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6:53 (금)
재계의 순위는 명당의 역량과 비례한다......칼럼-栢山 이종천의 실용풍수
재계의 순위는 명당의 역량과 비례한다......칼럼-栢山 이종천의 실용풍수
  • 칼럼-栢山 이종천의 실용풍수
  • 승인 2023.12.2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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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 이병철의 생가

 

   
풍수 고전 금낭경(錦囊經)에 ‘탈신공 개천명(奪神功 改天命)’이라는 말이 있는데 해석하면 ‘신의 공력을 빼앗아 천명(타고난 운명)을 바꾼다’ 는 뜻이다. 위 풍수 원전은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의 공력을 빼앗을 방법으로 명당 혈에 조상의 시신을 묻으면 천명과 관계없이 발복 한다는 형기풍수 이론을 후세에 전했다. 1900년 전에 인간이 신(神)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합리적 방법을 찾았다니 놀랍지 않는가? 이렇듯 풍수지리는 기(氣)와 음양오행이 결합 된 학문으로써 기의 향방(向方)과 결혈지(結穴地)를 찾아 조상을 모시면 탈신공개천명 한다는 것, 이것이 풍수다! 

본문/

◇풍수지리 발전과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한 변명
  
필자는 지난 호에서 “동네 부자는 노력만으로도 가능하지만, 큰 부자(재벌)는 노력이나 능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음·양택 명당의 발복이 있어야 가능하며 재계(財界)의 순위나 기업의 사세(社勢)에 차이가 나는 것은 경영자의 노력과 능력 40%, 풍수(명당) 30%····.”라는 취지로 서술했으나 지면 관계상 상술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자칫 척박한 사회 환경 속에서 기업을 일구고 회사와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던 기업가들의 공을 풍수라는 이름을 빌려 왜곡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명당의 역량과 재계 순위가 비례한다는 것은 진리이고, 솥 바위 전설의 주인공 중 삼성이 재계 서열 1위가 됐다는 사실은 풍수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사실을 밝히기 위해 ‘진주 천리 길’을 세 번 답사 했다.

◇ 재계 순위는 명당의 역량이 좌우하는가?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이 시장경제와 자유대한민국의 정부를 수립한 한 후 사업가들은 능력껏 기업활동을 해 남강 유역 출신의 기업가들이 설립한 회사들의 재계 순위가 삼성(재계 1위), LG(4위), GS(8위), 효성(한때 7위) 등 상위권을 차지했었는데 60여 년간 수많은 재벌이 명멸했지만, 이런 기업들은 재계 순위는 자식들 간 상속 등으로 기업이 분할된 효성을 제외하면 변동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개발 초기부터 정해진 기업 순위가 지금도 바뀌지 않고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사실에 대해 경제적 이론만으론 설명이 쉽지 않겠지만, 우리 고유의 자연과학이자 통계학인 풍수지리 이론으로 분석하면 그 원인과 결과를 알 수 있다. 솥 바위 전설에 관련된 기업들의 음·양택 명당을 분석해 본다.

◇ 인걸지령(人傑地靈)·명가배출(名家輩出)의 명당

필자는 전 회에서 풍수의 핵심은 용(龍), 혈(穴), 사(沙), 수(水)인데 용과 혈은 인물을 주관해 이것이 좋으면 걸출한 인물이 태어나고, 사와 수는 재물을 주관하기 때문에 수가 좋은 곳에선 부자가 탄생한다고 했는데 호암 증조부 묘를 설명하려니 재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인걸은 지령에서 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연일까? 이홍석의 효심에 감복한 산신령이 대 명당으로 인도했을까? 공교롭게도 이재봉 묘는 인걸지령의 대 명당 정혈에 안장돼 있고, 증손자가 걸출한 인재로 태어나 국가와 국민을 먹여 살리는 거인이 됐다.

