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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아트페어 초대작가 신현국 따뜻하고 광활한 생명의 원환(圓環)
바젤아트페어 초대작가 신현국 따뜻하고 광활한 생명의 원환(圓環)
  • 월간리치
  • 승인 2015.09.10 08:31
  • 호수 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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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3대 아트페어의 하나로 6월 중순 개막했던 2015 스위스 바젤아트페어에 초대작가로 쟁쟁한 예술가들과 자웅을 겨뤘던 신현국 화백. 구체적 형상 없이 거칠고 힘차며 둔중하게 조탁(彫琢)해 낸 가장 한국적이고 본원적 정서가 무한한 울림을 떨치는 신 화백의 그림세계를, 지난 8월 26일 계룡산의 정기를 받고자 리치에서 직접 그의 작업실을 향했다.


‘계룡산 화가’로 불리는 신현국 화백이 스위스 바젤에서 해마다 6월이면 닷새 동안 열리는 세계 최대규모의 국제미술 경연장에 초대작가로 참여했다.
프랑스 피악(FIAC) 미국의 아트 시카고(Art Cicago)와 더불어 3대 아트페어로 손꼽히는 바젤아트페어. 46회째를 맞은 올해 역시 회화와 조각, 설치미술을 비롯해 드로잉, 사진, 퍼포먼스, 비디어아트 등 모든 장르에 걸친 역작들이 겨뤘다. 신 화백은 독창적 색채와 필법으로 구축한 담대한 세상을 펼쳐냈다. 
거칠고 둔중한 붓의 걸음이 거대한 산하에 가 닿으면 장대한 서사시, 탁자 위 정물을 담아내면 농밀한 서정시가 된다. 구체적이거나 세밀한 실체 대신 큼지막한 윤곽으로 포착하는 비구상의 이미지는 삼라만상의 근원, 시간의 뿌리, 생명들의 총체로서 우리 사는 세상의 끝없는 원환(圓環)임을 현묘(玄描)하는 셈이다.


허상에서 본체 길어 올리는 심안(心眼)

‘손에 잡힐 듯 싶으면서도 쉽사리 잡히지 않는 오리무중과 같은 것이 전인미답의 조형세계라지만 의식에 나타나는 듯싶다가 쉬이 사라지곤 하는 허상을 마침내 움켜쥐어 시각적 이미지로 변환하는 게 신현국 화백의 작업방식’이라고 한다.(미술평론가 신항섭)

“신현국 화백의 집요한 산 그림은, 주제의 동일성 속에서 상이성을 끊임없이 추구해 가는 창조적 생성의 조형적 변주라 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지루할 정도로 자기복제를 거듭하고 있는 것 같지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욱 오묘한 미지의 대상으로 다가오는 산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피나는 고투의 반복적 시도라 함이 옳을 것이다.”(시인 이가림, 인하대 명예교수)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포기하는 대신에 그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회화세계에 응축시킴으로써 감상자의 시선이 내면으로 향하도록 유도하는 게 신 화백의 화법(畵法)이자 그만의 화법(話法)이다.
대개의 비구상 회화는 그 어떤 형상을 유추할 실마리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순수 추상과 혼동하기 십상인데 작품의 명제 또는 주제의식을 통해 길을 찾아낼 수 있어 비구상의 묘미가 살아난다.
실재하거나 육체적 눈으로 인지되는 모습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파격이라는 점은 닮았다. 그리하되, 실재하는 존재와 그 존재들의 관계가 경로했던 시간, 의미, 동학 등에 대한 성찰에 바탕을 둔 태어난 곳으로의 회귀, 근본으로 돌아갔다가 불가해한 미래로 이동할 수 있는 창의의 결정체로 빛과 색채를 드러낸다.
신화백이 빚어내는 빛과 색채는 그런 흐름 중에서도 독보적인 길을 열고 있다.


인식·사유 확장과 근원에의 착종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그려낸 ‘빛이 있는 자연’이란 명제의 작품들에서 신 화백은 계룡산을 중심으로 자연세계에 대한 인상을 담았다.
신항섭 평론가는 이 기간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보자면 비구상이라기보다 순수추상에 근접해 있다고 보면서도 실재하는 실상에 대한 이해와 인식에서 발로했기에 독특한 품격을 갖췄다고 평한다.
“그 어떤 형상을 읽을 수 없는 작품에서도 비구상으로서 향기가 풍기는” 연유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해돋이’ ‘적송’ ‘꽃’ 등의 작품에서 그는 형태를 드러내면서도 거칠고 힘차며 둔중하게 이어지는 붓 움직임으로 은근히 형상화했다.
초기 비구상 작업은 삶의 체험, 과거에 대한 반추와도 연관이 깊다.
마당과 사립문에서 샘 솟는 서정적 감수성과 같이 그의 작품은 보는이에게 은연중의 동질감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고향의 정서처럼 보편적이고 원천적인 것이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다고나 할까.


