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1 15:27 (화)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김은정 발행인
  • 승인 2022.03.03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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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친환경·친자연 농부 이해극을 만나다

 

이해극 유기농협회 회장이 브로콜리 모종을 키우며 희뭇해 하는 모습

 

스물다섯에 고향 제천에서 처음 농사를 50여 년 가까이 유기농업에 전념해왔다. ‘남몰래 밤에 농약 치는’ 거짓말쟁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유기농업만 고집했다. 유기농업 인생은 30대 고추 증산왕을 시작으로 평창 육백마지기에서 남들이 기적이라 부르는 비옥한 대규모 유기농 농장을 일군 데 이어 북한과의 영농 협력 사업으로 뻗어갔다. 리치가 이해극 한국유기농업협회장을 직접 만나 농부의 삶을 창간 18주년을 맞아 진솔하게 들여다봤다.


 

“우리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주어야 한다. 우리 세대가 생물도 미생물도 살지 않는 땅, 농약과 제초제에 오염되고 자갈투성이가 된 황무지나 물려주는 염치없고 이기적인 선조로 남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1950년 ‘전쟁둥이’로 태어난 이 회장이 고향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1970년대 유기농업을 한다는 사람들은 “되지도 않는 짓을 하는 미친놈” “남몰래 밤에 농약을 치면서 낮에 거짓말이나 하는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는 증산만이 지상목표였고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이 과학영농이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회장은 “화학 농법을 쓰는 한, 농부가 아니라 죄인”이라는 믿음으로 유기농업을 놓지 않았다.
유기농은 이제 가장 흔한 말 중 하나가 됐다. 작은 슈퍼마켓부터 대기업 광고에도 ‘친환경 유기농’을 내세우며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다. 또 유기로 면화로 생산하는 유아용 의류나 생리용품까지 등장해 식품은 물론 공산품 등 모든 영역에서 고급 제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유기농의 사전적 의미는 ‘모든 화학비료나 합성농약, 항생제와 호르몬제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녹비와 퇴비, 미생물, 광석 등의 자연 물질을 이용한 농업 생산 방식’이다. 
이 회장은 “그러나 이런 지식이 있다고 유기농을 아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반딧불이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와 그 진실을 알 때 비로소 유기농을 안다고 할 수 있다. 반딧불이보다 더 예민하다는 나비를 보라. 매년 봄 브로콜리를 수확할 때면 나는 ‘나비 밭’에서 일한다. 나비처럼 반딧불이도 언젠가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이 회장은 그저 유기농업인이 아니라 성공한 유기농업인이 된 데는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 땅과 물은 물론 동물, 궁극적으로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제초제 같은 농약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다. 농작업은 일일이 사람 손이 필요하고, 조금이라도 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다 망친다. 유기농을 하는 이들이 농사 규모를 키우지 못하는 이유도 일정 정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래서 이 회장은 발명가가 됐다.

온도경보기·비닐하우스 자동화…발명가 이해극

이 회장은 농사 초년 시절 좌충우돌 비닐하우스를 짓고 고추 농사를 시작했지만, 사람 손이 많이 필요했다. 순식간에 변하는 하우스 특성 탓에 온도가 높아져 작물이 타 죽을까, 너무 낮아서 얼어 죽을까, 노심초사했다. 이 회장은 “어떻게 하면 사람이 아닌 기계의 힘을 빌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절실한 필요에서 시작됐다”며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온도 경보기, 적설 경보기이고, 세계에서 처음이라는 자동 개폐기”라고 소개했다.


특히 1990년대 아내의 고생에 자극을 받아 발명한 저전압 비닐하우스 자동개폐기가 주목 받았다. 이 회장에 따르면 작물이 생육하는 데 필요한 적정 온도와 환기 관리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비닐하우스의 환기창을 수시로 여닫는 일이었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일반 작물은 물론, 포도 같은 과수도 더운 날씨에 하우스 창을 1시간만 닫힌 채 두면 몇 년 공들여 키운 정성이 허사가 된다. 이 때문에 사시사철 사람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이는 비닐하우스 일 가운데서도 가장 힘든 악성 노동이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파이프가 미끄러워 개폐 손잡이를 놓치기라도 하면 되돌아가려는 빠른 회전 관성으로 얼굴을 찢기거나 손과 턱을 다치는 일이 다반사다. 무엇보다 검전 사고의 위험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리고 난 후 이 회장이 선택한 것은 감전 위험이 없는 자동차용 모터였다. 자동차 배터리로 가동되다 보니 감전사고도 해결됐다. 
자동 개폐기가 개발된 1990년 이후 국내 비닐하우스 시설면적이 5000만 평이나 늘었다고 한다. 이 회장의 비닐하우스 자동개폐기는 국내를 포함해 전 세계에 100만 대 이상 보급됐다. 그가 발명한 것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변온 씨앗 발아기, 자동 파종기, 모종 식혈구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자연스럽게 발명가라는 별칭도 붙었다.