◇ 부혈(富穴) 명당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물(水) 좋은 명당을 찾아야 한다. 물은 강, 저수지, 냇물처럼 실재하는 물도 있고, 비가 올 때를 가정해 지세가 낮고 빗물이 모여드는 곳을 물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평전수(平田水)가 나를 향해 들어오는 형국의 창판수(倉板水)나 물을 받아먹는 형국은 득수 형(得水形) 명당이라 하여 부(富)에 이로운 속 발복지며 서울과 진주시 등을 꼽는다. 특히 풍수에서 ‘지무십전(地無十全)’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무리 큰 명당도 열 가지 모두가 완전한 터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호암의 증조부 묘와 생가터를 분석해 보면 마치 삼성그룹을 보는 것처럼 부족한 점이 보이지 않는다.

◇ 산속에 있으나 물이 좋은 명당 이재봉 묘

의령군 유곡면 마두산 7부 능선에 있는 이재봉 묘는 ‘이병철을 탄생시킨 명당 묘’라고 회자해 풍수인 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수(水)가 좋아야 부(富)가 있다는 풍수 격언에 반해 이곳 묘역에선 작은 웅덩이나 시냇물조차 보이지 않아, 산상 불수론(山上不水論)이라는 말과 어울린다. 해석하면 높은 산에서 명당을 찾을 때 물은 논하지 말고 장풍(藏風 : 바람이 잠잠함)을 고려하라는 뜻이지만, 혈장(묘역)에서 물이 보이지는 않더라도 원진수가 빠져나가는 형태를 중요시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재봉 묘는 혈장에서 보이는 물은 없으면서 재물에 이로운 대 명당으로 평가되는 것은 명당수가 흘러서 유곡천과 합수하고, 유곡천이 낙동강과 합수하는 과정, 즉 물이 나가는 형태가 대 명당의 표본이고, 호암의 생가는 위와 반대로 남강물이 마을로 들어오는 형태가 대 명당 형국이니 풍수는 헷갈리고 어렵다.

◇ 이재봉 묘가 다른 재벌의 조상 묘보다 역량이 큰 이유
 
이재봉 묘가 다른 재벌들 조상 묘보다 역량이 큰 이유는 조종산의 근원이 멀고 내룡맥(來龍脈)의 용세(龍勢)가 강하고, 용맥 따라 흐르는 생기(生氣) 맥(脈)도 힘이 있어 걸출한 인재의 탄생을 예고한다(人傑地靈). 즉, 이재봉 묘의 발조산(發祖山)은 백두대간이 소백산, 추풍령을 거쳐 함양의 남덕유산(1507m)에서 오른쪽으로는 백운산(1279m), 장안산(1237m)을 지나 지리산으로 행룡(行龍)하고, 왼쪽으로는 진양기맥(晉陽岐脈)으로 분맥(分脈)하기 전의 남덕유산으로서 근원이 멀고 용세는 1000m가 넘는 산들이 많은 강룡(强龍)으로 이어진다. 진양기맥은 거창의 금원산(1353m), 기백산(1331m)을 지나 합천의 황매산(1108m), 의령의 한우산(835m), 자굴산(897m)을 지나 마두산으로 오고, 마두산에서 회룡고조형(回龍高祖形)으로 작국 하니 곧 이재봉 묘다. 이후 진양기맥은 진주 비봉산으로 행룡하다가 진양호 인근에서 대장정을 마친다. 이처럼 호암처럼 걸출한 인걸이 태어난 것은 증조부 묘가 진양기맥의 정기를 받고 주혈에서 결혈(結穴)한 대 명당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풍수에 일가견이 있던 조부 이홍석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손자인 호암에게 “너는 앞으로 조선 최고의 부자가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을 것이다. 이처럼 호암은 진양기맥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태생부터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호암이 성장하고 사업을 하면서 현실과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인걸이자 왜 삼성이 최고인가를 보여준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는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일본에서 지내며 휴식 겸 사업구상을 했는데 당시 TV에서 “미래의 먹거리는 반도체가 될 것이다”라는 과학자와의 대담을 듣고 즉시 귀국해 당시에는 듣도 보도 못한 반도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기흥에 반도체 공장과 연구소부지를 매입하고 삼성전자를 통해 사업을 진행한 것이 오늘날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이 된 것이라 한다.

