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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자꾸 찾게 되는 욕쟁이할머니의 숨겨진 매력
알면서도 자꾸 찾게 되는 욕쟁이할머니의 숨겨진 매력
  • 월간리치
  • 승인 2011.09.14 09:53
  • 호수 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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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진 욕쟁이할머니집. 때문에 여느 집이랑은 달리 대접을 받으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게 속 편하다. 알면서도 자꾸 찾게 되는 그곳의 특별함을 들여다 본다.

높다란 툇마루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들어오는 손님 한명씩 훑어보는 할머니. 가볍게 눈인사를 해도 긴장감은 어쩔 수 없는 모양새다.80년이 넘은 허름한 한옥 건물과 할머니의 오버랩이 자연스럽다.
네모반듯한 마당은 대형 비닐로 빈틈없이 감싸였다. “야야, 손님 왔다. 와서 와요 방에 들어가셔” 구부정한 자세로 마이크를 꺾어 잡고 요란하게 환영인사를 하는 할머니. 달그락거리는 진동 안마의자에 앉아 식당 이곳저곳을 진두지휘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마치 전쟁터의 장수를 연상시킨다.
매서운 눈초리에 한 번 걸려들었다 하면 지적은 바로 시작된다. “1억을 줘도 이 자리는 안 팔아” 할머니 앞에서는 직원들은 물론, 콧대 높은 아가씨, 버릇없는 아이들도 절로 고분고분해진다.

욕 일발 장전, 알면서도 즐거운 곳

이제 들녘의 곡식들도 금빛 물결로 출렁거릴 계절이 다가온다. 찬바람이 부는 그맘때면 시래기정식 생각에 침이 고인다는 단골들, 일명 마니아로 불리는 그들은 할머니의 욕을 먹고 싶어 안달 난 모습을 조심스레 숨긴 채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작정하고 욕먹으려고 발악하는 ‘간 큰’ 마니아도 있을 정도다. 장난기 가득한 중년 신사가 욕을 얻어먹을 심산으로 할머니의 심기를 건드리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괜스레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고 하면 할머니표 욕은 기다림 없이 바로 쏟아진다.
“썩을 놈. 손모가지를 확! 맛없으면 먹지 마. 지랄 염병하고 자빠졌네. 켁”
할머니의 입담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바빠 죽겠는데 어떤 놈들이 오라고 하잖아. 내가 막 욕을 해댔지. 아, 근디 갸들이 국회의원이라잖아. 개  우라질” 쉴 새 없이 욕을 퍼붓는 통해 할머니의 헛기침도 잦아들 새 없이 장단을 맞춘다.
“울 엄니가 욕을 참 잘 하셨지” 팔(八)자 눈썹이 씰룩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할머니의 미소는 환해진다. 할머니의 본심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에라이 이년아, 밥 다 쳐 먹었으면 빨랑 인나. 나가서 떠들어. 밖에 줄 쫙 섰어”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된통 욕을 얻어먹어도 그저 좋다고 실실거린다. “아직도 저러고들 있네. 커피는 나가서 쳐 먹어. 여기가 다방도 아니고!”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할머니의 욕을 그렇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이곳을 찾은 다른 손님들이 킥킥대며 서로의 마음을 시나브로 공유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렇게 할머니의 욕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질 쯤, 할머니의 18번 ‘창부타령’이 울려퍼진다.
“노상 듣지. 춤도 추고 그랴. 춤 출랑가? 야야, 그렇게 추는 거 아니다. 그게 막춤이지. 요래요래”
점잖은 신사와 뾰루퉁한 숙녀들 모두 앞마당을 온통 춤판으로 변신시킨다.

