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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총재 임기 마친 김중수 위기 이은 저성장 풍운을 걷다
한은 총재 임기 마친 김중수 위기 이은 저성장 풍운을 걷다
  • 월간리치
  • 승인 2014.04.09 08:44
  • 호수 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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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던 2010년 4월 통화당국 수장으로 전격 취임한 김중수 총재가 3월 말 임기를 마쳤다. 위기 극복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국내적으로는 전인미답의 저금리 저성장 경제를 맞았고 유럽과 미국 등 대외 불안요인은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기준금리 수준을 결정하는 매 순간이 쉽지 않았지만 한국경제 위상이 높아져 후회는 없다고 했다.


“한국은행 총재 김중수. 청년의 열정으로 국민경제를 위해 헌신한 시간을 기억합니다. 한국은행을 국제금융의 리더로 키우려 쏟은 땀과 눈물도 잊지 않겠습니다. 어디에 계시든 현인의 지혜로 한국경제의 길을 밝히시리라 믿습니다.”
떠나는 김중수 총재에게 출입기자단이 전해 준 감사패에 새겨 넣은 글귀다.
김 총재는 이 자리에서 “제 입장에서는 한국은행을 그만두는 것뿐 아니라 제 공직생활, 그야말로 학교에 있었으면 퇴임을 하는 그런 영어로 말하면 retire하는 그런 느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제가 모든 그룹생활이 끝나는구나, 그래서 그야말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그런 것이 마음에 상당히 크게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공식 석상에서 ‘A는 B다’라고 설명을 한 뒤 꼭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덧붙이는 화법을 즐긴다.)
갈아 낄 타이어 결정 아직 못해

김 총재의 가까운 벗 들 중 학교에 있었던 사람들은 1∼2년 전에 다 은퇴를 했다고 한다. 벗들이 은퇴를 할 때 'retirement', 퇴직한다는 것의 의미를 두고 대화를 나눴던 입장에서 이제 자기 문제로 마주 대한 그는 위트를 발휘했다.
영어는 원래 그런 표현이 없지만 나중에 번역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re-tire, 우리가 일생동안 tire를 끼고 사는데 “retire라는 것은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tire를 갈아 끼는 것이지 사회로부터 격리돼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던 것이 “막상 제가 닥치고 나니까 무슨 tire를 갈아야 되는지, 내가 과연 가는 게 좋은지 아니면 이게 그냥 종착역이니까 종착역에 왔다고 생각을 하고 다시 버스를 갈아탈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게 좋은 건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많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통화정책 방향을 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지막으로 주재한 뒤 김 총재는 지난 4년을 두고 “질풍노도의 시간이었다”고 되돌아 본 적이 있다.
그는 “그게 아마 제 속마음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모두 만족하는 首長 한 적 없다

그 역시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인지라 31일 퇴임식 에서는 만감이 교차했던 것인지. 3월 상반월 금통위 때만 해도 부정적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반론조의 주장을 당당히 폈지만 조금 다른 톤의 고백을 내놨다. .
“모든 사람이 다 만족하는 그러한 조직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저는 한 번도 그런 시도를 해본 적은 없었다”고. 또한 “미국 가기 전에 다니던 직장 2, 3개를 빼고도 열댓 번째 다니는 직장인데 한 번도 그런 문제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나름대로 목적을 정해놓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최선을 다했고, 그렇기 때문에 좌고우면(左顧右眄)하고 생활을 해 오지는 않았다"며 철저히 신념에 따라 살았던 생의 자세를 묘사했다.


한국 경제 한 단계 성장해 행복

4년 재임간 성과와 관련해 그는 ‘모두 다 중앙은행의 덕분은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매달아 둔 채 “전반적으로 거시경제상황을 본다고 하면 (취임하던 4년 전)그때 보다는 훨씬 좋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이럴 때 자리를 물러나게 된 것은 저로써는 큰 행운”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또한 국제 무대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위상이 좋아진 것에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우선은 국제금융분야에서 (위상을)높였다 하는 평가에 대해 “과찬의 말씀”이라면서도 “실제로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저로서는 매우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물론 자화자찬 성격의 발언이 아니었다.
4년 전엔 우리 경제가 항상 이머징마켓 이코노믹스의 하나였고 우리 얘기할 때 중국, 브라질, 인도, 신흥경제권역을 얘기하곤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선진경제권하고 신흥경제권 할 때 항상 거기에 끼었었는데 지금은 적어도 국제시장에서 우리를 신흥경제권에 묶기보다는 신흥경제권과 선진국 경제권의 중간에 있는 그런 형태로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은 큰 발전”이라고 논평했다,
국제적 많은 나라들이 부침을 겪는 과정에서 우리 나라처럼 크레딧 레이팅과 소버린 레이팅이 다 올라 간 나라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자랑스러워 할 자격이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은법 개정, 어려웠지만 보람

가장 어려웠던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는 “한국은행법을 개정할 때 모든 의사결정에서 어려웠고 또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되돌아 본다.
금융안정기능 강화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거시건전성분석국이 생기고 금융안정보고서가 법정보고서가 됐으며 보고서의 수준이 국제적 인정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라고 자부했다.
항상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비결로는 많은 실수와, 좋게 말하면 내공을 통해서 나왔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것은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로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지 이것은 극복 못하겠다 이렇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는 김 총재.
통화당국 수장에게 가장 중차대한 기준금리 결정을 놓고 ‘실기했다’는 평가가 다시 들춰져도 끄덕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에선 양적완화 축소 시기가 9월이 맞냐 12월이 맞냐 따지지 않는다고 응수한다. "우리(나라)는 매번 3월이냐 4월이냐 5월이냐, 마치 모든 사람이 채권투자자처럼 해동한다"고 질타했다.
퇴임 만찬에서도 3월 상반월 금통위 때와 같이 기자들에게 “남보다 말을 많이 해서 미안하다”면서도 “정보를 많이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고백을 했다. 역사 기록에 어떻게 남게 되건 소신껏 후회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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