◇ 수(水)의 득(得)과 파(波).
 
예컨대 똑같이 한강 조망권에 있는 아파트라도 물이 들어오는 것이 보이면 사업이 번창해 재물이 쌓이고, 물이 나가는 것이 보이는 아파트는 사업이 부진하고 재물이 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재봉 묘의 원진수(묘 주위에서 흐르는 물과 빗물)가 터를 안고 흐르더니 음천 마을 앞에서 유곡천과 합수해 선반 천과 만난 후 상판교 밑을 지나 낙동강과 합수하는 과정은 물은 들어오는 것 못지않게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왜 이재봉 묘가 재물에 이로운 대 명당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유곡천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과정
  
유곡천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과정을 보면 의령군 궁류면과 유곡면에서 흐르는 수(水)가 모여서 유곡천을 만들고, 유곡천이 이재봉 묘역의 명당수와 합수한 후 다시 신반천, 상판교 밑을 지나 낙동강과 합수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뱀처럼 꾸불꾸불 흐르는 것은 풍수에서 최고로 치는 흐름이다. 상술하면 마두산이 신촌교 앞에서 유곡천을 역수해 방향을 크게 바꾼 후 다시 음지마을 앞에서 칠곡리 앞까지 U자, W자 모양으로 꾸불꾸불 흐르다가 옥동마을 앞에서 역수 하는 물길의 방향을 크게 바꾸니 칠곡리를 U자 형태로 환포하는 형국이다. 다시 유곡면 사무소와 덕천리까지 S자로 흐른 후 세간리에서 입산리까지 90도로 꺾어 L자를 만들며 손오리를 거쳐 낙동강과 합수하는 형국은 필자의 부족한 필설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명당 지세다.
 
이처럼 강물이 직출하지 못하고 꾸불꾸불 흐르는 이유는 하수사(下手沙)와 수구사(水口砂)가 수를 가로막아 물길을 돌리기 때문인데 풍수에서 물을 거슬리거나(逆水), 관쇄(關鎖) 하는 안쪽에 반드시 재물에 이로운 대 명당이 존재한다고 해석한다. 결론적으로 이재봉 묘역의 원진수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흐르는 형국이 재벌의 탄생을 예고하며 그 발복 기간은 인간이 계량할 수 없을 만큼 장구할 것이고, 이재봉 묘가 왜 재물에 이로운 대 명당인지를 입증하고 있다.

◇ 호암의 생가 
 
전 회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부(富)에 이로운 명당은 물이 들어오고(得水) 나가는(派口) 형태에 따라 길흉화복(吉凶禍福)에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호암의 증조부 묘와 생가 마을은 물의 들고 나감이 상반된 지세로서 한편으로는 헷갈리고, 한편으로는 신비스럽다. 즉, 호암의 증조부 묘는 물이 나가는 형국이 꾸불꾸불 느려서 대 명당을 작국(作局)하는 형세라면 생가 마을은 물(재물)이 들어오는 형세가 득수 형 명당의 표본이니 정반대의 개념으로서 형기풍수(形氣風水) 이론이 아니면 객관적 설명이 어렵다. 참고로 안동 하회마을처럼 물길이 터를 환포하며 흐르는 형태를 궁수형이라 하고, 물길이 배(背) 하면 반 궁수형이라 하여 흉격으로 보기 때문에 하수(下手)들의 눈에는 득수 형 명당도 반 궁수형이라며 흉격으로 보겠지만 형세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이 다르다.

