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6:53 (금)
정미경 국회의원 “발로 뛰고 설득하며 최선을 다한다”
정미경 국회의원 “발로 뛰고 설득하며 최선을 다한다”
  • 월간리치
  • 승인 2010.09.30 10:49
  • 호수 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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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의원은 요즈음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 장애인 음악제 대회장을 맡아 성황리에 마친 정 의원은 쉴 틈이 없다.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국정감사가 시작되면서 검찰출신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리치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활약하고 있는 정 의원을 만나 진솔한 얘기를 들었다.

Q. 지난달 말, 제1회 대한민국 장애인 음악제 대회장을 맡아 진행하셨는데 이번 행사에 대해 설명하신다면.
A. 신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자기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가능성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지게 된다. 장애 예술인들의 예술 혼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고 함께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순수하게 그 영혼들을 사랑하는 분들이 모여서 이 음악제를 만들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Q. 행사 개최로 기대되는 효과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A. 불가능함을 가능함으로 바꾸는 것,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쁨이다. 장애인들의 시와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해하는 것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들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작품을 보면서 들으면서 느끼면서 우리가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알게 된다. 그 깨달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알기가 어렵다. 음악제를 통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임을 알게 해주는 아주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Q.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검사출신의 면모를 발휘했는데 자신만의 경쟁력을 말씀하신다면.
A.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자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차 알 수 있는 것이 엄마이다. 엄마의 사랑 때문이다. 그런데 저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훈련을 받아온 검사였다. 때로는 엄마의 눈으로, 때로는 검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 그것이 강점이지 않을까 한다. 사람 자체를 좋아한다.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검사할 때도 행복했고, 정치인이 된 지금도 행복하다. 가장 큰 경쟁력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Q.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해 한나라당 지도부가 국민배심원단을 추진하고 있는데.
A. 공천도 가장 공정하고 우리가 승복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보자고 해서 조금씩 고치는 과정에 있다. 사실 제도라는 것이 100%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많이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한 목소리대로 가는 것이 아닌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과정들이 좋은 선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Q. 검사직을 포기하고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A. 검사시절, 여성가족부 파견기간에 여성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여자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을 꿈꿔라』라는 책을 쓰게 되었다. 여성이 이 땅에서 어떤 전략으로 살아가야 성공할 수 있는지 나 나름대로의 생각을 경험과 함께 정리했던 책이다. 그런데 이 책으로 인하여 검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우연히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었고, 당선되었다.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Q,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대변인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지.
A. 사실 지역구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에 대변인을 하고 싶어도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대변인을 하고 싶어 하는 여성국회의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저에게 제안이 왔을 때, 놀랐고, 그러나 빨리 그 기회를 잡았다. 지금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

Q. 최고위원 경선문제에 있어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던데.
A. 최고위원 경선에 나가려면 대변인을 그만두어야 했다. 대변인을 더 하라고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꼭 해보고 싶었다. 대의원들을 직접 만나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속으로 내가 죽어서 무덤에서라도 이 얘기를 하고 싶다면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경선에 나갔다.

Q. 최근 수원비행장 문제와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A. 현실적으로 수원비행장 이전은 시간도 많이 필요하고 힘들다. 국가안보문제는 우리 모두의 부담이기도 하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비상활주로는 다르다. 비상활주로를 해제하고 비행장안으로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안보 또한 크게 영향 받지 않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Q. 비상활주로 해제를 위해 김태영 국방부 장관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얘기들이 오갔나.
A. 김태영 국방부장관을 만나 이전 가능성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장관이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또 다르다. 그래서 비행장 이전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차선책으로 비상활주로 해제에 대해 도움을 청했다. 공군이 현재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공군이 이정도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국방부 장관이 움직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Q. 비상활주로 해제에 대한 자신감이 강하다. 반면 비상활주로해제 보다 비행장 이전에 더 강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김진표 민주당 최고위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A. 혹시 태클을 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분은 참여정부 시절에 장관도 했고, 부총리도 했던 분이다. 그런데 그 참여정부 때, 비행장 이전문제 해결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분이 이제 와서 비행장 이전을 하겠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비상활주로로 인해 현실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주민들은 권선구 주민들이며 나는 권선구 국회의원이다. 그 분은 영통구 국회의원이고.

Q.  ‘수원 화성 국책사업전환문제’가 수년 째 국회에 계류 중에 있는데 어떻게 보고 계신지.
A. 현실적으로 법률안을 발의하신 국회의원이 열심히 뛰어야 한다. 열심히 뛰고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저는 경기고등법원을 수원에 설치하는 것에 대한 법안을 발의했다. 열심히 하고 있다. 

Q. 수원에서 가장 낙후된 역으로 꼽히고 있는 서수원 발전과 농촌진흥청 이전부지 활용방안에 발전방향을 제시한다면.
A. 처음 호매실지구 임대주택비율을 낮춰 달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연구했다. 그러던 중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 중 보금자리 주택에 대한 부분 알게 되었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착안하여 임대주택을 보금자리주택으로 전환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결과로 실제 임대주택비율을 많이 낮출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국토해양부장관을 여러 차례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Q. 서수원이 발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A. 우선 사람이 북적북적 대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 된다면 서수원은 발전하게 된다. 법원과 검찰청이 서수원으로 옮겨진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좋은 거다. 그래서 경기고등법원이 만들어진다면 그것도 서수원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또 소음문제가 걸리고 있다. 우리 주민들이 안보를 부담하고 있다면, 정부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원하는 기관을 주어야 한다.

Q. 지난날, 재수 끝에 합격하고 기쁜 마음으로 떠난 겨울여행에서 20년 세월을 단숨에 무너져 내리게 하는 ‘진실’을 알게 됐다고 하는데.
A. 지금까지 엄마였던 우리 엄마가 실제로는 나를 낳아주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특별한 가족사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엄마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물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바로 그 깨달음이 오늘 나의 정치의 핵심이다. 내 자식이 아니라도 사랑으로 키운다면 내 자식이라는 것을 몸으로 가르쳐주신 어머니이다. 그분을 깊게 사랑한다.   

Q. 격렬 ‘신앙적 사춘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A. 그렇다. 가족사를 알게 되었고, 방황이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배워왔는데, 잘 느껴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되질 않고, 세상에 내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방황 끝에 하나님을 만났다.

Q. 신앙 간증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다. 활동사항을 말씀하신다면.
A. 국회의원이 되고난 후 우연히 고시 공부하던 신림동 시절 다녔던 왕성교회에서 법조인들을 상대로 신앙 간증을 하게 되었다. 그 뒤로 계속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하고 있다. 몇 번인지도 헤아릴 수가 없다. 저를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전국을 다니고 있다. 꼭 살아야 한다는 것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메시지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렇다.

Q. 마지막으로   리치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하신다면.
A. 전 행복한 사람이기를 늘 꿈꿔왔다. 지금 이순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행복한 정치인이 되고 싶고 그렇게 할 것이다. 행복을 느껴왔던 그 소중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그렇다. 우리 모두 행복해지도록하자. 

프로필

덕성여자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홍익대학교 세무대학원 졸업
제18대 국회 수원 권선구 국회의원
2010년 국방위원회위원
여성가족위원회위원
2010년 한나라당 대변인
2009년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전 검사(수원지검, 군산지검, 부천지검,
    의정부지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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