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22:09 (토)
화가 김용관 인간영혼의 환희를 노래하는 작가
화가 김용관 인간영혼의 환희를 노래하는 작가
  • 월간리치
  • 승인 2012.05.07 12:52
  • 호수 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용관 화가. 그의 작품은 설명적이거나 불필요한 요소들이 하나하나 걷힌 정리된 심호흡의 경지에 든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화면공간 전체가 조용히 숨을 쉬는 가운데 새로운 조형의 울림을 들려주고 있다. 이 같은 작품세계는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먼저 각광을 받았다. 조선화랑 작가로서 여러 차례 상해, 북경, 서울아트페어에 참여했는데 100호 이상의 대작들이 현지 콜렉터들에게 팔려나가는 등 호평을 받은 것이다. 리치에선 국내 1급화랑 조선화랑 소속작가 김용관의 작품세계를 들어가 봤다.

까다롭고 섬세한 작업

그의 작품을 보면 색을 머금은 물감들이 여러 종류의 용매와 함께 섞여 화면 위에서 요동을 치거나 용암처럼 분출하는 형국을 띄다가 문득 고정되어 있는 듯하다. 그의 색은 서로가 소리를 질러대며 어디론가 쏠려갔다가 흩어지고 폭발하고 있다. 그의 이 같은 작품은 매우 집요하고 계산적인 작업에서 이뤄진다. 곱게 빻은 조개껍질 등의 용매를 물감과 섞어서 질량, 시간차를 두고 흘리는 등 비교적 까다롭고 섬세한 작업을 한다.
단단한 지지체를 마련하기 위해 수차례의 바탕칠을 거치게 하고 그 후에 비로소 작
업에 들어간다. 곱게 빻은 조개껍질 등을 섞어 안료로 사용하되 이질적인 재료(천기
석)와 서로 부딪히고 밀어내고 섞여가는 작용으로부터 교묘한 표정을 얻어낸다.
그 행위에 따라 색을 머금은 물감들이 여러 종류로 섞여 요동을 치면서 용암처럼 분출하는 형국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지극히 조용한 침잠의 세계를 연출한다. 이런 과정에서 용암처럼 이글거리고 파도가 넘실거리고 하늘과 땅이 열리는 스펙터클을 얻게 된다.
김용관의 그림은 다분히 문학적이고 서사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우주의 환상적
풍경과 카오스적인 공간, 블랙홀로 연상되는 태양과 빛의 중심 등 그런 서사적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 마치 광활한 우주 공간 속을 떠다니는 가스 구름이나 성운(星雲)의 움직임처럼 그의 그림 속에는 부정형의 움직임을 보이고 색이 융합을 통해 다양한 형태와 색채의 울림 등 드라마틱한 작품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자기가 이해하고 본 천상의 세계를 열어 보이는 색이거나 우주의 탄생과 생명체의 순환과 소멸이란 서사를 설명하기 위한 그림을 그린다.
김용관은 색을 보거나 이해하기 보다는 색의 소리를 듣는 자이다. 그는 색의소리를 불러 모아 자리에 앉혔다. 생성과 소멸, 순환과 왕복을 보여준 색채의 움직임이고 색이란 생명체의 환희이다.

“숙련된 노동은 영감을 준다”
            “영감은 숙련된 노동을 요한다”

김용관은‘ 人間史-生成’을 오랫동안 테마로 삼았다. 시리즈로 엮을 정도다.
이 시리즈들은 천지창조 또는 생명잉태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때로는 카오스적이고 때로는 코스모스적인 세계가 펼쳐지기도 한다. 우주적인 생명의 파노라마가 색채의 울림을 통해 확산되곤 한다.
실제 그의 작품에 빛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는 희고 노란 점이 빠짐없이 들어가는데 캄캄한 곳을 헤매고 있는 인간을 찾아온 ‘보이지 않는 손’ 창조주의 사랑과 생명을 빗대어 나타내고 있다.
김용관의 작업실은 대나무숲으로 유명한 전남 담양에 있다. 그에 작업양이 워낙 많다보니 작업실은 모두 세 곳이다. 틈틈이 시간이 내어 이용하는 곳, 지난 작품을 보관하는 곳, 대작을 제작하는 곳 등이 그곳이다.
실제 그의 작품수장고에는 수많은 작업들이 겹겹이 포개어 보관되고 있다. 그것을 일일이 꺼내서 보려면 며칠은 걸린다니 정말 많은 작업량이다.
김용관은 이 작업실에서 영혼이 충만한 기운으로 창작에 몰두한다. 사방으로 넘실거리는 물감의 파편들, 흑암에서 밝음의 세계로 빠져나오는 섬광의 자락, 혼돈과 질서의 대비, 생명의 충만함, 어떤 작품들은 세포 입자들이 얽혀 촘촘한 그물을 이루고 있는 양상을 펼친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들은 대담한 형태가 화면을 우악스럽게 장악하고 있는가 하면 우주가 폭발하는 장관을 그려낸 다이너미즘이 넘친다. 경이와 신비에 둘러싸인 판타스틱하고 조금은 몽환적인 그림이다.
그의 화면을 응시하고 있으면 마치 화면 공간 전체가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화면 공간 속에서 흰색 점이나 푸른색 점들이 탄생하고 빛의 바람이 요동치며 느닷없이 수수께끼의 색면이 폭발한다. 탄생과 성장과 모험과 파괴와 소멸의 드라마가 그 속에서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어찌 보면 추상화같기도 하고 풍경화같기도 하다. 또 두 요소가 적당히 혼합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시공을 초월한 세계를 넌지시 투영한다는 면에서는 영적인 그림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의 그림은 추상적 요소와 풍경적 요소, 그리고 영적인 요소들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의 그림을 규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의 작품은 현대미술의 지나친 물질주의, 표피적인 효과 위주, 공허한 개념 나열, 맹목적인 반항과 충동고무에서 떠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순화되고 정제된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이 놓치고 있는 것을 극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화가가 아니고 자신의 구원만이 아닌 모든 인간구원의 길을 찾아 열어가고 있는 구도자요 전도자며 이미 존재의 근원에 맞닿아있는 듯이 보이고 스스로의 탈바꿈과 영혼의 환골탈퇴를 통해서 새 인간사를 열어가고 있다”는 김영호 인하대 철학교수의 분석에 공감이 되는 것도 바로 그의 작품세계에 기인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