시래기 5톤의 미학

할머니는 해마다 일년치 시래기를 며칠에 걸쳐 삶는다. 그 광경이 지나가는 행인도 멈춰 세울 만큼 실로 대단한 볼거리다. 강원도 철원의 000평(2만3140㎡) 무밭에서 거둬온 양만 해도 무려 5톤 트럭 6대 분량.
일손이 부족해 동네 어르신들이 죄다 동원됐다. 무청은 시래기로 사용하고, 무는 깍두기와 절임 무로 알뜰하게 쓰이니 하나도 버릴 게 없다.
이곳의 시래기는 삶지 않은 싱싱한 무청을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20일 정도 말리거나 무청을 삶아 소금에 절여 창고에 저장한 것들이다. 이른 새벽부터 참나무 장작불에 무청을 삶는데 그 양이 많다보니 보통 일이 아니다.
돼지껍질부터 쥐눈이콩·새우젓 호박볶음, 고춧잎·깻잎 장아찌 등 15여 가지 반찬이 줄줄이 달려 나오는 시래기정식은 먹음직스럽다.
상상해보자. 조선간장과 청양고추, 깨소금을 넣어 만든 양념장을 뜨끈한 콩비지에 쓱쓱 비볐다. 그 맛은 입에 착 감기는 짭조름하면서 얼큰한 맛이다.
청국장은 그냥 퍼먹어도 맛있다. 양푼 가득 담겨 나오는 밥과 대접째 나오는 숭늉은 어린 시절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이 집의 장독대도 장관이다. 지난해 담근 햇장부터 3~4년 된 묵은 장, 10년도 훌쩍 넘은 귀한 장까지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보물인 1921년 산’ 간장은 두말할 이유가 없다.

하루 10시간 요지부동 하지만…

할머니의 하루가 궁금해진다. 아침 10시30분에 출근해서 저녁 8시까지 웬만해선 자리를 뜨지 않는 정의만 할머니. 심지어 식사를 할 때도 엉덩이를 딱 붙이고 있다.
유일하게 자리를 비우는 시간은 하루 두 번, 아들과 산책하는 시간. 아들은 “어머니가 아프신 후론 매일 운동을 나가요. 시장도 자주 가고요. 직접 재료를 사야 마음이 놓인다고 하셔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가 욕을 하고 언성을 높여도 무조건 “허허허” 하고 웃어넘기는 아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는 지난해 6개월 동안 꿈쩍도 못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셨다.
때문이지 아들은 의도치 않은 고민이 생겼더란다. “누나네 집에 쉬러갔다, 여행 갔다 둘러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제 귀에 들렸을 땐 뭐라 말도 못하고 살아계신 어머니를 두고 관까지 짰을 땐 아들 심정이 어떻겠습니까”라며 말끝을 흐린다. 아들은 “설령 어머니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해도 옆에만 살아 계시면 좋겠다”며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늘어놓는다.
이에 할머니는 “굉장했지. 6개월 동안 말도 못하고 답답해서 죽는줄 알았어” 담낭수술을 하다 호흡곤란이 와 목에 구멍까지 뚫은 할머니의 잔기침이 잦아진 이유다.

할머니의 진심은 ‘이것’?

할머니의 인생사는 한 마디로 드라마다. 부침개, 풀빵, 뱀까지 잡아 경동시장에 내다 팔았으니 말이다.
“식모살이부터 안 해본 장사가 없어. 그러다 충청도에서 포천으로 이사왔지”
할머니는 30년 전 식당 옆 작은 구멍가게에서 고모리 호수 낚시꾼들을 상대로 라면을 끓여주고는 했다. 그러다 된장찌개를 끓여 팔았는데 입소문을 타고 확장 이사를 하게 됐다.
이러한 할머니 옆에는 항상 큼지막한 뻥튀기 자루가 놓여 있다.
유독 아이들을 예뻐해 뻥튀기를 후하게 주는 할머니. 하지만 할머니의 뻥튀기가 아이들에 전해지는 기준은 냉정하다. 질질 싸는 아이의 몫은 없다. 먼 곳까지 찾아와 고맙다며 집에 가는 길에 먹으라고 던져주는 뻥튀기. 욕쟁이할머니의 내색하지 못하는 진심은 날아가는 뻥튀기에 고스란히 담겨있을 것이란 생각에 집으로 가는 길마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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