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0 10:07 (목)
왜 풍수를 알아야 하는가.....이종천 실용풍수학회장
왜 풍수를 알아야 하는가.....이종천 실용풍수학회장
  • 김은정 발행인
  • 승인 2023.11.01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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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사업 풍수로 본다
이종천 실용풍수학회 회장

 

 

현대의 풍수지리는 일제강점기의 암흑기를 거쳐 1970년대 전후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1910~1987) 회장의 선산을 이장해 주고, 빌딩이나 공장 터를 점지해 주면서 

이름을 날린 하남 장용득(요산 풍수) 등 선사(先師)들이 개인적으로 ‘○○풍수학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후학들에게 

자신의 이론을 전수해 주던 것을 시작으로 많은 풍수학회가 탄생했다. 

리치에서 이종천 실용풍수학회장을 만나 직접 간산에 참여하여 풍수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이종천 실용풍수학회장은 “실용풍수학회는 당대 최고의 지사(地師)였던 하현(霞見) 김항배(金恒培) 선생(장용득과 그의 조상 묫자리를 점혈해 줌)이 1997년 5월 올바른 풍수지리의 보급을 위해 창립했다”며 “형기풍수(形氣風水) 이론과 명당 찾는 능력이 신안(神眼)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명당을 찾아주고 부당한 사례비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회장에 따르면 2000년대 초 박시익 영남대 교수(우리나라 1호 풍수박사)의 요청으로 대학에서 풍수지리를 강의한 뒤 초야에 묻혀 저술 활동과 제자들에게 명당 찾는 비법을 전수하다가 2015년 6월 타계하자 학회 이사회에서 자신을 전승자(傳承者)로 추천, 8년째 학회를 이끌고 있다.

다음은 이종천 실용풍수학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풍수지리(風水地理)란 무엇인가요?

A 사람들은 생기(生氣)가 충만한 터에서 태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어서는 길지(吉地: 明堂)에 묻혀 영면하기를 원하는데 이것을 가능하도록 연구하는 학문이 풍수지리학입니다. 풍수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로서 땅의 이치에 따라 사자(死者)인 영혼이 머무는 음택(陰宅: 묘지)과 생자(生子)가 거처하는 양택(陽宅: 집·사무실·점포 등)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연구하는 우리 고유의 자연과학인데, 바람(風)은 땅과 물의 모양에 따라 강약 등 성질이 정해지며 물(水)은 땅의 높낮이나 모양에 따라 성질이 정해지므로 풍수지리학은 땅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풍수지리학에서 땅은 겉모양뿐만 아니라 땅속에 있는 생기(生氣)나 수맥(水脈) 등의 위치와 산천의 유무정(有無情)도 판단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아 풍수 공부를 하는데 ‘구산 삼년(求山: 生氣가 융취된 산을 찾는 것) 재혈(裁穴: 혈 자리에 묘 쓰는 것) 10년’이라는 격언도 있지요.

Q 우리나라에 풍수지리가 도입된 것은 언제이며 어떻게 발전됐나요.

A 중국에서 풍수가 도입된 것은 신라 말기의 도선국사(827~898)가 당나라 유학 중 일행 선사에게 풍수지리를 전수받고 돌아와 월출산의 도갑사 등 많은 사찰을 세웠으며 후삼국 때 개성상인 왕륭에 명당 터에 집을 짓게 하고 장차 태어날 아들(왕건)이 삼한(후삼국)을 통일하면 송악산 기슭에 궁궐(만월대)을 조성하도록 풍수 처방을 해 준 사례와 같이 도선국사가 풍수지리를 도입했다는 것이 정설로 돼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9세기경 활동한 도선국사보다 7세기에 당나라에 유학(636~643)을 다녀온 자장율사(590~658)가 통도사, 월정사, 상원사, 광덕사, 마곡사 등 20여 곳의 대 명당 길지에 사찰을 창건하고 명당 혈심에 대웅전을 조성한 후 부처님을 모셨는데, 모두 풍수 이론에 합당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 풍수를 처음 도입한 분은 자장율사로 봅니다. 제가 1박 2일의 간 산지 중 이 곳(통도사)을 택한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 후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길 때 철저히 풍수지리 이론을 따랐고, 관상감을 두어 왕릉 조성하는 등 국가가 관리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Q 실용풍수학회는 매월 진행하는 간산(看山) 행사를 통해 특정인의 생가나 조상 묘를 보고 후손들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흥망성쇠(興亡盛衰)에 관해 연구하는 단체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간산지인 롯데 신격호 회장 일가(一家)의 생가나 조상 묘를 보고 당대에 엄청난 부를 이룬 비결이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가능하겠네요?