모든 것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허 분쟁에도 휘말렸다. 이 회장은 “세계 최초라는 이름표를 단 우리 자동 개폐기가 S업체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최고장이 날아들었다. 그동안 판매된 농가 주소와 거래처 장부 일체, 금형 등을 반납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했다.
S업체는 이 회장이 자동 개폐기를 개발한 지 3년쯤 지난 후 자신들의 개폐기를 벤치마킹해 이 회장보다 1000배나 많은 자본금으로 신설된 업체였다고 한다. 특허소송 과정에서 S회사가 부도로 사라지면서 특허 분쟁은 일단락됐지만, 이 회장 측은 정신적, 경제적 손실을 봤다.
이후 1993년 이후 농민발명가협회장을 맡으면서 발명에 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조금만 보완하고 발전시키면 크게 쓰일 만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누군가에게 비웃음이라도 살까 싶어 고안한 것을 내놓지도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눅 들면 안 된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야 비로소 온전한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

평창 육백마지기에서 꽃을 피우다

1990년 강원도 평창 청옥산에서 육맥마지기에 도전했다. 해발 1200m 고지에 12만 평 규모의 드넓은 농토를 가리키는 육백마지기는 1960년대 화전민들이 처음 땅을 일군 이래 고랭지 채소를 줄곧 생산하던 옥토였다. 그러나 이 회장이 만난 당시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로 변해 있었다.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한 수탈농업의 결과였다. 


이 회장은 “당시 모두가 이곳 농사는 무조건 망하는 표본이니 패기는 좋지만 그만두라며 말렸다. 그도 그럴 것이 육백마지기는 손수 땅을 개간하고 수십 년 동안 이곳에서 농사를 지은 경험이 있는 현지 화전민들도 실패하고 떠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이곳에서 유기농업의 가능성을 실험하고자 했다. 1991년 본격적인 육백마지기 농사를 시작한 첫해 작물로 엽채류와 배추, 무를 선택했다.


이 회장이 육백마지기 7만여 평의 영농 면적을 계산해보니 길러야 할 모종수는 무려 100만 개에 달했다. 좁쌀만 한 배추 씨앗을 상토로 채운 포트의 구멍에 한 알씩 넣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 구멍에 두 알이 뿌려져 모종이 두 폭 자라면 일일이 한 폭은 솎아내야 하는 데 여기에 드는 인력만 해도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파종기를 만들었다.

자동 파종기는 손 파종보다 100배의 효율을 올렸다. 회장은 “다시 운 좋게도 자동 파종기 개발이라는 또 하나의 성취를 이루었다”며 껄껄 웃었다. 육백마지기는 5월 중하순까지 눈발이 날리고 걸핏하면 콩알만 한 우박이 쏟아지는 곳이다.

이 회장은 변화무쌍한 날씨와 적절한 관리 방법을 파악하고 고생한 끝에 결국 농사짓기에 성공했다. 1995년의 기록적인 배추 파동 때에도 육백마지기에서는 오히려 풍작이었다, 비결이 바로 유기농업이었다. 육백마지기에 적용된 농법은 호밀을 녹비작물로 재배한 것과 잡초와 공조해 ‘땅심’을 되살려내는 것이다.

휴경기 동안 호밀을 심어 지력을 높이고 잡초를 활용해 표토를 보호하는 농법은 겨울이면 혹한에 시달리고 여름에는 폭우에 흙이 모두 쓸려 내려가는 1200m 고지 육백마지기에 꼭 맞는 것이었다. 


이는 농부는 자연과학자라는 지론대로 그가 그곳의 자연환경과 작물의 생육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연구했기에 가능했다.

