디감을 자랑하고 체리, 아몬드, 초콜릿, 자두, 블랙베리, 미네랄, 스파이시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향과 풍미가 일품이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아 인내심이 필요했다.
결코 향이 진하지 않고 은은했으며 우아하고 강렬한 응축미를 보였다. 여운이 매우 길고 아마도 15~30년 이상 장기 숙성한 후에 마셔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식과의 조화는 쇠고기, 양고기, 양념갈비 등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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