광활한 천지자연 비구상 회화로

이처럼 초기 비구상 작업을 통해 익힌 조형감각은 구상으로 전환한 후에도 작품세계 전반을 관통하게 된다.
계룡산 자락에 화실을 마련한 이후 보다 현실적 감각을 수용했던 것이다. 눈 돌리면 사시사철 새로운 장중함을 뽐내는 위용을 보면서 광활한 자연세계 품 안에서 살며 존재하는 것들에 무젖어들 듯이 천착하면서 이르게 된 변화인 것으로 보인다.
신 평론가는 “추상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상황에서도 거기에 기울지 않고 비구상적인 이미지로 일관할 수 있었던 것도 일상적으로 산과 마주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짚어 본다.
신 화백 내면에 담긴 자연, 고향풍경, 고향의 정서는 계룡산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 전반에 흐르는 정서의 근원이며 여기다 그 만의 사색과 사유가 어우러지면서 미의식의 깊이와 외연이 증폭되고 확장된다.


부분과 전체 응축과 확산의 합일

그의 회화에 가장 단골로 등장하는 산이건만 그 거대한 존재를 쉬이 드러내지는 않는다. 부분을 생략하면서 전체를 하나의 관점으로 통일하는 형상화인 때문이다.
산이 포용하고 있는 무수한 존재 자체가 또 하나의 우주에 비견할 만하고 산과 산 그리고 백두대간을 포용하는 땅과 굽어보는 하늘까지 무수 광대한 물상들을 함축하고 시야를 넓혀서 통합된 존재로 다시 합일하는 셈이다. 작은 존재들까지 융화시키고 숨길 수 있는 거대한 형상이어서 그의 작품은 시각적 접근만으로는 불가해하다.
보이는 실체에 대한 재현이나 찬미를 넘어, 일상적 감흥과 사유, 성찰이 색채와 붓놀림에 응축된 이미지로 드러낸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무채색 이미지가 전체를 장악하거나 단색조에 가까운 작품이 등장한다. 높은 미적 안목, 즉 심미안으로 접근한다면 오히려 신 화백이 선사하는 탐미적 즐거음을 만끽하기가 어렵지 않다.
다가갈 수 없을 만큼 외경(畏敬)스런 광대함이 아니라 그가 펼쳐 보이는 세계에는 따스함이 가득하다. 생명의 기운을 보듬어 그 자연스럽고 영성(靈性)이 깃든 생성사멸을 총체화하는 담대함으로 녹여서 끌어 안는 것이다.


물과 같아서 강한 심상의 흐름

신 평론가는 신 화백 화법의 특징에 대해 “심상의 흐름과 그 흐름에 격하게 반응하는 붓질로 시종한다. 형태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 해서 무의식이나 감정의 표출, 또는 우연적인 표현에 의탁하는 추상적 표현방식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가림 시인은 최근 연작들을 감상한 뒤 ‘노자’의 도덕경을 떠올렸다. 딱딱한 물질성이 느껴지지 않는 온화함을 느꼈다는 시인은 “기실 이러한 물의 성질과 같은 유약(柔弱)함이야 말로 노자의 도덕경이 가르쳐 주듯이 우주를 움직이는 가장 강한 것”이라고 경탄했다. 
이 시인은 “이 세상의 삶을 미워하지 않는 선한 품성으로 경외스러움과 아름다움을 캐어낸다”표 평한다. “어쩌면 멸종위기에 놓여 있는 미학적 견인주의자의 풍모를 발견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신 화백의 최근작들에서는 평생을 두고 추상과 사실, 비구상과 구상 사이를 넘나들면서 끊임 없이 자기 갱신을 시도해 온 원로화가 예술혼이 더욱 원숙해지는 단계를 보이고 있다.
“온갖 천로역정을 거쳐 빛과 색채의 구조주의자로 귀환한 것”이며 “출발한 원점에서 다시 돌아오는 하나의 커다란 원환(圓環)을 완결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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