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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영속성 경외감 충만
생명의 영속성 경외감 충만
  • 월간리치
  • 승인 2016.05.10 10:31
  • 호수 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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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를 배웠으나 한 장르에 머물지 않고 평면, 입체, 설치, 사진 게다가 퍼포먼스까지 폭넓은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 창작의 길을 걸었다. 삶과 존재의 동질성에 주목하고 끝없는 순환에 천착하는 작가정신이 두드러진다. 이호영 작가의 세계는 그래서 ‘포스트 아방가르드’로 분류되기도 한다. 리치에서 그의 세계를 조명해 본다.

“고요한. 가을 들녘. 하늘거리며 피어있는 꽃들. 그들 사이. 피어나는 의자 위, 그리고 녹들. 녹의 질료, 색감은, 촉감은 하나의 시선에서 아름다울 수 있다. 또한 추할 수도 있다.”
“지난, 역사 속 철제의 녹들과 자연 본연인 꽃들의 만남은 가을 오후 한 나절을 같은 공간에서 피어 같은 하늘을 밝히고 있다.” (이상 작가노트 ‘녹 -오래된 정원’ 중에서)


녹이 슨 의자와 꽃의 공존

강가에 돋아난 모래톱 위에 반쯤 묻혀서 상반신을 드러낸 의자가 있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시립해 있던 코스모스들이 흔들거리는. 지극히 서정적이고 감미로워 보이는 상황설정은 그러나 그 의자가 붉게 녹이 슬어있다는 그 사실로 인해 외양상 절망어린 표기로 번져 간다.
작은 모래톱 위로 흐르는 것은 그 해 여름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 가득한 폐허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호영 작가가 보여주는 폐허에선 ‘다름이 피어난다.
작가는 말한다. “다름의 욕망은 폐허 위에서 피어나는 녹과 같고, 꽃과 같은 것처럼 읽힌다. 어느 한 곳이 무너지고 스러진 위에야 만날 수 있는 녹들. 자연의 자리로 되돌리기도 함과 동시에 인간의 역사의 한 시간, 단면을 스러지고 지워짐 속으로 떠밀어 새 풍경과의 만남을 열망하는 의지를 표방한다”고.
그가 포착해 낸 삶의 의미에서는 폐허 속에는 비단 녹들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꽃들도 녹들과 같이 피어난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버려진 전차 위. 그 위에 피어나는 녹과 꽃들은 같은 시간에 만나 다른 지점을 향하여 피어 있는 듯 보인다.”
역사 속 철제의 녹들과 자연 본연인 꽃들의 만남은 어느 오후 한 나절을 같은 공간에서 피어 같은 하늘을 밝히고 있는 존재들이며 공존하는 세계다.  


인간 손길 뿌리친 자연의 복원

한 때는 인간들이 애지중지 가꾸었던 공간. 예컨대 정원이 있었다면 대규모 자연재해의 힘에 휩쓸려 인간들이 떠나고 난 공간으로서 폐허에 녹과 함께 꽃이 핀다는 것을 간취(看取)해 낸 작가의식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폐허는 여전히 인간의 시간 속에 위치하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복원되고 있는데 인간의 관념에서만 폐허라는 깨달음.
태풍이 지역을 강타했던 해 이호영 작가가 받은 정신적 의식적 충격은 대단했다고 한다.
파도에 밀려왔던 나무들의 잔해들이 겹치고 겹쳐 모래사장 위는 거대한 나무의 섬, 혹은 주검의 언덕으로 보였고 시간이 멈춘 듯 적막함이 자욱한 황무지로 연출돼 있었던 것.
인간들의 무모함을 제압하려는 듯 신이 내린 거대한 손길이 지나간 권역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끼리 어울려 새로운 시간을 잉태하는 광경에 대한 묵시록으로서 작품들이 여러 편 등장하게 된 계기였다.


‘꽃들의 비명’ 동일성을 띄다

윤진수 갤러리 쿤스트라움 관장은 “우리가 이호영의 작업에서 공통으로 느끼는 미적 경험은 재현된 현실로부터의 구체적 연상들과 그것의 토대로 야기되는 구체적 차이의 연상들이 시각과 시점 안에서 동일한 방향의 순환구조를 이룬다는 점”이라고 값을 매긴다.
구체적 연상들이 야기하는 구체적 차이들이 동일성을 띈 순환구조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후기아방가르드의 본질적인 문제 즉, 현대를 읽어내는 예술의 기본적인 특성 '영구적인 혁신'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방법의 하나라고 보아도 상관없다”는 게 윤 관장의 시각이다.
시각과 방법의 차이, 시점의 위치들은 현대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방법적인 고민과 긴밀하게 결합돼 있다.
이호영 작가의 작품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함께 듣는 '꽃들의 비명'은 현대를 이루는 모호한 투쟁, 또는 새로움과 극단적 경향을 비판(kritic)해야 하는 작가의 ‘외로운 비명’일 수도 있다.


자유를 갈망하는 합목적성

윤 관장은 “꽃들의 비명은 동일성으로 다가오는 아방가르드의 비명”이라고 제목 짓기도 했다.
이 작가의 작업이 회화와 설치뿐 아니라 다른 것들과도 조화를 이루거나 재료와 형상화 방식이 달라진다 해도 동질성을 내포할 수 있는 원동력은 ‘작가의식의 합목적성’에 있다고 본다.  자유롭고 열린 시각이기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다른 것’들에 차별을 가하지 않는다는 점.  작가가 관여하는 대상의 연상과 그 연상의 차이로부터 자유로운 출구를 찾아 흐르는 형상의 의미가 내포돼 있지만 그 자체의 법칙을 스스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형식의 구성, 사물의 모방, 경험의 표현 등을 한정적이고 구체적인 공간에 재현시키려는 현실로부터의 자유야 말로 합목적성의 본질”이라는 게 윤 관장의 풀이다.
따라서 이 작가의 작업을 굳이 설치와 평면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나누거나 미술과 미술 아닌 예술의 변주로 구분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예술 ‘그 이상의 무엇’은 바로 아방가르드 자체이기 때문에 이제는 동일한 선상의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뿐이 없는 아방가르드의 비명은 더 이상의 아방가르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 시킨다.


