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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찬란한 보물 웅자(雄姿) 드러나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찬란한 보물 웅자(雄姿) 드러나
  • 월간리치
  • 승인 2016.07.11 09:26
  • 호수 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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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가까이 하기에는 멀고, 접하기가 어려웠던 철의 장막 뒤 신비한 미지의 나라였다. 개방의 물결은 그 철벽을 허물고 고이 간직했던, 숨겨져 있던 찬란한 보물들을 내보이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두 도시, 현재의 수도 모스크바와 구소련 차르(tzar)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리치와 함께 돌아보고자 한다.

먼 먼 길 끝 크렘린 궁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과 붉은 광장(Kremlin and Red Square, Moscow)은 14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러시아와 외국의 뛰어난 건축가들이 건설한 궁전으로 왕실이자 종교적 중심지였다. 5개의 문과 29개의 탑으로 보강한 삼각형 모양의 성곽에 둘러싸인 크렘린 궁전은 1156년에 유리 돌고루키(Yuri Dolgoruki)가 크렘린을 보호하기 위해 모스크바(Moskova) 강과 니에글린나야(Nieglinnaya) 강이 만나는 지점 언덕 위에 목조 요새를 축조한 것이다. 오늘날 이 요새가 있던 지역은 알렉산드로프스키(Alexander) 정원으로 뒤덮여 있다. 14세기에 드미트리 돈스코이(Dimitri Donskoi)가 이곳에 통나무 성곽을 쌓았고 나중에 처음으로 석조 성곽을 건설하게 되었다.
크렘린 궁전 성벽 안에는 수많은 독특한 건축과 조형예술의 걸작이 있다. 수태고지 교회(Church of the Annunciation), 성모 승천 대성당(Cathedral of the Dormition), 천사장 교회(Church of the Archangel), 그리고 이반 벨리키(Ivan Veliki) 대제의 종탑같이 아름다운 종교 기념물이 있으며, 성모 마리아 탄생 교회(Church of the Nativity of the Virgin,1393)와 테렘 궁전(Teremnoi Palace)이 있다. 대부분의 러시아 건축물은 크렘린 궁전의 양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양식의 영향도 찾아볼 수 있다.
장구한 풍상 겪어

낸 붉은광장

크렘린 궁전 성벽 아래 붉은 광장에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랜드마크 상트 바실리 대성당(Saint Basil's Basilica)이 있다. 이 건물은 러시아 정교회 중 가장 아름다운 기념물로 유명하다. 원래 카잔(Kazan) 성당과 짝을 이루는 교회였다. 그러나 카잔 성당은 1930년대 초반 주변에 있던 수녀원 몇 채와 함께 사라졌다.
13세기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할 때까지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은 러시아의 역사상 주요 사건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많았다.
그러나 크렘린 궁전은 약 200년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있었다. 그러다가 1918년 구소련의 각료회의, 최고 간부회의와 의회가 크렘린 궁전 지역에 들어서면서 새로이 각광을 받게 된다. 구소련을 상징하는 레닌의 묘가 붉은 광장에 있고 러시아 혁명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혁명 영웅들의 유골을 크렘린 궁전 벽 속에 안치하였다. 이처럼 크렘린 궁전은 역사의 흔적과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이 결합된 특이한 곳으로 199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표토르 대제 웅지가 빚은 보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지구와 관련 기념물군(Historic Centre of Saint Petersburg and Related Groups of Monuments)은 18세기 표토르 대제가 러시아의 상징적 수도로 건설하면서 남겨진 곳이다. 수도 건설에는 러시아 병사, 스웨덴과 오스만 제국의 전쟁 포로, 그리고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노동자와 인부들의 엄청난 노동력이 강제 동원되었다.
1703년부터 1725년까지  표트르 대제는 프랑스 건축가 알렉상드르 르블롱(Alexandre Leblond)의 도시 설계에 따라 계획의 목적과 일관성 그리고 실행 속도와 독특한 예술성 등이 구현되게 만들었다. 후세의 많은 사람들은 이 도시의 완성을 그의 탁월한 업적으로 여긴다. 그는 이 도시가 유럽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되기를 원하였다. 도시 전체가 고층 빌딩이 없고 높이 제한과 건축 양식이 거의 일정한 상태이다.


즐비한 운하 ‘북쪽의 베네치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수많은 운하와 400여 개가 넘는 다리가 있어서 사람들은 ‘북쪽의 베네치아(Venice of the North)'라 불렀다.
구 해군성, 겨울궁전, 대리석 궁전과 에르미타주(Hermitage) 박물관에서 찾아 볼 수 있듯이 모든 건물들이 바로크 양식과 순수 신고전주의 양식들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데카브리스트 광장에 세워진 조각가 팔코네(Falconet)의 작품인 표트르 대제 청동 기마상은 당시 그의 위상을 떠오르게 한다.
전 세계 도시계획 역사 중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대규모 도시 계획의 유일한 본보기이다. 서로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건축 양식을 신속하게 계승했음에도 나름의 철학을 간직한 대규모 계획이었다. 이러한 점이 고려되어 거의 도시 전체가 199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격동의 역사 음미하는 즐거움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이 있는 성 안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 또한 성 밖의 붉은 광장에는 현대식 백화점이 나란히 있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발트 해(Balt Sea)와 연결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생생한 색을 띤 회반죽과 장식 벽토, 빛이 반사되는 대리석, 반짝거리는 금박 장식의 건축물과 녹색의 공원이 어우러져, 눈이 시리도록 푸른 네바(Neva) 강물과 함께 그림 같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들 도시는 과거의 격동의 역사와 함께 만들어졌지만 오늘날 후세 사람들에게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멋진 유산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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