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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회화 ‘신세계’ 빛과 바람 무한우주를 탁본하다
한지 회화 ‘신세계’ 빛과 바람 무한우주를 탁본하다
  • 월간리치
  • 승인 2015.08.08 20:25
  • 호수 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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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세계가 존재하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 자연과 우주에 근접해 가는 한영섭 화백. 자연 본연의 기운과 생생한 존재감이 ‘한지’라는 우리 고유의 재질과 어울리는 세계. 자연과 우주의 장구함을 절로 느끼고 소통하는 따사롭고 너른 뜨락을 펼쳐보이는 그의 작품 세계와 예술관을 리치에서 자세히 조명해 본다.

‘작음’ 속 광대함, 그 무한함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아침햇살, 그 햇살이 나뭇가지들을 거쳐 만들어낸 빛줄기들이 나에겐 아침의 시작이다. 이렇게 거대한 자연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들, 이를테면 미풍이라는 공기의 가벼운 떨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대지의 온기들이 형상화되어 늘 내 시야를 지배한다. 쌓인 눈 위로 솟아오른 잡초들의 꺾인 모습에서도 나는 선의 자유로움을 느낀다.”(작가의 말)
태어날 때 본디 받은 그대로 감각과 지각을 온전히 개방하여 확장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고백으로 보인다. 그래야만 하면 하지 않음으로써(무위)자유롭고 때론 무질서해 보이지만 정해진 길을 가는 삼라만상을 꿰어 온 몸과 의식으로 담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벽 바다의 물결이 만들어내는 여명의 다양한 모습도 그러하다. 노을빛과 그 빛을 반사하는 백색 물결들의 군상, 거친 파도가 바위에 부딪힐 때 들리는 포효, 태곳적 만들어진 암벽 균열의 위용, 태양열에 의해 갈라진 메마른 강가의 점토층.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우주다.”라고 일컫는다.
물론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한 것일 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오감과 감성으로 탁본해 낸 ‘우주’

“숲, 산, 강, 바다 등의 이름들이 지어지기 전의 자연, 그 날것 그대로의 우주는 여전히 내 일상 곳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내 오감과 감성을 거쳐 탁본을 매개로 내가 목격한 우주를 화면에 펼쳐 보인다.”며 사람 입이나 손을 거쳐 기호화하거나 형상화 하는 것이 정말 사람이 사는 이 세상과 자연세계 그리고 이 모두를 포용한 우주의 실체와 동일해 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밀 듯이 절로 실상과 본질의 형상을 받아들이는 한지에 예술혼을 걸게 된 것은 과연 의미심장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무릇 모양 없는 모양은 형용할려야 형용할 수 없음이라 했지만 인위를 버리고 택한 무위의 도라서, 홀황(惚恍)한 화폭으로 가는 든든한 길이요, 다리가 될 수 있다.


왜소함이 거대함을 낳고

그는 말한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아무렇게나 밟고 다니는 흙바닥 등, 내가 관찰한 소박한 자연들 속에 우주가 있다. 그 '작음' 속에서 발견한 거대함에 비해 나의 작업은 왜소하기만 하다”고.
때문에 나는 '대작(大作)'을 선택했다고 한다. “사람의 시야를 지배해야만 자연의 무한함이 주는 충격과 감동을 그나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양 고유의 방법인 탁본이라는 전통 기법을 통해 그간 고집스럽게 '한국적'이라는 문제에 접근했다.
이것이 한 작가의 안에 내재된 정서적 프레임이며, 자연을 해석하는 그만의 시선이자 스타일이다.
그는 탁본의 재료로 옥수수 줄기나 들깨 줄기를 이용한다.
예전에 즐겨 썼던 나뭇결이나 바위 같은 이미지는 제거하고, 이제는 선이나 면 등, 추상적 요소만 남기는 경향으로 나아간다.
옥수수 줄기나 들깨 줄기를 이용해 움직임, 속도, 힘에 변화를 주어 한지에 탁본을 하고, 이후 이를 뒤집어 바탕지에 붙이는 방법으로 거대한 화면을 완성한다.
“이러한 절차는 완전한 무계획과 우연의 산물인 탁본을 명확한 의도와 계획에 따라 구성하는 과정이며, 그 결과물인 내 작품은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접점이자 혼돈과 질서가 어우러지는 아이러니라고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 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손으로 두드리는 탁본의 과정 그 자체다.
두드리고 반복하는 단순하고 정성어린 시간들은 자연 속의 ‘무한’을 대하는 작가의 마음이다. “그 겸허함으로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고, 결국 무위자연에 다가선다.”는 그의 고백.
노자의 도경 구절 가운데 그의 예술창작관을 이해하는데 쓰임새가 있어 보이는 구절이 있다.
“텅 빈 것에 머무르기를 지극히 하고 참된 고요함을 도탑게 하면(致虛極 守靜篤) 만물이 무성히 일어나니(萬物竝作) 나는 여기에서 도리어 (만물의)근원으로 되돌아 감을 보네.(吾以觀其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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