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5 09:03 (금)
최장수 총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성공비결
최장수 총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성공비결
  • 김은희 기자
  • 승인 2020.08.29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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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과 카리스마…위기에서 빛났다”

 

“한화는 오는 2030년까지 향후 10년간 미래 전략사업 분야에서 대체 불가한 세계적 선도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올해 초 신년사에서 밝힌 청사진이다. 그는 이 같은 청사진을 제시하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사업 비중을 확대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사업 가치와 성장성이 높아지는 회사를 만들자고 당부했다. 리치에서는 ‘최장수 총수’로 통하는 김 회장의 리더십과 경영 철학을 살펴봤다. 

 

한화그룹은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 순위 7위에 이름을 올렸다. 김승연 회장 취임 이후 불과 39년 만에 그룹 매출이 44배 이상 폭발적 성장을 거듭한 덕분이다. 실제 그는 이 기간 동안 굵직한 M&A를 통해 그룹 매출을 1981년 1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71조6000억원으로 키워냈다. 
물론 그 중심에는 한화그룹의 역사와 함께 그 절반 이상을 같이 해 온 김 회장이 있었다. ‘의리’와 ‘신의’를 지키는 인간적 면모를 자주 보이면서 일명 ‘의리왕’으로 통하는 그는 뚝심과 카리스마로 현재의 한화그룹을 일궈냈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한화그룹의 성장이 김 회장 체제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성공비결은 M&A를 통한 외형확장

지난 7월 1일 김 회장은 취임 39년을 맞으면서 재계 최장수 총수로서 이름을 올렸다. 그가 한화그룹의 사령탑에 오른 것은 지난 1981년 일이다. 당시 부친인 김종희 창업주가 갑작스러운 건강악화로 별세하면서 29세였던 그가 한화의 지휘봉을 이어받았다.
사실 한화그룹 출발점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창업주는 이 때 한국화약 현 ㈜한화를 세웠다. 그리고 전쟁으로 파괴된 조선화약공판 인천공장을 복구하고 원천기술이 없어 생산을 하지 못했던 ‘다이너마이트’의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김 창업주는 1964년 기계공업 진출을 위해 신한베아링공업을 인수했다. 또 이듬해 한국화성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현재 그룹의 중심역할을 맡고 있는 화학사업으로 진출시켰다. 그러면서 그룹의 도약의 기틀을 다졌다.
선대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2대 총수의 자리에 오른 김 회장은 성공적인 인수합병(M&A)을 발판삼아 한국화약이었던 회사를 석유화학과 기계공업, 태양광, 금융, 방산, 항공우주 등에 걸친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그룹으로 만들어 냈고 ‘한화’란 이름을 세계 곳곳에 알렸다. 이때부터 김 회장은 재계에서 ‘M&A의 귀재’로 불리고 있다.
실제 그는 숱한 M&A를 통해 그룹 외형확장을 꾀했다. 주력인 석유화학 분야는 물론 서비스와 레저 사업을 중심으로 영역을 확장시켰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취임 이듬해인 1982년 한양화학(現 한화케미칼)과 한양화학지주, 한국다우케미칼 3곳을 인수해 화학사업을 경쟁력을 강화시킨 것이다. 게다가 벨기에 솔베이사와 독일 바스프사와 각각 합작해 한양소재, 한양바스프우레탄을 세우며 화학사업에서 두각을 보였다.
김 회장은 사업을 화학에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1985년에는 현재 한화호텔&리조트의 모태인 명성콘도를 운영하던 정아그룹을 인수했다. 한화호텔&리조트는 현재 410개의 객실을 갖춘 럭셔리 부티크 호텔인 더 플라자를 비롯해 12개 직영 리조트와 4800실 이상의 객실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콘도미니엄 체인을 보유한 거대 레저 사업을 거닐고 있다.
그의 M&A 감각은 유통업에서도 빛났다. 1986년 ‘갤러리아’의 모태인 한양유통을 인수해 유통업에 본격 진출했다. 당시 한양유통은 슈퍼마켓 분야에서 국내 최대 업체였는데 이 회사를 인수한 후 운영하던 쇼핑센터를 한화그룹에 편입시킨 다음 ‘갤러리아’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한양유통의 사명을 ‘한화갤러리아’로 변경시켰다.
“승부사 기질이 적중했다”

