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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없는 응집 무구한 변환
쉼없는 응집 무구한 변환
  • 월간리치
  • 승인 2015.08.08 20:21
  • 호수 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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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시작도 알기 어려운 생의 여로에서 체험과 상상,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숱한 사연들이 낱낱의 평면들로 펼쳐진다. 어머니의 어머니, 만물의 근원과 삶의 절대가치는 겹치고 모임으로서 총체성을 확보할 수 있을 터. 쉼없이 이어 왔던 남영희 작가의 평면 짓기가 새로운 변모를 예지한다.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자연속에 그들의 작업상을 찾아봤다.

꼭 필요한 것 만드는 일처럼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러셨듯이 생활하다가 필요한 것을 만들 듯, 예술적 영감이 흘러나오면 나오는대로 표현하는 데 몰두했다는 남영희 작가.
물론 아이들 입히려 정성들여 설빔 짓는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종이의 평면위에 그 만의 예술의 신성한 가치를 구현해 왔다는 점이 이채롭다.
“전쟁 중 허물어져 가는 흙 담에 덮여져 있던 횃대보(벽에 걸어 논 옷들을 가리는 커다란 보자기 천)처럼 그 시대를 살다간 조그만 인간의 단상이 얼마나 진실한지.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그저 지나간 흔적 일뿐이라고 할지언정 그 시대의 진실하고 소박했던 민초들의 말없음을 지나칠 수가 없다.”
번들거리지 않는 우리 종이우리 종이를 택한 이유는 이렇다.
“집안 구석구석 한지로 발라진 문창호. 검은 먹색의 면과 광목으로 된 길섶에 폈던 이부자리를  접어서 올려놓으면 완전한 컴포지션, 흙색과 흰색, 황토색의 나무들과 회벽의 한옥, 그 구조의 사선과 직선의 오묘한 입체물의 조화, 흰 횃대보 커다란 하얀 면 속의 화려한 색동 밥상보의 조각 면 등을 기억하기에 좋은  것”이어서라고.
일단 번들거리지 않는 재질 특성에 주목했다. 물기가 서서히 스며들며 베이는 질감도 질감이지만 접히면 접히는 대로 접고 가르고 칠하는 사이 겹겹이 형성되는 한 면 한 면이 소중하히 여겨졌다.
본디의 자신을 버리고 주저 없이 섞일 줄 알며 그리하여 새로운 쓰임으로 변신하는 종이. 우리의 종이 미학을 되살리는 작업이다.
그는 “종이와 물의 성질로 나는 예술의 안식을 찾는다. 이러한 것들을 찾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나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브자리 설빔 삼시 세끼니 등 끊임없는 일상 속에서 밤새가며 옷을 지으시던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모습과 같은 행위로  내 작업을 한다”고 말한다.


전통 문양과 예술 체험 모티프

종이를 소재로 한 그의 예술적 근원의 한 갈래는, 아직 전통 문양과 풍속에 따른 주거 및 의복 그리고 다양한 전통 예술작품을 체험하며 자랐던 어릴 적 경험에서 샘솟고 있다.
불교나 유교는 물론 샤머니즘이 어우러졌던 세시 풍습도 어울릴 수 있었던 현대화 여명기에 살았던 아름다운 전통가옥들에선 사대부들의 기호에 따라 집안 곳곳에 동양화 표구에다 민화까지 다양한 서화가 즐비했다.
남 작가의 어린 시절에도 부모님께서 장안으로 표구쟁이를 불러 많은 날 우리 집을 장식하고 즐거워하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인력거를 불러 두 분이 외출하시는 모습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그에게 당시 체험은 값으로 셈할 수 없는 예술 감성적 자산일 됐을 터.
지금도 그의 내면에는 당시 체험에서 비롯한 인지적 기억과 원형적 형상들이 생생히 살아 있고 단지 그는 그것들을 평면으로 표현하는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절대가치에 대한 경외, 그리고 변화
“인간다움과 아닌 것을 가늠할 최소한의 절대가치에 대한 애정과 경외는 우리들의 본능”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한 사람의 긴 이야기가 몇 개의 면, 또는 단 한 면으로도 나타나도록 노력하고 사랑과 평화와 역사가 그려지기를 바라면서 작업에 임한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몇 해 전 서유럽을 다녀오면서 새로운 변화 모색의 태동을 거쳤다고 한다.
여러 미술관을 들르고 파리에서 열린 꽁짜레종에 참석한 후 자연스럽게 작업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고백한다.
작가가 맞이하는 새로움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작가의 의식과 심상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일시지간 스스로의 변화가 낯설어 과연 옳은 길인지 방황을 겪기도 했지만 앞으로의 전환을 담담히 이어가겠다고 한다. 동양사상으로 하던 작업에서 새로운 단계의 작품세계를  즐겁고 흥미롭고 호기심이 충만한 마음으로 개척하고 있다고 한다.
일단은 남영희 작가가 어떤 평면예술 작품들을 선보일 것인지 숨 죽여 기다릴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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