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6:53 (금)
서경자 화가
서경자 화가
  • 월간리치
  • 승인 2013.12.10 08:40
  • 호수 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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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세상을 치유하는 근본적 물음

푸른 이상향의 이미지, "THE BLUE. 서경자 화가의 작품을 대표한 주제다. 작가는 정신적 문화적으로 난기류가 흐르는 혼탁한 세상에 여러가지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꾸미지 않는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 고 말한다. THE BLUE로 표현되는 ‘명상’이 화면 밖의 세상으로 나왔다. 깊은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기의 흐름을 표현한 서경자 화가. 리치에선 그의 작품세계로 한발 들어갔다.


서경자의 작품에 대해 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는 “청아한 창포냄새가 산들바람을 타고 풍겨오듯이 향긋하다”고 말한다.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의미의 지평선이 한결 희미해진 무미건조한 세계에서 어쩌면 이렇게 곱고 아리따운 작품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는 것. 야생에서 각종 위험에 시달리다가 안전지대에 무사히 귀환한 것 같은 느낌, 밤하늘의 별빛들이 눈빛을 주고받듯이 그림 속에는 따듯한 정감이 오간다. 
세안 뒤의 개운함

울창한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대나무 잎이 나부끼고, 야생초들이 경쾌히 춤을 추며, 밤하늘을 비추는 달빛이 나무를 다독이는 모습, 바다 위로 서정의 기운이 차오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가 얼마나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인지 화면에 진동하는 정취를 경험하며 느낄 수 있다.
서 교수는 “그의 그림을 보는 순간 우리는 숲속에 들어가기 직전, 뭔가 예기치 못한 것과 조우할 것 같은 설렘의 착각에 빠진다”며 “숲의 향기와 함께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피곤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줄 것만 같다”고 표현했다. 작가는 순간적으로 시선을 모을 수 있는 시각적 효과에 연연하지도 않으며 과대한 포장을 썩 좋아하지도 않는다. 대신 거추장스럽게 꾸미지 않은 정갈한 작업이다. 화면 정황도 다소곳할 뿐만 아니라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막 세안을 한 뒤의 개운함이 느껴진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솔직담백하게 추스려낸 탓이다.
서경자의 회화가 갖는 의미는 가장 기본적이며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아주 사소하거나 별 의미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그에게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며,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가 던지는 물음은 캔버스라는 제약을 넘어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다.
안의 氣를 밖으로 소통하듯

2008년 베이징 소재의 ‘9 아트 스페이스’ 개인전을 계기로 그의 작품은 우선 구도면에서 시선을 한 군데로 모은다.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그라데이션으로 처리된 동그라미로 시선이 집중되는데 그것은 주변의 이미지로 분산되는 것을 최소화하고 무언의 힘으로서 이미지들을 묶어주고 화면에 통일감을 주는 유효한 장치가 되고 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바탕색조는 동일한 톤으로 어울려 있을 뿐만 아니라 바탕으로의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사실 화면을 부유하는 물무늬, 바람무늬는 바탕의 정교한 처리없이는 생각키 어렵다. 이것은 그의 독특한 화면형성수법과 관련되어 있다. 즉 농밀한 바탕은 물감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젯소의 바탕작업에 의해 얻어진 것으로 작가는 바탕의 정지작업을 위해 무려 10회에서 20회 가까이 밑칠을 한다. 특히나 그의 작업에서 바탕이 중시되는 것은 흰색을 남기는 그의 작업특성과 직결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발광체에 가까운 형형한 색이 남아 있다. 이것은 우연적으로 남긴 것이 아니라 주도면밀하게 의도되고 계획된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 흰색은 작품이 다 될 무렵 화룡정점 식으로 하이라이트를 찍지만 그의 경우는 정반대다. 최초의 바탕색이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바탕색이 그에게는 조형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 가장 핵심적이기 때문이다.
이점을 파악하려면 우리는 잠시 그의 작품주제를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작품제목은 ‘명상’이다. 서경자 화가 자신도 “여러가지를 추구하는 가치관 중에 본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식은 ‘명상’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서경자 화가의 THE BLUE는 의도적이지 않은 여유로움, 분수에 맞는 평화롭고 시원함, 환희에 찬 즐거움, 과장되지 않고 정화된 느낌, 가슴에 맺힌 잡념과 우울함 등을 깨끗이 씻어 버릴 수 있는 장치다. THE BLUE로 표현되는 ‘명상’은 화면에서 눈처럼 새하얗게 두드러진 꽃잎, 진한 blue 안에서 아련하게 보이는 나뭇잎과 잔가지들, 화면에서 퍼져나가는 ‘원’, 그 속에서 보여지는 파편들이  화면 밖의 세상으로 나가기 시작한 것. 마치 안의 氣를 밖으로 소통하듯.
명상이라고 하면 마음을 정화하는 수련을 연상시키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심오한 것이다. 성 빅토르의 리처드(Richard of St. Victor)의 말처럼 “자아에 대해 아는 것이 영적인 삶의 시작”이며, 명상은 자아부터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그것을 딛고 올라서는 사다리와 견줄 수 있다.
서 교수는 “명상은 일과 효율에 쫓기는 현대인에게 쉼과 여유를 제공한다”며 “아마 서경자 작가가 ‘명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를 작품화하는 것도 바로 현실에만 전전긍긍한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명상을 작가는 어떻게 전달하고 있을까? 그의 작품에는 사색을 나타내거나 어떤 궁극의 지점을 표현하기 위해 바탕색이 자주 등장한다. 그것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재 자체이거나 실재로 나아가는 매개체가 된다. 작품에서의 흰빛은 둥그런 색띠 혹은 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밝은 색에서 점차 거리가 멀수록 어두워지는 단계를 띠고 있다. 앞에서 말한 젯소를 스무 여회나 덮어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즉 밝음을 더욱 밝게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별도의 처리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중복 처리된 흰색인 셈이다.
서경자 화가는 “기의 흐름이 바깥으로 흘러나가 퍼지는 것”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기의 흐름’이란 ‘생명의 기류’로 바꾸어 풀이할 수도 있다. 동그라미를 감싸고 있는 듯한 가지와 가지에 달린 잎사귀, 그리고 대나무나 강물 등을 배치함으로써 생명이 넘쳐나는 광경을 연상시킨다.
서경자 화가는 간결한 조형을 통해 시적 감흥을 자아낸다. 물결 위에 초롱거리는 밝은 햇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나무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 같기도 하다. 서 교수는 “공짜로 얻어진 것 같은 여유가 놀랍다. 의도적으로 무엇인가를 나타내기보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까닭모를 여유와 유유자적에 사로잡히는 것으로도 충분한 것같은 도취감에 흠뻑 젖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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