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6:53 (금)
아픈 역사 간직한 폴란드(Poland)
아픈 역사 간직한 폴란드(Poland)
  • 이덕희 칼럼리스트
  • 승인 2023.11.01 15: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세 유럽의 아름다움을 만나다

 


폴란드(Poland)는 중부 유럽 발트해에 면한 나라로 10세기 국가가 성립돼 16세기에 전성기를 보낸다. 
1795년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3국에 의해 분할된 후 1918년 독립했다.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서부지역은 
독일, 동부 지역은 소련에 의해 점령당했다가 1945년 해방됐다. 정식 명칭은 폴란드 공화국(Republic of Poland)이다.

크라쿠프 역사 지구(Cracow’s Historic Centre)는 폴란드의 옛 수도였고, 시장 광장이 들어선 중심지, 구석기 시대부터 인간이 살았던 바벨 성(Wawel Castle)이 있는 언덕, 카지미에시(Kazimierz) 지구의 시가지, 스트라돔(Stradom) 구역 이렇게 네 곳으로 구성됐다. 유럽 최대 규모의 시장 광장과 내부 장식의 화려한 역사적인 건물과 궁전, 교회는 13세기 상업 도시로서 명성을 떨쳤음을 상기시킨다. 이들 지역 중 1880년까지 유대인들이 살았던 카지미에시 지구는 고립돼 있다. 이곳에 살던 6만4000여 명 유대인의 아픈 기억은 모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강제 이송됐고 불과 6000여 명만 돌아왔다. 이외에도 이 지역에는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공부했던 야기엘로니안 대학이 있다. 왕궁 박물관, 고딕 양식의 성 벤체슬라스 대성당과 성모 승천 교회까지 다양한 유적이 즐비하다. 이러한 이유로 지역의 가치를 인정받아 1978년도에 일찌감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독일 나치 강제 수용소 및 집단 학살 수용소(1940~1945)는 독일 제3제국 최대 규모의 강제 수용소였다. 이곳에서 대다수가 유대인이었던 150만 명의 수용자가 체계적으로 굶주림과 고문을 당한 뒤 살해됐다. 그 외에도 수만 명에 달하는 폴란드과 수천 명의 집시와 떠돌이들이 이곳에서 대량 학살당했다. 이곳은 인간성에 반해 자행된 범죄행위의 부정할 수 없는 증거다. 끔찍한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했던 인간 정신을 기념하는 장소다. 이에 인류 역사의 어두운 한때를 기억하고 경고의 장으로 삼기 위해 1979년 세계문화유산지로 지정됐다.


바르샤바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Warsaw)는 1944년 8월에 있었던 바르샤바 봉기 당시 나치에 의해 85% 이상 파괴됐던 곳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바르샤바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5년 동안 대대적인 재건에 나서 옛 도시에 있었던 교회와 궁전과 시장 등을 복구했다. 이 재건은 전후에 다른 여러 유럽 국가의 표본이 돼 큰 영향을 끼쳤다. 동시에 재건 활동은 폴란드 국가 내부의 힘과 결속을 다지게 했고,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도시 전체의 통합적인 재건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는 세계 역사상 찾아보기 드문 사례가 됐다.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198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토룬 중세 마을(Medieval Town of Torun)은 13세기 중엽 독일 기사단이 프로이센을 정복하고 복음을 전도하기 위해 성채를 쌓으면서 만들어진 도시다. 건설 당시 도로 형태와 뛰어난 옛 건축물이 온전하게 보존됐고, 중세 시대 생활양식도 잘 보여주는 유서 깊은 도시다. 하나의 성채를 두고 두 도시가 결합하는 것은 보기 드문 형태다. 이 지역 도시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 독특한 공간 배치는 원형 그대로 남아 중세 유럽 도시 발달사에 귀중한 장소가 되고 있다.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역사적으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리투아니아, 유대인 등 이민족이 많이 거주한 다민족 국가였다. 이외에도 20세기 초까지 소규모 러시아인과 집시들이 거주하는 공동체가 존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통계를 보면 전 세계 유대인의 약 20%가 거주한 나라이기도 했다.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는 폴란드에서 유독 심하게 유대인을 탄압했다. 이에 따라 남겨진 가슴 아픈 유산지가 있다. 이외에도 이웃 유럽 나라와 같이 그들의 문화유산은 여러 요소가 혼재한 복합적인 형태로 남아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