A 신 회장의 생가터와 조상 묘를 풍수적으로 분석해 보면 후손들의 발복(發福)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알려진 사실과 같이 롯데 창업자 신격호 회장은 울산시 울주군에서 태어나 20세에 도일한 후 여러 번의 사업 실패 끝에 롯데껌을 개발. 일본 시장을 석권한 후 가나 초콜릿 등 제과 사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두고, 경제개발이 진행 중인 1966년 귀국해 롯데알미늄과 롯데제과 등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정부의 권유로 반도 호텔과 소공동 일대의 토지를 매입한 후 롯데호텔, 롯데 백화점을 개장해 큰돈을 벌었고, 이후 80년대 당시 서울시 소유의 허허벌판 잠실에 있는 채비지를 헐값으로 사들여(당시 평당 60만 원) 롯데 백화점, 롯데호텔, 롯데 월드를 개장해 떼돈을 벌어 한때 세계 제4위의 부자로 평가받았습니다. 최근에는 123층, 555m 높이의 롯데타워를 완성해 운영하는 등 사업 범위를 넓혀 재계 서열 5위로 평가받는 것도 신 회장의 생가와 조상 묘가 재물에 이로운 명당에 있는 덕분입니다. 의도했었는지는 몰라도 롯데의 핵심 시설인 잠실 롯데타운도 모두 석촌호수를 안마당으로 두고 있습니다.

Q 신 회장이 당대 재벌이 된 원인을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A 위와 같이 신 회장 선영과 양택들이 재물에 이로운 물과 가까운 곳에 있어(풍수적 조건) 엄청난 재복(財福)을 받고 태어났고, 계속해서 재운(財運)을 공급받고 있다는 점이 첫 번째입니다. 본인의 노력과 사업을 보는 안목이 뛰어났다는 것이 두 번째이며 한·일 간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에 사업을 시작하고 확장한 시대적 배경이 세 번째입니다. 나머지 사주(四住)는 저의 영역이 아니어서 확신할 수 없지만, 이렇게 당대 재벌이 탄생하는 경우 큰 재운을 타고났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Q 롯데가(家)의 음양택 명당에 대한 풍수적인 평가는 어떠한가요?

A 우리가 처음 찾아간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마을은 1969년 댐이 생기면서 수몰돼 지금은 높은 곳에 있는 10여 호만 남아 있습니다. 이곳은 보은천과 둔기 천이 합수하던 곳으로서 합수하는 곳엔 재물에 이로운 터가 많습니다. 특히 둔기리 산 263-1에 있는 별장은 신 회장이 마을 수몰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을 불러 매년 잔치를 하던 곳이라고 하는데, 현재 담장이 높고 문이 잠겨있어 수몰 전 마을 지세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댐 건너편에 있는 신 회장 조상 묘는 주산이 개면하고 있고, 사방의 산이 병풍처럼 둘러쌓여 장풍에 유리하고, 댐 조성 후 맑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은 걸출한 인물과 거부(巨富)가 나올 지세입니다. 

