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6:53 (금)
헝가리의 아름다운 세계 문화유산
헝가리의 아름다운 세계 문화유산
  • 이덕희 칼럼리스트
  • 승인 2022.09.28 2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풍요롭고 다채로운 문화를 뽐내다

 

헝가리(Hungary)는 유럽 중앙의 동부, 도나우(Danube)강 중류에 자리하고 있는 내륙국이다. 헝가리의 공식적인 역사는 9세기 아르파드(Arpad) 왕조 때부터 시작됐다. 이후 몽골제국, 오스만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다.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편입됐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 분열돼 헝가리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1989년 동구권 공산주의 진영이 붕괴하자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체제를 전환했다. 2004년에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됐다. 정식 명칭은 헝가리 공화국(Republic of Hungary)이다.

부다페스트의 도나우강 연안과 부다 성 지구, 언드라시 거리(Budapest, including the Banks of the Donau, the Buda Castle Quarter and Andrassy Avenue)는 로마 제국의 도시였던 아쿠인쿰(Aquincum)과 고딕 양식의 부다 성(Buda Castle)과 같은 유적들이 있다. 
이 지역에 흐르는 도나우강은 부다(Buda)와 페스트(Pest)라는 두 도시를 구분하는 선이다. 부다는 강둑의 오른쪽 대지에 있었고 페스트는 강둑의 왼쪽이었다. 이 두 지역에는 풍부한 온천 때문에 일찍이 켈트족도 이곳에 정착했다. 아쿠인쿰은 판노니아와 다키아에 로마 시대 건축 양식을 보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부다 성은 14세기부터 마자르족 지역에 고딕 예술을 보급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주변의 옛 시가지와 함께 터키의 침략기로 구분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두 시대를 보여주는 건축물들이 조화롭게 있다.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파논할마의 베네딕트회 수도원과 자연환경(Millenary Benedictine Abbey of Pannon-halma and its Natural Environment)은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이 996년 파논할마에 정착해 첫 학교를 설립하고 헝가리인들을 교화시킨 곳이다. 수도원 건물의 다양한 건축 양식은 초기 기독교 수도원의 구성 방식과 건축 구조다. 1000년 수도원 역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또 이곳은 중부 유럽 지역의 기독교 전파와 지속성을 보여주는 우수한 사례가 되고 있다.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호르토바지 국립공원-푸스터(Hortobagy National Park-the Puszta)는 헝가리 동부 데브레첸(Debrecen)시 가까이에 있는 광대한 초원과 늪지대가 있는 대평원이다. 이 경관은 유목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며 문화적으로도 뛰어난 풍경으로 손꼽힌다. 또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2000년 이상 전통적인 경작 방식을 고수해 온 본래의 모습을 보여 주는 증거로 잘 보존돼 있다.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페치(소피아나)의 초기 기독교 네크로폴리스[Early Christian Necropolis of Pecs(Sopianae)]는 4세기 무렵 화려하게 장식된 일련의 묘지들이 ‘소피아나’라는 로마 지방 마을의 공동묘지에 건설됐다. 도나우강 서쪽에 있는 현재의 헝가리는 기원전 1세기에 ‘소피아나’라는 이름으로 로마 제국 판노니아(Pannonia)의 속주로 편입된 역사가 있다. 소피아나 묘지의 매장실과 예배당 기념물은 로마 유럽 말기의 기독교적 공동체의 신념과 세력을 나타내는 탁월한 증거로 여겨진다. 이곳의 유적지는 초기 기독교 매장 예술과 북부 로마, 서부 로마 지역의 건축물들이 지니는 독특한 특징을 잘 드러낸다. 이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헝가리의 지정학적 위치는 사방으로 접근할 수 있다. 실제로 수많은 이민자의 침략을 받았다. 이 중 훈족의 영웅으로 회자하는 아틸라 왕은 헝가리 신화의 중심인물이다. 9세기 말부터 아틸라 왕의 후손인 아르파드의 세력들이 헝가리 민족 공동체를 형성했다. 그러나 1241년 몽골제국의 침략은 인구 절반이 희생당하는 큰 피해를 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너무도 참혹한 일을 많이 당했고, 너무도 많은 다른 세력들이 지배해 문화 역시 철저히 혼합돼 있다. 이로 인해 남아있는 유적지들의 공통된 현상은 모두 복합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