無와 空 그리고 ‘Empty’

또한 윤 관장은 이호영 작가 설치작업에서 무언가 불분명하면서도 분명히 느끼게 되는 ‘공허’에 주목했다.
“공허하다는 느낌은 아마도 어두운 조명을 묵묵히 받아 내는 의자로부터 나오는지 모른다. 또한 작가는 어떤 의도에서인지 백 여덟 개 라는 개수 의 거푸집을 공간 바닥에 이리 저리 깔아 놓거나 쌓아 놓았다. 그 것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번뇌로 보여 지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윤 관장은 그 것이 삶의 밑바탕을 떠받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는 번뇌의 시발이 존재에 대한 문제임을 강조하는지 모른다고 추론했다.
오래 쓰러진 고목은 가지만 앙상한 주검인데 작가는 실존의 문제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드문드문 거친 파도를 내비치는 바다의 정령들은 낯선 방문객들에게 ‘이 먼 곳까지 뭐 하러 왔노’라는 물음을 던지는 중이다. 그림은 그냥 그 공간을 벽과 벽으로부터 주시 한다. ‘번뇌가 쌓여 공허하다’고 말한들 무엇하나!
번뇌가 있어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이유를 깨닫게 했을 것이다.
작가의 고뇌가 꽃들이 보내는 시그널을 해독하고 다시 말을 건네는 유일한 통로를 거쳐서 작가는 ‘그 것’을 전시한다. 그리고 ‘그 것’ 자체로서 시가 되어버린 시를 작가는 재음미한다. 시인의 이름으로 읽혀지는 작가 이호영의 전시는 바로 이런 공허에서 이야기되는 꽃들의 비명이다.


태백서 펼친 단체전 ‘사미인곡’

김기동 철암석탄역사촌 관장의 요청을 받아 얼마 전 여러 작가들과 함께 ‘흐르는 땅. 태백-인간의 시간’전에 참여했다.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시간의 흐름과 항상 변화 속에 사는 존재들을 인식하는 도시로서 태백을 주제로 했다. 
한 쪽에선 옛 마을의 풍경들이 쇠락하고 있는 동시에 다른 쪽에선 그 대안으로 들어선 리조트와 카지노가 상반되게 교차하는 태백의 풍경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데 동참했다.
옛것을 지키고자하는 모습과 새로운 방식들을 수용하고자하는 모순들의 어울림을 풀어놓은 전시장에 이호영 작가의 역작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이종한 호서대 교수는 여러 시선들이 한 공간에 자리한 당시 전시를 두고 “한 곡을 여러 악기가 연주하여 합을 이루거나  주제에 의한 변주들로 인해 주제가 화려하게 한다”며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지금 현재, 인간의 시간들이 어떠한 변주들로 말하여지며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가에 대한 여러 연주곡”이라고 해설했다. 

프로필


◇ 1965년생
강릉고, 홍익대 미대 회화과업,
같은 대학원 서양화과 (석사), 같은 대학원 미술학과 (박사)
 -박사학위논문
《영원한 화두》·《화엄》에 나타나는
   신체와 폭력에 관한 연구〉
                 
◇ 주요 개인전
2007 강원 아트페어 초대 ‘화-인’ 회화 (치악예술관, 원주)
2007 ‘몸- 바다에 이르다’ 퍼포먼스(속초 민예총 초대, 엑스포 광장, 속초)
2008 ‘꽃들의 비명’ 영상설치, 회화, 퍼포먼스(쿤스트라움갤러리 초대, 서울)
2008 ‘피어나는 것들’ 회화(한갤러리 기획, 서울)
2009 ‘꽃들의 바다’ 영상설치, 퍼포먼스(서울남부지방검찰청 초대, 남부지방검찰청, 서울)
2010 ‘꽃들의 바다’ 회화(아카갤러리 기획, 서울)
2011 ‘꽃눈-피어나는 몸들’회화(유나이티드 갤러리 초대, 서울)
2011 ‘꽃눈-피어나는 것들’회화(동경한국대사관, 동경)
2011 ‘꽃눈-피어나는 몸들-강릉에’회화(강릉미술관, 강릉)
2011 ‘녹-오래된 정원’회화(바움아트갤러리, 서울)
2012 ‘물-오래된 정원’영상 설치 (블레시움갤러리, 용인)
2013 ‘꽃그늘’회화 (갤러리세인, 서울)
2014 ‘아리랑- 오래된 정원’영상설치(강릉시립미술관, 강릉)
2014 ‘길 안의 길’ 영상설치(2相 공간 두들, 서울)
2015 ‘길에서 길을 묻다- 오래된 정원’(강릉시립미술관, 강릉)
2015 ‘월인천강-오래된 정원’(철암탄광역사촌 초대, 태백)

◇ 수  상
2011 유나이티드 재단 ‘우수작가상’, 재단법인 유나이티드 문화재단
2011 문화예술교류진흥회 ‘공로상’, 사단법인 문화예술교류진흥회
2011 2011한국현대미술작품전 ‘2011우수작가상’, 한국현대미술작가회
1993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 ‘우수상’
1993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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