특히 현 위치에 복원된 초가집은 안채가 명당 혈인데, 현무이자 주산인 마을 뒷산도 거부가 나온다는 토형(土型) 산이고, 강력한 생기맥(生氣脈)이 우출맥(右出脈)으로 입혈(入穴)했습니다. 사립문을 나서면 생가 앞 내 명당도 평탄하게 안정돼 있고 외명당인 저수지는 은행의 금고와 같지요. 참고로 신 회장 생가는 원래 별장 앞부분에 있었는데 수몰되기 전 현 위치로 이축 했다 하며 생기(生氣)는 물을 만나면 멈추는 것이므로 댐이 완공되고 물이 채워지자 현 위치에서 멈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신 회장을 재벌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묘는 유골 도굴 사건으로 유명한 부친(신진수)의 묘로 판단됩니다. 1974년 작고한 신진수의 묘는 울산광역시 언양읍 구수리 산 114에 있는데 풍수에서 속발복(速發福) 재물 명당으로 보는 득수형(得水形) 명당의 표준입니다. 신씨 묘는 산 중턱 높은 곳에서 태화강을 정면으로 내려다보며 수(水: 재물)를 오롯이 받아먹는 형국인데, 강물이 나를 향해 오면 살(殺)로 보기 때문에 묘는 살을 피해 높이 있어야 하지만, 높은 곳은 바람을 타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진수 묘는 용(龍) 호(虎)가 중중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터를 감싸서 장풍(藏風)에 문제가 없고, 끝자락이 교쇄하면서 기(氣)의 흩어짐을 막아주고 있는데, 이것들을 사람이 만들더라도 더할 나위 없을 만큼 풍수 이론과 완벽하게 부합합니다. 또 산은 정적(靜的)이기 때문에 음으로 보고, 물은 양으로 보는데 큰물이 산과 부딪히면 음양이 교구하며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이 기운이 재물과 관련 있습니다. 

다만 옥의 티인 것은 묘가 혈심에서 백호 쪽으로 1.5m 정도 벗어났기 때문에 생기를 덜 받게 되고, 좌향이 틀린 점은 크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만약 정혈에 안장했다면 좌향도 균형 잡힌 조산에 맞출 수 있었을 텐데 묘가 부인(김필순) 쪽으로 치우치게 조성됐습니다. 추론해 보면 롯데가 중국에 진출한 후 한(韓)·중(中) 간의 사드 분쟁 때문에 약 20억 달러의 손해를 보고 철수한 것은 부친 산소의 산역을 잘못한 점 때문이라고 봅니다.

Q 경주 최부자집 터와 부자 만드는 터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경주최씨가 처음 자리 잡은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집(충의당)은 여느 종갓집처럼 ‘ㅁ자’ 형태인데 안채 부엌에서 우측 첫 번째 방이 명당 혈심에 정확히 위치해 있어 들판 가운데에 있는 집터에 생기가 모이고, 혈판(穴板) 위에 집을 지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충의당은 이조천과 형산강이 합수하며 터를 감싸고 흐르는 지세이자 들판 멀리 산들이 터를 향해 개면하면서 응기(應氣: 天氣)를 보내주고 있는, 대 명당지세로서 최부자가 이 집에 온 후 불과 3대 만에 만석꾼이 된 이유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Q 최씨 집안은 어떻게 만석꾼이 되었나요?

A 조상의 명당 묘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1대 만석꾼 최진립 장군의 부친 최신보가 충의당 터에 이주한 후 수천석 부자이자 무남독녀인 평해황씨와 결혼해 처가 집 재산을 전부 물려받았고, 부인이 결혼 후 3년 뒤에 사망하자 다시 강씨 처녀와 재혼했는데 후처도 수천 석 하는 부자의 무남독녀이므로 전 재산을 물려받았으며 3대 최국선이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토를 늘리면서 만석꾼 부자가 되었답니다.

Q 경주시 교동에 있는 최부자의 옛집은 풍수적으로 어떠한가요?

A 경주 최부자가 내남면 이조리에서 살다가 1700년대 7대 최연경이 경주시 교동에 99간의 집을 짓고 이주했는데, 원래는 요석공주와 원효대사가 살면서 설총을 낳은 ‘요석궁 타’라고 하며 안주인이 거처하던 방이 명당 혈입니다. 생기맥은 맥로(脈路)가 계림 쪽에서 경주 향교를 거쳐 최부잣집 안채에서 회전하며 멈추는데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이주 당시 향교 측에서 극렬히 반대했음에도 터를 낮추는 등 어렵게 설득해 명당 혈심에 집을 짓고 안방을 배치했다는 풍수적 안목입니다.

Q 최부자는 12대 최준 선생이 전 재산을 대구대(영남대 전신)에 기증하면서 문을 닫았지만, 가진 자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가훈은 남아 있지요?

