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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 작가 “우리가 우리 문화재 지켜야 한다”
이상하 작가 “우리가 우리 문화재 지켜야 한다”
  • 월간리치
  • 승인 2010.10.01 01:00
  • 호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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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꽃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만난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과 조우하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한다. 무엇 때문일까. 누가 그렸는가에 주목하고, 누군가에 의해 식별 기호로 붙여진 화제(畵題)에 주목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럴 경우 나름대로 취할 수 있는 느낌을 건질 수 없어 조우에 실패하는 것일까. 불현 듯 ‘그림은 그림 자체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서양화가 이상하 화백의 지적이 떠오른다. 에선 예술품 감상에서 주관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이 화백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봤다.

 미술가들은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자기만의 고유한 표현 방법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상하 화백도 그렇다.
이 화백의 예술의 특징을 압축해 본다면 지금 이 순간 시시각각 변화하며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 같은 이미지를 담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특히 사회 문화적 환경이나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는 이미지에 대해 탐구하는 이 화백은 외부 환경까지 작품으로 끌어들여 가상과 실재가 혼재하는 유연한 관계를 표현하는 것을 일품으로 꼽을 수 있다.
실제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면 블루와 화이트가 존재한다는 특징이 있다. 블루는 영혼을, 화이트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 순수한 마음을 상징한다. 따라서 순수한 자유로움과 영혼성을 기본 색감으로 사용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색감은 10년 동안 한결같이 작품에 담았다. 선진한국당 이회창 총재가 이 화백의 색감과 그림세계를 좋아한다고 한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일화다.
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바로 ‘원’이다. 그가 원을 빼놓지 않는 것은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무언의 암시다. 우리는 우주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하나의 마음으로 동시에 하나가 되어 묶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세계가 하나가 되어 예술로 승화한다는 얘기다.
순수성과 영혼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화백의 작품 활동에서 엿볼 수 있다. 작품 활동이 주로 새벽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우주의 만물이 소생하는 새벽이야 말로 인간으로써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의 영혼을 채울 스토리를 작품에 접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담아 그는 매일 매일 새벽에 그림을 그린다.
이 화백의 지론은 그림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가식이 없고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예술은 마음과 정신을 전달하는 것이고 진실하게 다가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프랑스에서 10여 년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한 외국파 이상하 화백의 애칭은 ‘신동’이다. 어렸을 때부터 듣던 말이다. 그림에 대한 감각도 남달랐다. 주위에서 믿어주지 않을 정도였다. 주변에서 혼이 났을 정도로 그의 그림실력은 탁월했다. 
워낙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과 함께 살았다. 초등학교 때는 물론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그림과 함께 했다. 이후 한 때 호황 속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당시 나이는 31살. 이 때 그는 인생이 바뀌는 계기를 맞이했다. 바로 우리나라의 최초의 프랑스계 화백인 이성자 선생을 만난 것이다. 당시 한국을 방문 중이었던 이성자 선생이 이 화백의 작품을 보고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룰 프랑스로 초청했다.
후배 양성에 큰 뜻을 두고 있던 이성자 선생을 따라 프랑스로 건너간 이 화백은 그 때부터 이성자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그만의 작품세계를 완성해 나아갔다. 그 결과 한국에서만도 7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이 화백은 진실로 그림을 사랑하는 화가다. 그는 항상 ‘그림을 보고 많은 감동을 줘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이것이 바로 내재돼 있는 속마음이다. 
그가 간혹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이 있다. 인테리어보다는 벽에 그림을 걸고 감상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필요 이상의 많은 비용을 내부 인테리어에 투자하는데 이것은 지양해야 할 부분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요즈음 이 화백은 ‘우리가 우리 문화재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국민이 그림과 가까이하고 그림을 보면서 많은 용기를 얻고 또한 작가들의 그림을 가까이 접하고 사는 등 진정한 문화 국민으로 가기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문화 국민과 국가가 되려면 예술계를 이끌어갈 후배를 발굴하고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같은 지론을 현실에 옮기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화백. 그는 파리와 서울 뉴욕에서 동시에 작품 전시회를 여는 계획을 실현하기 위채 오늘도 작품에 몰두하고 있다.

================================ 프로필 =====================
▲ 개인전
1988년 旺創화랑(동경)
1989년 주한 독일학교 개교기념전(서울)
1990년 에띠엔느 드 꼬장화랑(파리)
1991년 예일화랑(서울)
1992년 에띠엔느 드 꼬장화랑(파리)
1997년 화인화랑(서울)
2003년 문예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서울)
2009년 인사아트센터(서울)
▲ 단체전
1988년 한일현대회화88전(서울.그로리치화랑)
1989년 제1회 동아세아현대미술제(동경.新宿문화센타)
1989년 해외교류미술가영맹전(동경)
1991년 時展(파리.스카봉젤리화랑)
1992년 6월의 벽전(파리.에버아트화랑)
1992년 15회 Salon de peintures(파리)
1993년 16회 Salon de peintures(파리)
1995년 동.서양화 2인전(서울.조형갤러리)
2003년 한국미술협회전(서울.예술의 전당)
2005년 갑오세갑오세전(서울.동덕미술관)
2008년 고양세계열린미술대축제(고양.고양어울림미술관)
2009년 행복한 기억전 서울대병원 강남검진센터 (서울)
2009년 4월의 이야기전(서울.갤러리각)                                               
2009년 제3회세계열린미술대축제 (서울시립미술관경희궁분관)
2010년 제4회세계열린미술대축제(서울시립미술관경희궁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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