호암이 태어나서 17세까지 살았던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723의 생가는 풍수지리에 능했던 조부 이홍석이 1851년 직접 설계해서 지었다고 하는데 대지는 약 600평의 남서향의 터를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남향집으로 건축하지 않고, 배산임수의 원칙을 적용해 남서향 집을 지었다. 박시익 박사의 양택 이론을 본다. “남향 건물은 햇볕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어서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배치 방법이고, 햇볕이 집안 깊은 곳까지 들어와 건강하고 따뜻한 집을 만들 수 있지만, 풍수지리로 볼 때 남향 배치보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배치가 더 좋다. 배산임수 배치란 문자 그대로 산을 등지고 물이 있는 쪽을 향해 건물을 배치하는 방법이다.”

호암의 조부 이홍석은 중교리의 명당 터에 양택 삼요(배산 임수·전저 후고·전착 후관)의 원칙을 적용해 안채를 지었으며 몇 차례의 중·개축해 현재의 모습이 됐다고 한다. 건물 배치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되어 있는데, 안채가 명당 혈심이다.

◇ 생가터는 득수 형 명당
 
호암의 생가터의 생기맥은 마두산과 숫골산(291m)에서 온다. 특히 중교리는 풍수에서 양(陽)으로 해석하는 남강물이 마을의 백호격이자 음(陰)인 삼봉산과 안산 격인 성산(98.9m)과 부딪히고 두 산이 역수하면서 물길을 U자형으로 크게 돌려서 천천히 흘러 나가는데 이처럼 역수하는 곳에 음양(陰陽)이 교합(交合)해 부(富)에 이로운 큰 기운이 발생한다. 이런 곳을 득수 형(得水 形) 명당이라 한다.

◇ 명당의 형태

일반적으로 명당에는 크게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주위의 용(龍)과 사(沙)가 터를 겹겹이 감싸 주며 기(氣)를 보호해 주는 형국의 장풍(藏風)형 명당과 물을 크게 얻는다는 뜻의 득수 형 명당이 있다. 또 주위에 강(시냇물)이 있으면 물의 흐름에 따라 궁수형(弓手形)과 반(反) 궁수형의 터로 구분한다. 이럴 때 궁수 형(압구정동·이촌동)을 좋은 터로 반 궁수형 터를 나쁜 터로 본다. 그런데 풍수에서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득수 형 명당과 반 궁수 형 명당을 구분하는 방법인데 풍수의 밝은 눈으로 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즉, 호암의 생가 마을인 정곡면 중교리는 외견상으로만 보면 남강물이 치고 나가는 형국의 반 궁수형 지세로 보이고, 반대편의 함안군 법수면 사정리 백산리 일대는 강물이 터를 안고 도는 궁수형 명당 터로 보인다. 그러나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는 남강물이 매두봉 앞을 지나 삼봉산(201m) 점봉 터널 아래에서 죽전 천과 합수하는 과정에서 90도로 회전하고 다시 마을 앞에 오면 성산(98.9m)이 크게 역수 하고 있다. 정곡초등학교 앞에 있는 동산(59.5m)은 솥뚜껑을 엎어놓은 듯한 금성형(金星形)의 부봉사(노적봉)로서 이런 지세에서는 거부(巨富)가 태어난다고 한다.
 
마을 앞을 보면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은 죽전 천이, 오른쪽은 월곡천이 남강과 합수를 하는 과정에서 마을의 좋은 기운을 보호하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마을 앞의 넓은 들판은 주민들을 배부르게 먹여 살렸을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마을 앞에서 U자형으로 굽이쳐 흘러 나가는 강물이 서촌리 앞에서 함안천과 합수하고, ‘처녀 뱃사공 노래비’ 근처에 있는 악양루의 깎아지른 절벽이 남강물을 역수해 V자 형태로 꺾어 돌리며 중교리 마을 앞에서 내려오는 강물의 유속을 줄인다. 낙동강 노래비의 뒤에 있는 언덕’에서 보면 과연 이 강물이 멈추었는지 흐르는지 분간되지 아니하여 호암이 탄생한 중교리 마을은 바람도 잔잔하다. 기압이 높아 생기가 충만한 명당 지세가 됐는데 이런 지세에서는 탄생한 재벌의 발복 기간은 무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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