김 회장이 던지고 있는 경영전략은 ‘혁신의 길에 종착역은 없다. 끝없는 도전으로 대체불가한 위대한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영전략을 모토로 내세우고 있는 그는 선택과 집중 전략에 기반한 중장기 사업구조 재편 작업을 단행했다. 그리고 현재 화학과 방산, 태양광 등 3각 편대로 그룹의 성장동력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경영권 승계 이후 사업 다각화와 성장 위주의 기업 경영을 통해 계열 기업군을 빠르게 성장시키며 한화를 일으킨 김 회장의 행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특유한 그만의 카리스마와 판단력·추진력 등이다. 이를 앞세운 ‘뚝심 경영’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에서 빠질 수 없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재계에서도 오늘날의 한화그룹이 경이로운 실적과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거에는 김 회장 특유의 승부사적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 한화 성장사를 보면 그의 승부사 기질이 적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견을 내세울 수 없다.
김 회장은 지난 1992년 10월 새로운 변화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룹의 경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그룹의 명칭을 ‘한화그룹’으로 바꾸고 모기업인 한국화약을 ㈜한화로 변경시켰다.
여기에 새로운 기업 이미지(CI)를 도입했고 1994년에는 계열사의 상호에 ‘한화’를 사용하면서 그룹 이미지를 통일시켰다. 이후 한화그룹은 빠르게 성장했다. 1980년대 초반 1조원에 한참 못 미치던 자산 규모가 1991년 5조원으로 증가했다.
그는 2002년 또 한 번의 도전을 감행했다. 대한생명을 사들여 금융 부문을 화학과 함께 한화의 양대 축으로 키운 것이다. 당시 한화그룹의 여건을 좋지 않았다. 1997년 불어 닥친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재계에서 ‘한화그룹이 존폐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실제 1997년 말 한화그룹의 부채 규모는 11조1382억원에 달했고 부채비율은 1214%를 기록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뚝심으로 위기 극복에 나섰다. 외환위기 전 32개였던 계열사 수를 15개까지 줄이면서 다른 기업집단에 비해 훨씬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고난을 헤쳐 나갔다.
그러면서 승부수를 띄운 게 대한생명 인수였다. IMF로 닥친 위기를 M&A으로 극복하려고 했고 결과는 성공적으로 나타났다. 인수 이듬해 대한생명을 인수한 효과로 그룹 자산 규모를 2002년 9조9000억원에서 2003년 14조3000억원으로 44.4% 끌어올렸다.
뿐만 아니다. 2003년 현대그룹과 금호그룹, 현대중공업그룹을 제치고 재계 순위를 3단계 올렸으며 대한생명은 그룹 전체 자산 비중의 70% 이상, 매출액 비중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로 자리를 굳혔다. 이처럼 대한생명의 인수가 ‘신의 한수’가 되면서 한화그룹이 제2의 전성기를 맞는 ‘전환 포인트’가 된 셈이다. 
그룹의 전열을 재정비한 김 회장은 다시금 특유의 M&A 감각을 살려 2014년 민간 주도의 자발적 산업 구조조정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2조원대 초대형 M&A를 성공시켰다. 삼성그룹으로부터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석유화학),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방위산업)를 인수한 게 그것이다. 이들 4사는 현재 한화그룹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중이다.
이 같은 특유의 뚝심과 카리스마로 기업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등 그룹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그는 현재 한화케미칼과 종합화학, 한화토탈을 통해 범용부터 고부가가치 상품까지 화학사업의 수직계열화를 구축해 놓고 있다.
여기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항공엔진, 시큐리티(테크윈), 방산(디펜스·시스템)의 시너지 강화와 한화큐셀을 통한 태양광 부문으로의 수익구조 다변화를 성공시키고 있다.

“햇살이 뚫지 못할 두터운 구름은 없다”

한편 김 회장이 최근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사업 중 하나가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다. 신재생에너지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 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그는 지난 2010년 ‘Quality Growth(질적 성장) 2020 비전’을 선포한 이후 태양광 분야를 중심으로 신수종 사업 육성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2015년 3500억원을 들여 충북 진천 산수산업단지 내 한화큐셀 태양광 셀 공장을 준공하는가 하면 기존 셀 생산규모를 3.7GW에서 5.2GW로 세계 최대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당시 사상 최대인 3조4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이 이처럼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은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최우선 실천 과제이자 ‘그룹의 지속가능한 질적 성장’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공을 들이는 성장 동력이라는 판단에 기인하고 있다.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은 최근 투자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는데서 엿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꼽히고 있는 것은 지난 2018년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이 약 1205억원을 투자한 미국의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의 기업 가치의 상승이다.
한화는 글로벌 유망 벤처기업 발굴 전략의 일환으로 니콜라에 투자했는데 이 회사의 기업 가치가 지난 6월 4일 나스닥 상장 첫날 14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이 보유한 지분 가치(6.13%)는 9034억원으로 7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한화그룹은 이번 투자가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 한화큐셀 등 주요 에너지 계열사가 ‘태양광’ 외에도 ‘수소 에너지’라는 또 다른 분야로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러면서 향후 태양광은 물론 수소까지 아우르는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예정임을 밝히고 있다.
“지난 10년간 국제 경제와 무역 질서 격변 등이 일어났지만 햇살이 뚫지 못할 두터운 구름은 없다. 새로운 10년을 나아가자”고 한화그룹 경영 비전을 제시한 바 있는 김승연 회장. 재계에서는 그가 한화그룹을 우뚝 세운 성공비결과 함께 앞으로 펼쳐나갈 그만의 성공스토리에 높은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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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 1952년 생
- 멘로대학 경영학 학사
- 드폴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 석사
- 서강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
 
▲ 주요 경력
- 한화그룹 회장(1981년~현재)
- 제2대 북일고등학교 이사장(1981년 8월~현재)
-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199년 2월~현재)
- 세계아마복싱연맹 수석부회장, 아시아지역 회장(1982년)
- 한미대양주협력회 이사(1983년)
- 외교통상부 경제통상대사(2002년)
- 대한생명보험 대표이사 회장(2002년~2005년)
- 유엔평화대학 개발위원회 위원장(2004년 10월)
- 유엔한국협회 회장(2006년 7월)
- 그리스 명예 총영사(2007년 3월)
- 한화석유화학 대표이사(2009년 3월)
- 한화 이글스 프로야구단 구단주(2009년 8월)
- 국제복싱발전재단 이사장(2009년 8월)
-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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