 

자칭타칭 ‘황당무계당 당수’ 이해극

이 회장은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나 농작업에 필요한 기계들을 스스로 발명했다. 황당한 일이다. 모두가 포기했던 육백마지기에 유기농장을 일구었다. 이 역시 황당한 일이었다. 또 남북 농업 협력을 위해 북한에서 살다시피 하며 금강내기라는 자연과 싸우고 북한의 관료체제와 싸운 것 역시 황당무계당 당수다운 행동이었다. 


이 회장은 1999년 10월 15일 남한 농업인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에 유기농법을 전하고 자동개폐형 비닐하우스도 설치했다.  처음에는 무인도에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비닐하우스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했다. 이 회장이 책임져야 할 비닐하우스는 76동에 면적만 4만㎡(1만2000여 평)에 달했다. 


이 회장은 “실제 현장에서는 남북 영농 교류의 첫 삽을 뜨는 것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오차가 있거나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중압감이 나를 짓눌렀다”며 “이는 남북 교류 협력 활성화든, 신뢰 회복이든, 우선은 이번 첫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큰 틀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온실 시공과 육묘 생산 두 분야였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비닐하우스 배치, 농업용수와 수막 재배를 위한 지하수 개발, 방풍막 설치 작업도 계획에 따라 병행해 추진해야 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리기도 했다.
북한 땅을 수시로 밟으면서 유기농업기술 전수와 교육 등을 총괄했던 이 회장은 “2000년 2월부터 배추와 쑥갓, 시금치 등의 첫 수확이 이루어져 현대아산에 납품을 시작했다. 남북이 협력하고 최초로 수확한 농산물이어서 상징적이고 의미심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품성을 따지자면 목표 지점에 이르지 못했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은 탓에 수막 재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일부 작물은 냉해 피해를 보기도 했다. 또 토양이 비옥하지 않으면 작물 생육도 좋지 않고 각종 병해충에도 쉽게 노출된다”고 했다.


남북 영농 교류 사업은 척척 진행되다가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건으로 교류가 중단되면서 이 회장의 방북길도 끊어졌다. 
이 회장은 “남북 농업 협력 사업은 단지 북측에 대한 지원 사업이 아니다.

큰 틀에서 보면 남한의 식량 자급률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남북 영농 협력 사업이 재개되기를 바랄 뿐이다. 북측의 드넓은 초록 들판에 넘실대는 건강한 먹거리는 북측의 농부도 살리고 남측의 먹거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다”고 강조했다. “비무장지대에 남북이 협력해 함께 농사짓고, 그렇게 생산한 건강한 먹거리를 함께 먹을 수 있다면 우리는 통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유기농 국가 프로젝트를 제안하다

이 회장은 소규모 유기농 농가가 전국에 그물망처럼 짜여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만일 이 꿈이 실현된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국민 건강 또한 증진될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이 주도하는 때에 식량안보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1000만 퇴직자 시대에 고용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잠시 빌려 쓰고 있는 이 땅과 자연을 온전하게 후세에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했다. 이 회장은 “5년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십조 원에 달하는 농업 부문 예산이 발표되지만, 농촌 현실은 개선되기는커녕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 수립 방향부터 다시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이 회장은 우선 유통 시스템 구축을 제안했다.
“거대 유통자본이 농산물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지금의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작은 유기농 농사꾼들이 버틸 재간이 없다며 우선은 정부 조달부터 이 분야에 집중할 수 있다. 유통을 민간 자율에만 맡긴다면 지금처럼 해마다 작목별로 폭락과 폭등이 되풀이되고 시장 자체가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진단이다. 두 번째로는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관행농법으로 농토가 병들어가고 있다면 이를 소생시키는 일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일례로 간벌사업이나 가지치기 등 숲 가꾸기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우리 산림에서 엄청난 양의 목재가 쏟아져 나왔다. 이것으로 톱밥을 만들어 처리 문제를 안고 있는 축산 분뇨와 섞으면 더없이 좋은 유기질 비료가 된다”며 “목재 퇴비를 사용하는 일은 탄소 순환 등 자연의 순환에 도움을 주면서 생태계를 복원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얻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국가 단위의 유기농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상상 이상의 편익이 따라올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국민 건강 증진을 들었다. 
“수익으로 따지면 막대한 건강보험료 지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1조 원을 투자하면 3조 원은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많으면 남북 협력 사업에도 사용할 수 있다. 소규모 유기농 농가의 육성은 형편없는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데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담 김은정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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