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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서 칼럼 ‘Frenemy’ 시대의 한․중․일 관계
전병서 칼럼 ‘Frenemy’ 시대의 한․중․일 관계
  • 월간리치
  • 승인 2010.10.01 06:55
  • 호수 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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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돈 있는 이들의 성(姓)은 모두 ‘신(新)’씨다. 세계경제의 성장의 견인차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중국, 인도, 브라질 같은 ‘신(新)흥 개도국’들이다. 가난한 나라가 선진국을 지원하는 세계역사상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구멍 난 재정을 메워주는 나라가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가들인 것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미국과 같은 입장이 되고 있다. 날로 중국의 경제 발언권이 커지는 지금 한․중․일 관계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일본이 엔고(高)로 비명이다. 20년 전 엔고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은 미국 국채를 팔고 일본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 상반기까지 중국은 일본 국채를 201억 달러나 사들여 엔고에 기름을 부었다. 한국 국채도 34억 달러 가까이 매입했다.
지금 미국은 금융기관이 친 사고가 금융가를 넘어서 실물경제로 갔다가 이제는 정부 재정으로 불똥이 튀었다. 7800억 달러의 자금지원과 부동산 세제의 약발이 떨어지자 미국 경제에는 다시 더블 딥의 공포가 몰려오고 있다.
미국을 살리려면 20년 전처럼 달러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의 희생이 필요한데 중국은 1980년대 일본처럼 호락하지 않다. 미국의 핵우산도 필요 없고 수출도 중저가 생필품 위주라서 중국이 수출을 중단하면 미국이 더 답답해진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미국에 코를 꿰인 일본이 걸려 든 것일까?
매달 쏟아져 들어오는 무역흑자를 중국 내에 자산을 운용할 금융시장이 없어 미 국채를 사다 보니 중국은 얼떨결에 세계 1위의 미 국채 소유자가 됐다. G2로 올라선 중국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경제수도, 뉴욕의 한복판에 금융 시한폭탄을 하나 설치한 양상이 됐다. 중국이 마음먹고 미 국채를 확 팔아 치우면 당장 미국의 심장인 월가가 난리나기 때문이다.
중국 내부에서는 바보처럼 윤전기에서 마구 찍어대는 달러 국채를 샀다는 비난을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은 미 국채 덕분에 미국에게 당당하게 ‘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됐다. 지금 중국은 미국 국채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써 먹고 있다.
미국이 위안화 절상을 하라고 하면 미국 국채를 팔아 버린다. 금년에도 1조3000달러 이상의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야 하는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중국과 미국의 경제정상회담이 열리는 즈음이면 쥐꼬리(?)만큼 미국 국채를 사들여 회담 분위기를 좋게 만든다.
그러나 회담이 끝난 다음 달에 바로 패대기를 쳐버린다. 그러나 이런 중국에 대해 미국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 아무리 굵은 무쇠 주먹도 돈 앞에서는 무력해 진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10월에 미국은 중국에 대해 상반기에 정치적 이유로 미루었던 환율조작국 지정을 앞두고 있다. 캐나다 G20정상회담 전에 미국과 유럽이 위안화 절상을 하라고 난리를 치자 중국은 환율절상을 하겠다는 시늉을 했지만 지금 대미위안화 환율은 6.8로 제자리다.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이 중국의 위안화 환율절상을 다시 들고 나왔다. 그러자 중국은 줄기차게 팔아 치우던 미국 국채를 다시 사기 시작했다.
미국이 어떻게 나올 지가 궁금하다. 중국은 외환시장에서 정부가 직접개입하고 있는 일본이 환율조작국이고 달러와 국채를 무한대로 찍어 환율을 계속 떨어뜨리는 미국이 진짜 환율조작국이지 자신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중국의 아시아 국채 특히 일본의 국채 매집은 심상치 않다. 제로금리인 나라, 일본의 채권을 산다는 것은 환 투기이거나 정치적인 액션이다. 세계에서 GDP대비 가장 높은 비율의 정부 부채를 가진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외채가 없어서 부도는 나지 않지만 세계 최악의 부채를 짊어진 정부다. 
헤지 펀드가 환 투기를 할 때는 가장 취약한 정부를 대상으로 고른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야금야금’ 팔아 일본으로 돈을 몰아가면 위안화 캐리가 엔화강세에 불을 지르는 격이 된다. 지금 현금동원력에서 세계 어느 누구도 중국의 상대가 아니다. 중국이 세계 최대의 환 투기 헤지 펀드가 될 수 있다.
만약 일본과 중국 사이에 환율전쟁이 벌어진다면 전 세계 핫머니는 물 만난 고기떼처럼 모두 일본으로 몰려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지금 80엔대 중반에서 놀고 있는 엔화는 ‘7’자나 ‘6’자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면 이미 한국 대만의 맹렬한 추격으로 절대 우위를 상실한 일본의 자동차, IT산업은 치명타를 입는다.
중국의 향후 10년의 목표는 미국의 세력이 약해진 아시아시장에서 맹주를 차지하고 달러를 대신할 위안화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의 ‘넘버3’인 일본과 아시아의 작지만 강한 나라, 한국을 일차적으로 기를 죽여야 한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아시아의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 이들을 잘 달래 협조를 얻기도 해야 한다.
지금 일본과 한국에 있어서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이미 ‘중국(中國)이 미국(美國)’이 되어 버렸다.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수입에 대해 견제를 들어가면 일본경제의 회복은 낙관하기 어렵다. 일본 경제가 어려워지고 기업이 힘들어지면 일본이 자랑하는 자동차와 IT기술도 어려워  진다.
중국은 ‘꽃놀이 패’를 쥔 것이다. 중국은 일본 국채매입으로 엔화강세의 수혜를 톡톡히 볼 수 있고 엔고로 일본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아시아에서 중국의 발언권은 그만큼 커진다.
냉전시대가 끝난 지금은 적(敵)도 친구(友) 가 되고, 친구도 적이 되는 ‘Frenemy’ 시대다. 최근 미국이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개입을 비난하자 중국이 자기 일도 아니면서 일본보다 더 나서서 난리다. 중국이 흥분할 일이 아닌데도 ‘병 주고 약 주는’ 중국의 꿍꿍이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중국은 캐나다 G20때 복수통화바스켓제도의 도입으로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강대국 미국의 체면을 세워 주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은 좋은 친구(友) 나라의 최고책임자로 만났다.
그러나 지금처럼 중국이 이런저런 핑계로 환율절상을 계속 미루고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패한다면 미국과 중국은 서울에서 개최되는 11월의 G20에서는 적(敵)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중국의 일본 국채 사 모으기는 잘 보면 중국의 ‘일본 때리기’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위안화 국제화를 실현하려는 중국의 야망을 생각한다면 언젠가는 한국에도 같은 상황이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지금은 엔고로 한국의 자동차, IT, 철강, 화학산업이 웃지만 길게 웃고 있을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중국의 한국국채 매입에 대해 투자자 다변화라는 차원에서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굴속에 새끼 호랑이를 키우고 있지 않은지 예의 주시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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