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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의 파리 ‘프라하’ 역사의 숨결 간직 ‘아름다워~라’
동유럽의 파리 ‘프라하’ 역사의 숨결 간직 ‘아름다워~라’
  • 월간리치
  • 승인 2009.09.28 01:06
  • 호수 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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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체코는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로 대표되는 위대한 작가들과 드보르작으로 대표되는 위대한 음악가들을 배출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도 음악을 사랑하는 국민성 때문에 체코인이라면 누구나 음악가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처럼 문학과 음악으로 잘 알려진 체코가 최근에는 아름답고도 신비스러운 고도(古都) 프라하로 인해 또 한 번 명성을 떨치고 있다.

체코의 수도이자 수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프라하는 유럽에서도 아름답기로 으뜸가는 곳. 시내 곳곳에는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남아있어 고풍스러움을 더한다.
프라하에는 시대를 망라한 수많은 중요한 건축물들이 즐비할 뿐만 아니라 1992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과학 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 유산이 있는 역사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프라하는 또한 EU가 지정한 2000년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명명된 9개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프라하 야경의 상징, 프라하 성(Prazsky Hrad)

프라하 성은 9세기에 이미 교회가 있던 자리였다. 옛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자리 잡은 9세기 말부터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1~12세기에는 로마네스크 바실리카 교회가 성 비타 로툰다를 대신해 세워졌고 성 조지 교회가 재건됐다.
14세기에 이르러 현재 프라하 성의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면모를 갖추게 됐다. 1000년 넘게 그 아름다움을 유지한 덕분에 지금도 사진의 배경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지금도 체코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성비트 교회(St Vitus Cathedral)는 총길이 124m, 폭 60m, 천장 높이 33m, 탑높이 100m의 프라하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로 현재 대통령궁으로 쓰이고 있는 프라하성곽 안에 위치해 있다.
교회의 건축이 시작된 것은 600여 년 전인 1344년이나 증개축이 계속되어 체코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29년이다. 성당이 완성됐을 때는 초기 비투스 성당의 최초 설립자이자 보헤미아의 수호성인인 웬체슬라스 왕자 사망 100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프라하의 휴식처 ‘카를교’

프라하에 오는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찾는 유명 관광지로 12세기에 이미 목재교가 같은 위치에 있었으나 강이 범람할 때 붕괴되어 12세기 중엽에 석재교로 대체됐다. 이 석재교 또한 강물로 인해 붕괴되어 1357년 카를4세 때 교회 건축가인 피터 팔레지(Petr Parler)가 다시 건축해 1402년 완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516m의 길이에 16개의 기둥과 3개의 브릿지 타워가 있다. 구시가지 브릿지 타워는 많은 조각상으로 인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브릿지 타워로 꼽히고 있다.
바로크 시대(18C)에 만들어진 30개의 조각상이 다리를 장식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조각상은 Matyas Braun과 E. M. Brokoff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프라하의 심장부 ‘구시가지 광장’

구시가지 광장은 10세기 이래 늘 프라하의 심장부와 같았던 곳으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이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각종 건축양식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특히 낮과 밤 가릴 것 없이 계속되는 활기찬 분위기와 프라하 역사에 길이 남을 주요사건들의 발생지로써 더욱 잘 알려져 있다. 1422년에 행해진 성직자 Zelivsky의 처형 장소이자 1918년 민족 해방을 위한 투쟁 등을 벌인 애환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집들에 반쯤 가려 광장 쪽을 바라보고 있는 건물이 구시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틴교회이다.
또한 광장의 중앙에는 보헤미아 독립운동의 투사인 보얀 후스(Jan Hus)의 동상이 서 있는데 동상에는 나찌에 의해 만자 십자상이 새겨져 있고 ‘프라하의 봄’이 끝나가는 것에 대한 애도의 뜻으로 검은색 휘장이 둘러져 있다.

황금소로(Zlata ulicka)

황금소로는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인형 같은 16세기의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거리다. 프라하 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으며, 동화에 나올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금은 선물가게들로 가득하지만 원래 이곳은 성에서 일하던 집사와 하인들이 살던 곳이었으나 이후 연금술사들이 모여 살면서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하지만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황금소로의 22번지가 실존주의의 대표적 작가인 카프카가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이곳에서 대표작인 ‘성(城)’을 집필했다고 한다.
벌써 500년 이상이 지났지만 이곳은 여전히 16C 옛날 모습 그대로의 거리 모습을 보전하고 있고 이제는 서점, 레코드 가게, 기념품점과 같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어 손님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구시청사의 천문시계

블타바 강 오른쪽 지구인 구시가광장에 있는 구시청사는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건물로 건물 벽에 붙어 있는 천문시계가 유명하다.
현재는 건물이 2차 세계대전 때 파손되고 천문시계가 있는 70m의 탑만 남아있는데 매 시간마다 정확히 울리는 천문시계는 천동설에 기초한 두개의 원이 나란히 돌아간다.
또 이곳 안에는 프라하시민들이 결혼식장으로 이용하는 작은 예배당과 탑 내부에 후스파 사람들이 수용된 적이 있는 감옥도 있다.
매 시각마다 한 번도 틀림없이 정확하게 시간을 알리는 이 시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끊이지 않고 몰리는데 두개의 원반위에 있는 천사의 조각상 양 옆으로 창문이 열리고 죽음의 신이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12제자가 창 안쪽으로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시계의 위쪽에 있는 닭이 운다.
이 시계의 제작자에 대해서는 시계 제작의 거장이었던 미쿨라슈가 만들었다는 것과 15세기경 프라하의 천문학자이자 수학교수였던 하누슈가 만들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누슈가 만들었다는 설에 대해서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의 손재주를 시샘한 누군가가 그의 한쪽 눈을 멀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계를 지키다 쓸쓸히 병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과 함께 한때 이 시계도 움직임을 멈췄는데, 이후 몇 번의 수리와 1948년에 설치된 전동장치에 의해 지금까지 그 아름답고 신기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자료제공 : ㈜하나투어 www.hanatour.com(1577-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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