A 최 부자는 1대 최진립 장군이 임진왜란 때 출전해 큰 공을 세운 후 벼슬이 병조참판에 이르렀으나,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70세의 노구를 이끌고 용인전투에 참전, 장렬히 싸우다 전사했으며 초기부터 ‘6훈’ 이라는 가훈을 통해 후손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을 실천시켰는데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 ▲만석 이상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 동안 무명옷을 입도록 하라 등입니다.

Q 풍수가 우리 일상생활에 얼마나 중요한가요.

A 일반인들은 풍수에 관심이 없지만, 풍수는 우리들의 생활 속에 녹아 있어 풍수적으로 길지(吉地)에 살면 가족들의 건강도 좋고, 하는 일도 잘 되는 등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음양택이 흉지나 수맥 위에 있으면 가족들의 건강이 나빠지고, 하는 일도 잘 풀리지 않은데 본인들만 모르고 있거나 풍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Q 일반인들은 어떻게 풍수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또 풍수적으로 좋은 집은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 풍수지리를 이용한 집 찾기 팁이 있다면?

A 일반인들이 좋은 터(明堂)와 나쁜 터(凶黨)를 구분하긴 매우 어려워요. 다만 좋은 집을 찾으려면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수소문해서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가족들은 건강하며 가장의 사업이 잘돼 큰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 매물로 나온 집을 찾는 것이 좋은 방법이겠죠.

Q 풍수인테리어도 있다고 하는데, 집을 어떻게 꾸미는 것이 좋은가요?

A 풍수인테리어는 생각보다 범위가 넓어 간단히 설명하긴 어려워요.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가재도구나 비품을 많이 들여놓아 어지럽게 배치하지 말고 가급적 공간을 비우도록 권하기도 하는데, 저는 아파트나 주택에 수맥이 없는 집을 선호합니다. 수맥이 있다면 침대 위치를 바꿔 수맥을 피하거나 공부방의 책상 위치도 중요시해 수맥이 심하면 이사하라고 권해요. 

Q 유명 정치인이나 재벌가들은 풍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명문가에선 선대부터 풍수에 관심을 가지거나 경험과 사례를 통해 한 집안의 흥망성쇠(興亡盛衰)와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조상 묘나 집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풍수를 활용했는데, 근래에도 조상 묘를 잘 쓴 후 판검사나 고위 공직자로 출세하고, 한미하던 집안이 불같이 일어나서 거부가 되거나 반대로 집안이 망하는 경우를 보았기 때문에 정치인이나 재벌들이 암암리에 풍수지리를 신봉해 왔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 대학교수나 풍수 전문가 대다수가 자신들의 조상 묘도 길지(吉地)에 쓰지 못할 정도로 명당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70~80년대 풍수 대가로 알려진 지창룡은 육영수 여사(박 대통령), 이병철 회장 묘를 수맥지나 흉지에 점혈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경기도 연천에 있는 자신과 조상들 묘역도 명당과는 거리가 먼 터이며 김대중 대통령 부모 묘를 이장해 주고 이름을 날린 손석우도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 자락에 ’자미궁 터’의 명당을 찾았다며 거액을 요구하다가 임자가 없어 자신이 묻혔으나 제가 보기엔 ‘그냥 주어도 쓰지 말아야 할 터’입니다. 이 밖에 한나라당 총재였던 이○○씨(2회 이장), 역대 대통령 선거 중 가장 큰 표 차이로 낙선한 정○○, 국무총리를 지낸 충청도의 이○○, 자민련 총재를 지낸 김○○, 이○제, 한때 차기 대권후보 1위의 지지도를 자랑하던 김○○ 등 정치인들이 대권을 꿈꾸며 유명지관(?) 이라는 분들에게 산역을 의뢰했으나 산소 이장 후 대권은커녕 끝없이 추락한 사실은 풍수지리의 잘못이 아닌 명당 찾는 능력이 없는 ‘뻥 풍수’ 들의 혹세무민함에 당했기 때문으로서 명당은 돈과 권력이 있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적덕을 쌓았거나 좋은 지관을 만나야 가능합니다.

대담 : 김은정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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