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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주 비타에듀 그룹 회장 문화융성·교육보국 외길
문상주 비타에듀 그룹 회장 문화융성·교육보국 외길
  • 월간리치
  • 승인 2016.10.09 16:02
  • 호수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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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검정고시 길을 비추는 등불이었다. 이후 대입학원을 신설·인수했고 이젠 굴지의 대형학원과 전국 프랜차이즈 학원에 e러닝 첨단 교육사업까지 두루 펼쳐온 문상주 회장. 평생교육 사업과 해외 문화교류까지 펼치며 교육보국·문화융성에 앞장선 입지전적 삶을 이어왔다. 리치에서 현재의 문회장을 만나봤다.


문상주 비타에듀 그룹 회장은 스스로를 “47년 동안 사회교육사업으로 ‘교육보국(敎育報國)’ 이념을 실천해온 사회교육자”라고 소개한다.
학원사업이 큰 축이긴 하지만 평생교육과 기술교육사업은 물론 해외에까지 한글교본 보내기 사업을 펼치고 있으니 사회적교육사업자라 칭해도 무방해 보인다.
나아가 한글 보내기 사업을 해외까지 확장하는 것은 물론 민간외교 사업의 중추로 일하면서 경제·교육·문화 교류에 앞장서서 결국은 새천년 이후 한류 확산의 기틀을 다지는데도 크게 한 몫했다고 자부한다. 


교육보국 47년 우직함

그가 펼쳤던 핵심활동을 혹자는 지식산업의 대중화(매스티지화)에 평생을 바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가 산업화에 한창이던 1970년대에는 교육에서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회초리를 들기를 마다 않고 검정고시 교육을 했던 것에서 지금은 e러닝, u러닝을 통해 빈부, 도농의 격차없이 고품질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활동에 소홀하거나 쉰 적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학원총연합회장 선출 이래 평생교육 사업을 확산시켰고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 조응하기 위해 전국민 평생교육기관화를 추진했다.
외환위기 때 실업자와 미취업자들을 위해 각종 기술계 학원과 연계한 재취업 교육기회를 주는 데도 발벗고 나선 바 있다.
문 회장 스스로도 고려직업전문학교를 설립해 인터넷, 컴퓨터 산업디자인, 멀티미디어, 웹디자인, 전자상거래, CPA(미국공인회계사) 인력양성을 이끌고 있다.


대학진학 지원 중국 확산

교육입국을 지향했기 때문에 대통령직속 자문기구나 정부기관 등에서 다양한 자문위원 활동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입시정책 수립과 변화에 영향력을 끼쳤고 또한 동시에 대입수험생들의 진학을 지도하고 뒤에서 밀어주는 사업을 꾸준히 펼친 것이다.
여기다 이제는 중국 북경에 중화고려대학교를 세우고 입시학원인 중국고려학원을 세운데 이어 국제학교 초중고 정규학교까지 운영하며 보폭을 크게 넓혔다.
중화고려대학은 중국 국가교육위원회 비준을 받은 중국 유일의 외국인 설립대학으로 여성전문 정규대학 과정을 필두로 성인 평생교육과 직업교육을 펼치고 있다.  
중국에 한국의 교육기관을 세운 것이야 말로 명품지식의 보편화 무대를 동북아 차원으로 넓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JKI장학생 등 장학사업도 활발

문 회장은 지난 47년 동안 5만 2576명의 학생들에게 재단법인 고려문화장학재단을 통해 각종장학금을 나눠줬다.
1980년대 후반 당시 최첨단 과학 분야인 컴퓨터 기술을 도입하고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 지식산업사(JKI)와 자매결연을 맺은 뒤 1986년부터 3년동안 무료 장학생을 30 여 명을 파견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검정고시 합격자와 성적이 우수한 대학입학자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업은 지금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평생교육이나 직업교육은 지식기반사회 조성 활동과 신지식인 마인드 저변 확산과 맞물려 펼쳐왔고 각종 교육·직능 취업박람회를 열어 청년실업 해소에도 한 몫 단단히 보태고 있다.


민간외교 한류기반 큰 공헌

사회교육사업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다 보니 국가간 경제, 문화 교류에서 민간외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점도 돋보인다.
1983년 한일친선협회를 조직해 상호 친선방문과 문화교류사업, 세미나를 열었다. 1995년 7월엔 미국 워싱턴D.C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탑 준공식’에선 양국 대통령과 26개국 외교사절, 그리고 참전용사와 가족들과 뜻을 함께했다. 이 때 미국 워싱턴 한인호의 <미국 이민 100년사> 를 공동제작, 발행하는 일에도 동참했다.
1997년 중국과 수교 5주년 기념책자 발행에 관여했으며 1999년 중국 건국 5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유진 박을 비롯한 국내 및 중국 정상급 가수들이 공연하는 무대를 마련한 주역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 공연은 중국 국영 CC-TV 생방송과 국내 MBC 위성녹화방송으로 이어지면서 한류 확산의 교두보 노릇을 하기도 했다.
2003년 2월에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세계적 지도자들과 한국 정치인들을 초청해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국제친선의 밤’을 직접 열어 경제인 국제교류에도 기여했다.
같은 해 ‘한미 동맹 50주년 및 안인미주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직능경제인으로 한미친선사절단을 이끌고 다녀오는 성과도 있었다.


직능분야 발전에도 앞장

문 회장은 한국학원총연합회 회장으로서 150여 직능단체 연합체인 (사)한국직능단체총연합회 (현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 창립멤버로 힘을 보탠 뒤 2000년 총회장에 선출돼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해마다 대정부, 대국회 상대로 정책건의서를 작성해 제출해 현안해결이 국가경제 활성화에 맞물려 돌아갈 수 있도록 애썼다.
2004년 ‘직능인경제활동지원에관한법률’ 제정이 이뤄질 때 핵심적 역할을 맡은 건 당연지사였다.
또한 2010년 11월 11~12일 열린 ‘서울 G20 정상회의’가 성공리에 마칠 수 있도록 기초질서지키기 운동은 물론 G20 정상회의 홍보책자 배포에 앞장서기도 했다.


전통시장·서민경제 살리기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서민경제 살리기에 주력했던 점도 남다른 면모다.
대형할인마트가 중소도시까지 진입하면서 지역문화 중심지였던 전통시장이 큰 어려움에 처한 것을 보아 넘기지 않고 직능경제인들과 함께 ‘전통시장 살리기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 덕분에 직능경제인단체 회원 뿐 아니라 다양한 기관과 단체 그리고 일반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며 새바람을 일으켰다.
지금도 전국 각지 전통시장에서 시장 방문과 구매 독려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질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다른 한 손으로는 남 돕고 살아야”

사회적 성공을 거두고 저명한 인사로서 이처럼 다양한 사회공헌활동까지 펼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신께서 사람에게 두 손을 주신 의미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신이 인간에게 두 손을 주신 것은 한손은 일하기 위한 것이고, 한 손은 남을 도와주기 위한 기능을 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차가 심한 때일수록 항온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듯, 요즘같은 경쟁시대일수록 이같은 항심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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