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6:53 (금)
“다채로운 제주의 색을 느낀다”
“다채로운 제주의 색을 느낀다”
  • 혜초 여행사
  • 승인 2021.01.3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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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부의 아름다운 ‘오름 길’

 

이번 제주 트레킹의 주인공은 한라산이 아닌 오름이다. 특별한 산행 장비 없이, 큰 준비 없이, 무엇보다 최소한의 고됨으로 제주의 자연과 길을 걷고 싶었다. 제주에는 300여 개가 넘는 오름이 있다고 한다. 그중 한라산 동쪽, 제주 동부에 위치한 쫄븐 갑마장길을 선택했다. 푸근하고 따뜻하고 충분했던 제주의 트레킹 여정을 소개한다.
 
 

쫄븐 갑마장길은 숲길과 평야, 오름이 조화를 이룬 제주의 다채로운 길과 옛 시간이 남아 있는 이야기와 아름다운 풍광까지 더해진 곳이다.
가시리 마을

쫄븐 갑마장길이 있는 가시리 마을은 한라산 동남쪽, 중산간에 위치해 있다. 13개의 오름으로 둘러싸인 광활한 분지지대로 표선면 안에서도 꽤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데 과거 고려시대부터 말을 키우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이곳 일대를 연결하는 광활한 초지대에서 조정에 보내기 위한 최상급 말을 집중적으로 길러냈던 갑마(甲馬)장이 자리하게 되어 역사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제주 목축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하지만 해안 위주로 관광 산업이 발전하면서 이곳은 오랫동안 오지로 머물렀고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못했다.


가시리 마을에 활력이 돌기 시작한 것은 풍력단지가 들어선 이후부터다. 유치 당시에는 의견 대립이 많았으나 넓은 땅을 잘 유지해왔기에 거대한 풍력단지가 들어설 수 있었고 그 수익금으로 전국적으로 살기 좋은 마을로 업그레이드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가족들이 부담 없이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조랑말 체험공원과 작가들이 거주할 수 있는 창작 공간 등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과 걷기 명소들이 개발됐다. 바다와 인접하지 않아도 드라이브와 걷기, 마을에서의 휴식으로 충분히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최근 들어 여행 마니아들의 장기체류지로 거듭났다.


말과 사람의 길, 쫄븐 갑마장길

가시리 마을 내에서 약 100여 년 가량 유지됐던 갑마장길은 2012년 마을 주민들에 의해 사람의 길로 바뀌었다. 오름과 목장, 평원을 연결했던 약 20km에 달하는 길에서 걷기 좋은 코스로 단축해 쫄븐 갑마장길이 탄생했다.


‘짧은’이라는 뜻의 제주 방언인 쫄븐은 10km 코스로 사슴이오름과 따라비오름, 스토리가 담긴 잣성길, 삼나무숲과 원시림 등 제주의 모든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축소판 같은 곳이다. 제주도민들과 관광객 모두에게 인기를 끌며 각종 러닝대회 경기장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평화로운 분위기의 목장 입구에서 쫄븐 갑마장길이 시작된다. 순환코스여서 어느 방향으로 해도 괜찮고 시간과 체력에 따라 일부 구간만 걸어도 충분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쉬운 난이도의 길로 트레킹을 즐겨볼 수 있다.


코스는 ‘조랑말체험공원(행기머체)-큰사슴이오름-잣성-따라비오름-가시천-조랑말체험공원’으로 이어지는데 10km 구간으로 약 3시간 소요된다.


제주 섬에만 있는 행기머체

길을 시작하는 조랑말체험공원에는 이름도 낯선 행기머체가 있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거대한 바위로만 알고 갔을 뻔했다. ‘머체’는 돌무더기를 일컫는 제주 방언인데 돌 위에 행기물(놋그릇에 담긴 물)이 올려 있었다고 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이 큰 바위는 용암 덩어리로 마치 거북이 등 모양을 연상시킨다. 옛날 어느 곳의 마그마가 지하로 흘러 근처의 암석을 뚫고 들어가 부풀려져 만든 지하 돔이라고 한다. 이를 크립토돔(Cryptodome)으로 부르는데 행기머체가 이에 속한다.


우리말로 ‘지하용암돔’은 세계적으로도 무척 희귀하고 국내에서도 유일한 분포지이며 동양에서 가장 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건너편 100m에 떨어진 곳에 있는 꽃머체 역시 크립토돔으로 제주의 지질학적 가치로 무척 중요한 자원이다. 잊고 있던 제주 섬의 특징과 중요성을 떠올리게 한다.


억새와 바람이 만들어낸 ‘큰사슴이오름’

옛 갑마장은 두 개의 오름, 큰사슴이오름과 따라비오름을 주축으로 드넓은 초지가 형성된 곳이다. 먼저 유채꽃프라자 뒤쪽을 따라 큰사슴이오름으로 향했다.


한라산의 기생화산 중 하나로 생겨난 큰사슴이오름은 해발 475m로 봉긋하고 예쁘게 솟은 모양에 동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곳에 사슴이 살았다고 해서 녹산으로 불리다가 서쪽에 위치한 족은사슴이(소록산)와 구별해 큰사슴이(대록산)으로 불리게 됐다. 


완만한 경사를 가지고 있는 편이고 나무 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오르기는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억세 천국답게 감탄이 나오는 억새밭을 만날 수 있다. 바람에 따라 출렁이는 억새밭을 헤치며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제주 동부권이 한눈에 들어온다.


초원 지대와 거대한 바람개비, 풍력발전기 그리고 볼록볼록 솟은 오름 군락, 따라비오름을 가는 길에 만나는 제주 특유의 돌담, 잣성도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갑마장길을 걷는 동안 제주의 색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초록색 가득한 초원과 숲길, 파란 하늘과 바다 때문에 눈이 참 편안하다. 거기에 중간중간 만나는 색색의 꽃과 바람에 따라 금빛과 은빛을 오가는 억새까지 더해져 단조로움이 없다.


여정의 하이라이트 ‘따라비오름’

따라비오름을 향하는 길에 만나는 잣성은 조선시대 중산간 목초지에 만들어진 돌담 구조물이다. 목장과 목장의 경계를 구분 짓고 말들을 가두기 위해 현무암으로 돌담을 쌓고 편백나무를 심었다. 그 규모가 크고 당시의 원형이 잘 남아 있어 제주의 옛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이 돌담을 옆으로 빼곡한 편백나무 숲과 동백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등 원시림 숲길을 걸으며 따라비오름으로 향한다. 따라비오름은 3개의 굼부리(분화구)를 중심으로 6개의 봉우리가 완만하게 이어져 있는 제주를 대표하는 오름 중 하나다.


‘땅의 할애비’라는 의미의 따애비에서 유래된 따라비는 주변에 작은 오름들을 거느리고 있어 오름의 여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오르고 내리면서 오름의 매력에 푹 빠진다.


만만한 듯 편하게 걷다가 가파른 길도 나오고 하지만 사방으로 펼쳐지는 멋진 뷰를 보면서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다. 천천히 제주에서의 시간을 만끽한다. 오름에서 내려와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우거진 숲길을 걷다 가시천이라는 또 다른 신비한 자연을 만난다.


마른 천인 가시천 바닥에 깔려 있는 돌에는 이끼가 가득한데 마치 작은 밀림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남아 있는 물 냄새와 이끼 냄새, 숲 냄새가 가득하다. 처음 만났던 길로 다시 돌아오는 반나절 동안 제주를 흠뻑 보고 느끼고 만났던 시간이었다. 


「자료 제공 : 혜초여행, www.hye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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